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오래 살았지만 이 나라의 국민성과 문화에 대한 관찰의 촉과 배움의 자세엔 변함이 없다. 종종 헛갈릴 때가 있긴 하다. 어느날 집 근처 역에서 전철을 타고 이동 중이었다. 승객이 적어 한산한 분위기 속에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독서란 한 나라의 지적 수준을 보여 준다고 생각하며 자란 세대라서 그런지 늘 독서에 대한 아쉬움과 갈망이 있다. 일본과 한국의 1인당 연간 독서량이 각각 약 40권·11권이라는 헤럴드 경제신문의 몇 년 전 기사를 기억한다. 그 기사를 읽은 뒤 한국과 일본의 전철 안에서 기사에 실렸던 40권·11권이라는 수치를 떠올리곤 했다.
차내 독서를 멋진 현상으로 여겨 온 필자는 그날도 기분좋게 책을 펼쳐 들었다. 그런데 출발한 지 약 5분쯤 지나 복잡한 상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누군가 큰 소리로 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끝나겠지 했지만 도무지 끝날 줄을 몰랐다. 어려서부터 남들에게 폐 끼치면 안 된다고 교육받는, 이른바 ‘메이와쿠 문화(‘메이와쿠·迷惑, 폐 끼치는 것’을 금지하는 문화)’의 나라에서 이게 웬일인가 싶었다.
‘메이와쿠 문화’ 덕분인지 일본의 전철 내 풍경은 대부분 도서관을 연상시킨다. 때로는 고요하다 못해 괴괴하기까지 한데, 모처럼 작정하고 독서를 하려던 찰라 방해꾼을 만난 것이다. 고개를 들어 보니 가까운 좌석에 앉은 키가 훤칠한 젊은 여성이 제법 큰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한 통화 소음이 이어졌다. 남들 앞에서 통화를 할 때는 손으로 입을 가리는 등 미안해 하는 기색을 보이는 게 일본인 특유의 습관인데 그런 것조차 없었다. 그보다 아무도 그녀를 신경쓰지 않는 게 더 놀라웠다. 다들 휴대폰만 만지고 있을 뿐이었다. 순간, 독서를 방해한 목소리보다 이 무신경과 무관심이 더 불편해졌다. 다들 선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내가 지켜야 할 선이란 뭘까.
사무라이 전통의 나라답게 일본인은 ‘칼같이’ 질서를 잘 지킨다. 이런 질서의 문화를 명쾌하게 정리한 ‘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한민 저)을 재미있게 읽은 바 있다. 그렇다. 일본인은 인간관계에서도 칼질을 즐긴다. 칼같이 자신의 레드라인을 정한다. 침범하는 것·침범 당하는 것 모두 극도로 싫어한다.
어느날 일본 TV에서 한 일본 젊은이의 한국 생활 체험담을 들으며 박장대소한 적이 있다. 한국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다가 “우리 친구하자” 하기에 “예스” 했단다. 다만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기가 들고 있던 팝콘 그릇 위로 한국인 친구 손이 쑥 들어와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피차 선을 넘나들어야만 비로소 친구다. 메이와쿠를 서로 허용할수록 깊은 인간관계로 여긴다. 지나치게 폐를 안 끼치려 들면 상대방이 오히려 서운해 할 수 있다.
규칙·약속을 파기할 때 철저히 배척해 응징하는 것도 메이와쿠 문화의 연장이다. 따돌림은 섬나라에서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일본이 고차원의 종교적 가르침 없이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신용 사회를 이룬 배경으로 이것을 꼽기도 한다. 준법정신에 기여한 메이와쿠 문화는 근대화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메이와쿠 문화의 극단화가 집단 괴롭힘 즉 ‘이지메’ 현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인간사 모든 게 그렇듯 양면성을 가진다. 그간 남에게 폐 안 끼치며 간섭 또한 꺼리는 문화를 좋게 봐 왔지만 이날 전철 안에선 심히 불쾌하고 난감했다. 이 정도 메이와쿠를 못 견디는 것 자체가 메이와쿠이려나? 가까운 좌석의 통화 소음 속에 홋카이도의 폭설처럼 내 속의 화도 쌓여 갔다.
결국 토해 내듯 말했다. “이보세요, 좀 너무하시네요.” 잔뜩 용기를 내느라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쓰며 눈에서 레이저빔이 쏟아졌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후 상황에 더 놀랐다. ‘잘했다’ ‘시원하다’ 식의 눈길, 심지어 ‘저 사람 뭐야’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 고개 숙인 석고상의 모습이었다. 그 용감무쌍한 아가씨만이 힐끔 이쪽을 보더니 전화를 끊었다.
전철 안은 이방인의 한바탕 짧은 저항으로 평화를 되찾았다. 잠시나마 일본인들에 대해 선을 넘은 듯한 자신의 행동에 살짝 부채감이 일었다. 그러나 잠시 후 한국인다운 자아를 회복하고 마치 광화문 이순신 장군처럼 위엄 있게, 혹은 그 후예답게 뭔가 해낸 심정으로 근엄하고 의젓하게 움직이며 환승했다.
일본에도 아름다운 전통과 문화가 많다. 다만 과거의 성공 방식이 미래를 보장해 주진 않는다. 모든 면에서 자주 지적된다. 일본은 아날로그 세계를 리드했지만 디지털 세상에선 뒤처져 한국에게 따라잡히지 않았던가. 미풍양식 또한 시대에 따라 변화가 필요한 것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 식 불간섭이 언제나 어디서나 미덕일 수는 없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