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공식 취임일은 작년 12월26일이다. 나는 한동훈 유력 검토설을 12월 중순쯤 들었다. 너무나 파격적이고 모험적인 아이디어였기에 전문가를 대상으로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내 귀에도 들렸던 것 같다. 나는 부정적이었다. 당시 윤석열정부와 국민의힘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치고 한동훈 역할론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전략 지역 출마나 상임선대위원장 정도였지 당무의 전권을 쥐는 비대위원장 역할은 아니었다. 현실 정치와 국가 경영의 어려움과 준엄함을 절감하며 18년간 연구소를 운영해 와서인지 나는 똑똑하지만 경험이 일천한 한동훈이 위험천만한 중책을 수용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설득했는지 그는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그가 어떤 심정으로 그랬는지 나는 모른다. 이것부터가 깊이 성찰할 지점이다.
총선 결과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한동훈 때문에 ‘108석이나 했다’는 주장과 ‘108석밖에 못 했다’는 주장이 대치하는데 둘 다 검증은 불가능하다. 나는 윤 정부가 지난 2년간 국정을 잘 운영했다면 한동훈 없이도 180석을 가뿐히 넘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12월 말부터라도 한동훈이 잘했다면 150석을 너끈히 넘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역시 검증 불가능한 가설일 뿐이다.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니 윤석열 대통령도 한동훈도 국정과 당무와 선거에 대한 치밀한 복기와 성찰이 필요하다. 지난 2년간 국정운영상의 한계와 오류를 논한다면 책 한 권 분량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올해 들어 윤 대통령의 오류는 의대정원 2000명 증원 건 정도다. 물론 작지 않은 오류였다. 이종섭·황상무·대파 값 등 대통령발 해프닝은 흔히 돌출하는 작은 허물이다. 총선 관련된 정치 행위는 압도적으로 한동훈의 책임하에 이뤄졌고, 이것이 선거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배 고픈 상태로 백화점에 가면 사고 싶은 물건이 눈에 많이 띈다. 마찬가지로 미국발 고금리,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 부동산시장 경색, 미국·중국·러시아발 경기침체, 고물가 등이 사중오중으로 겹쳐 돈이 고프고 생활이 팍팍하고 정의가 고프면, 즉 다양한 분야에서 쌓인 전 정권의 적폐 청산이 지체되면 정권의 작은 허물도 크게 보이는 법이다. 이 하나만으로도 한참 기울어진 운동장인데 윤 대통령도 한동훈도 공히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정적인 오류는 더불어민주당의 큰 내러티브(서사와 정체성)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내러티브의 핵심은 민주당과 국힘의 정체성이 무엇이며,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고, 윤 정부와 국힘의 소명이 무엇인지다. 과거 여당은 경제발전 대 발목잡기(경부고속도로 건설 반대 등), 안정 대 혼란의 구도로 싸웠다.
하지만 1987년 이후 민주당은 반(反)외세 투쟁 서사, 도덕성(항일·양심 대 친일·기회주의) 서사, 민주화(반권위주의)투쟁 서사, 한반도평화 서사, 촛불시민혁명 서사 등을 배경으로 민주당, 즉 비기득권·호남·약자·소외자·노동·노조 대 국힘, 즉 기득권·강남·강자·자본의 구도를 만들었다. 공천도 이 허구적 구도를 어느 정도 뒷받침했다. 비례위성 정당도 윤 대통령 탄핵이라는 제2의 촛불 혁명을 위한 정치 연합으로 만들었다. 비례 순번 투표 등으로 지지층의 참여도 끌어냈다.
하지만 국힘은 민주당을 압도하는 서사 내지 구도를 만들지 못했고, 지지층의 참여도 전혀 끌어내지 못했다. 국힘이 1876년 개항 이후 150년간 한반도 근대화·문명화를 주도한 위대한 정치 세력이요, 친발전·친기업·친시장·친성밖서민(진짜 서민)·친청년미래 세력이라는 정체성을 전혀 인식하지도 선전하지도 못했다. 비례 공천과 텃밭 공천은 안정되고 평화로운 시대라면 괜찮을 것 같은 착하고 얌전한 전문가 일색이었다.
한동훈의 정교하고 깔끔한 메시지에는 정작 중요한 서사와 정체성, 변화와 개혁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담대한 비전이 빠져 있었다. 이것이 도덕성이나 품격에 병적으로 집착한 이유다. 막말 시비만 벌어지면 사과·공천 취소·제명 등 도피와 손절을 능사로 삼으니 지지층의 배신감은 필연이었다.
정당·공천 시스템도 개혁한 것이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도 한동훈은 윤 대통령하고만 불화한 것이 아니라 강성 지지층과도 불화를 빚었다. 담대하고 정곡을 찌르는 변화와 개혁을 갈망하는 사람들과도 불화했다. 이 책임은 압도적으로 한동훈에게 있다. 지난해 12월26일 이후 한동훈은 그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당내에서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없는 전무후무한 행운을 누렸다. 총선 목전이고 다른 대안을 세울 수 없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성찰과 비판과 충전의 시간이다. 역사상 유례없는 행운도 알고 부족함도 알았으니 1~2년쯤 현실 정치에서 물러나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등판하시길!! 한동훈은 여전히 소중한 정치적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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