오래 전, 그러니까 1998년에 빌 클린턴·모니카 르윈스키의 섹스 스캔들이 터졌을 때 대부분의 미국인, 특히 여성들은 클린턴보다도 르윈스키를 더 심하게 질타했다, 정말이지 욕이란 욕은 다 먹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였다. 그런데 그 르윈스키가 대중 앞에 당당하게 다시 나타났는데 이미지가 확 바뀐 모습이었다. 그렇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17년 소셜미디어를 통해 번진 미국의 ‘미투(MeToo)’ 운동이었다.
르윈스키가 올해 미국 대선을 비롯한 연방·주 차원의 총선에서 꼭 투표하라는 캠페인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 패션 브랜드 레포메이션의 일원이 되어 선거를 독려하는 민간 단체 보트(Vote)와 함께 11월 대선 유권자 투표 독려 캠페인에 적극적이고 당당한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다.
모니카 르윈스키는 1973년 7월23일생이다. 계축(癸丑)년 기미(己未)월 경신(庚申)일이다. 그 정도면 생시를 따질 것 없이 1980 경신(庚申)년이 입춘 바닥이고, 2010 경인(庚寅)년이 입추가 된다. 그런데 르윈스키의 경우 운명이란 것이 실로 묘하게 작용하고 있어서 필자를 많이 놀라게 만든다.
클린턴과 스캔들이 있던 때는 르윈스키의 운세 순환에 있어 가장 어려운 때인 입하(立夏)의 운이었다는 점이다. 1980년이 입춘 바닥이니 그로부터 15년 즉 여름으로 들어서는 때, 인생에서 가장 초라하고 가난한 때가 입하인데 이 무렵 클린턴과의 스캔들이 생겼고 결국 1998년 소만(小滿)의 운, 이제 생기(生氣)가 도는 운에 거창한 스캔들로 터졌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그 스캔들이 당장은 르윈스키에게 힘든 시련이었겠으나 길게 볼 때 전화위복의 사건이었다는 판단이다.
아무튼 르윈스키의 경우 힘들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셀럽이 아니라 악명이 높아져서 말이다. 그 이후 르윈스키는 자살충동에도 시달리고 어떻게든 잘살아 보려고 여러 활동을 했지만 결국 대중에게는 스캔들로 얻은 악명을 이용한 추잡한 짓거리로 인식되었다.
이에 그녀는 2005년 무렵 사람들에게서 ‘망각’되기 위해 런던으로 옮겨가서 대학을 다녔다. 평범한 삶을 위해 졸업 후 취업 활동을 했지만 워낙 악명이 높은 그녀였기에 그 또한 불가능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이 운(運)이란 놈이다. 2010년 경인(庚寅)년이 입추의 운이었는데 그 이후 급반전이 찾아든다. 2014년 그녀는 미국의 유명 패션 문화 잡지와 인터뷰를 했으며 연이어 미국의 권위 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과 인터뷰를 했다.
르윈스키는 이제 자신을 나쁜 악당이 아니라 사이버폭력의 최초 희생자란 개념으로 재무장하고 반격에 나섰던 것인데, 이 적극적인 반격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여론은 급반전되어 갔다. 결국 2015년 미국의 유명한 컨퍼런스인 TED에 출연해서 자신의 입장을 당당하게 밝혔고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2015년은 그녀 운세 흐름에 있어 ‘황금의 재운(財運)’이었다.
그러다가 2017년 들어 ‘미투’ 운동이 급속도로 퍼졌고 그 과정에서 르윈스키 또한 희생자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오랜 악명을 불식하고 이젠 사이버폭력의 희생자, 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은 전사의 이미지를 얻으면서 ‘저항의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았다.
르윈스키는 지난해 10월부터 사회적 왕따와 괴롭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 내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기사를 보니 이런 내용이 있다. “사회적 괴롭힘을 당한 한 개인은 타인으로부터 받은 부정적 표현이나 상처를 스스로에게 되풀이하는 자학적인 행동에 빠질 수 있다”며 “이 경우 그 개인에게 최악의 악한(惡漢)이 바로 자신이 된다” 이것이 르윈스키의 말이다.
이번 르윈스키 일을 대하면서 세월 속에서 필자 또한 생각이 많이 변해 왔음을 확인하게 된다. 과거엔 르윈스키를 비난하던 필자가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모니카 르윈스키, 장하고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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