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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의 전지적 시점] 한동훈은 ‘접착제 리더십’ 발휘할 수 있을까
박혜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31 06:31:20
 
▲ 박혜수 시인·번역작가
 
“
작품의 템포는 메트로놈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각각의 음표가 발음되고 마무리되는 사이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작품의 음악적 요소가 풍부할수록 템포는 느려지게 된다. …음악은 하나의 체험이다.”
 
전설적 지휘자 세르쥬 첼리비다케의 말이다. 사람들은 그가 느린 연주를 선호하는 게 선불교의 영향 때문이라 하지만 그건 첼리비다케가 들으면 화낼 소리이고, 소리나 음악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다.
 
첼리비다케는 천재성과 함께 괴팍한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툭하면 폭언을 퍼붓고 지나칠 정도로 완벽을 추구해서 마음에 드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단원들을 괴롭히는 바람에 결국 단원들과의 불화 등으로 베를린필하모닉에서 쫓겨났다. 그의 뒤를 이어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봉을 잡게 됐는데 그는 카라얀을 한마디로 ‘유능한 비즈니스맨’이라고 평했다.
 
그런 그가 지극히 존중하고 상냥하게 대한 연주자가 있는데 괴팍하고 까칠하기로 첼리비다케를 뺨치는 천재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B. 미켈란젤리다.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인정하고 존중했는지는 함께 연주한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를 들어 보면 알 수 있다. 요즘엔 유튜브에 연주 실황이 올라 있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도 있지만 그 엄청난 명연주를 통해 전해지는 소리만으로도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 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베를린필에서 밀려난 뒤 첼리비다케는 객원 지휘자로 주로 메이저급이 아닌 오케스트라들을 지휘했는데 그를 만나면 그런 오케스트라들이 갑자기 최정상급의 연주를 해내곤 했다. 첼리비다케가 그렇게 유럽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시기에 세계적으로 잘나가는 피아니스트였던 미켈란젤리는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5번을 두 번이나 그가 지휘하는 각각 다른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의리나 우정이란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만년의 첼리비다케. 그는 지휘 도중 기합 소리를 넣거나 발을 구르고 누군가 실수를 하면 욕을 하기도 했는데 협주곡을 제외하고는 모든 곡을 악보 없이 외워서 지휘했다.
 
의리(義理)란 무엇인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신의와 도리’라고 사전엔 나와 있다. 바로 그 의리를 한동훈 국민의힘 신임 당대표에게 일깨우고 싶다. 자신을 믿고 이끌어 준 고마운 사람에 대해서도, 보수 지지자들에 대해서도 의리를 지켜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한동훈 대표에게 매료된 것은 무엇보다 그 탁월한 말싸움 능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에게서 본 것은 아직 그것밖에 없다. 사실 시사 프로그램의 패널들만 봐도 보수는 대체로 말주변이 없는데 한동훈 같은 명석하고 유능한 쌈닭을 보니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모른다. 보수 지지자 대부분이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말싸움이라면 이준석 전 대표 또한 만만치 않은 존재가 아니던가. 두 사람이 ‘조선제일 혀’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인다면 승패가 어떻게 갈릴지 누구도 가늠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우려되는 건 ‘윤핵관’ 등의 용어까지 만들어 내며 취임 전부터 윤석열정부의 앞길에 초를 쳐댄 바로 그 이준석 전 대표와 한동훈 대표 사이의 공통점이다. 이 두 사람 모두 의리나 도리 같은 것엔 큰 관심이 없어 보이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나름의 명쾌한 논리로 그 이유를 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수는 의리나 신의 같은 전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집단임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보수는, 국민의힘은 지금 분열되고 힘이 빠져 혼미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등 좌파 세력이 뜻한 대로 되어 가고 있는 셈이다. 이 시점에 한동훈 대표는 자신을 원수로 여기던 야권에서 당대표 선거 기간 동안 터놓고 자신을 지지한 게 무엇 때문이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다행히 당대표에 취임하고 며칠 그의 행보를 보면 우려가 기우에 그칠지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이 보인다. 게다가 그는 이준석과는 닮은 듯하지만 분명히 다르다. 일단 천박하진 않다. 그가 명석한 두뇌로 당을 잘 이끌어 나간다면 국힘이 치욕을 씻을 날이 머지않을 거라는 기대마저 갖게 된다.
 
걱정되는 것은 그가 또 국민의 눈높이 운운하며 보수의 의견을 갈라놓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가 알고 있는 국민의 눈높이라는 게 혹시 조작되거나 선동된 여론을 말하는 거라면 그것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선 안 될 것이다. 눈높이가 오도된 것이라면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22대 총선에서 국힘의 득표수는 1317만9769표(총 투표수의 45.1%)였다. 그 45% 국민의 눈높이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은 확실한 리더십으로 보수를 다시 똘똘 뭉치게 해야 할 시점이다. 중도를 잡네, 눈높이가 어쨌네 떠들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명석한 리더라면 국힘이 정책 정당·강한 정당으로 거듭나도록 ‘잘남’을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 한동훈 대표가 접착제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시점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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