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의 현지 변호인) 로디치 변호사는 이날 블룸버그통신에 보낸 서면 답변서에서도 “몬테네그로 정부가 인터폴의 도움을 받아 범죄인 인도를 준비할 것”이라며 “가능한 한 빨리 한국으로 송환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권씨 측이 한국 송환을 바라는 이유는 미국이 경제 범죄에 대해 한국보다 높은 형량을 내리기 때문이다. 이에 권씨는 미국으로 인도되지 않도록 그간 치열한 법적 다툼을 이어왔다.”(조선일보 2024.8.2.)
전 세계적으로 약 450억 달러(약 59조 원)의 피해를 입히고 국내 피해자만 2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암호화폐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도피처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뒤 한국에서 재판받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미국과 한국 사법 당국의 동시 송환 요청을 받은 몬테네그로 사법 당국은 9월 초까지 어디로 송환할지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권도형은 몬테네그로에서 송환 재판을 받는 도중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약 46억7800만 달러(약 6조4200억 원) 규모의 환수금 및 벌금 납부에 합의했다. 자신의 바람과 달리 미국으로 송환되더라도 형사재판에서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해 민사 합의를 먼저 해 둔 것이다.
대한민국은 압도적인 사기 범죄 천국이다. 객관적 사기 범죄 지표를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봐도 그렇고, 일상생활에서 다단계나 코인·보이스피싱이나 주식리딩방 사기 등을 당할 경우 거의 피해보상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국민 스스로 피해보상을 체념하는 현실을 살펴봐도 그렇다.
그 핵심에는 한국의 형사사법 제도가 있다. 안 그래도 범죄에 대한 처벌이 미약한데 최근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을 개악하여 조직적 사기 범죄를 거의 처벌할 수 없게 만들었다. 모두 문재인 정권 때 개악한 것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고약한 개악은 형사소송법의 개악이다.
공정한 재판이란 당사자 쌍방에게 대등한 조건을 보장해 주는 재판이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 체포된 형사 피의자가 법률적으로 경찰이나 검사와 대등하도록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임의로 진술한 것이라면 그것이 경찰 단계이든 검찰 단계이든 관계없이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미국의 사법 드라마에서 늘 보는 장면이다.
“형사소송법 제312조(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조서 등) ①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서 공판준비·공판 기일에 그 피의자였던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할 때에 한정하여 증거로 할 수 있다.”(개정 2020.2.4.)
즉 피고인의 주관적 의사에 따라 수사기관이 제출한 핵심적인 증거에 대한 증거능력을 부여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도록 개악한 것이다. 이로써 피고인은 자신과 공범에 대한 검·경찰의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한 무제한적인 통제 권한을 갖게 되었다.
미국 시카고의 갱 ‘알 카포네’ 사건에서 보듯 조직범죄의 경우 그 수괴가 구체적인 범행을 지시했다는 점을 입증하는 주된 증거들은 공범들의 진술증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수괴에게 공범들의 진술증거에 대한 증거능력을 부인할 수 있는 통제 권한을 부여하게 되면 범죄조직의 구성과 구체적 범행의 지시를 입증하는 핵심적인 증거가 없어져 재판 과정에서 범죄의 전모를 제대로 확인하고 심판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주요 증거에 대한 증거능력의 인정을 오로지 피고인의 주관적인 동의에 따르도록 한다면 당사자 대등의 원칙을 보장할 수 없다. 이는 형사재판의 공정성과 실효성을 무너뜨리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제도이다. 결국 충분한 증거로 실체적 진실을 밝혀 심판해야 하는 형사재판 제도는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되고 나라는 범죄자 천국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모성준 ‘빨대사회’ 제4장)
사기 범죄 조직의 수괴 권도형이 기를 쓰고 한국에서 재판받으려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국의 개악된 형사소송법을 악용해 자신의 범죄 사실 대부분을 뒤덮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입증된 범죄 사실에 대한 형량도 미국보다 현저히 약하기 때문이다.
현대는 지식경제 시대다. 원천 지식과 기술을 생산할 수 있는 인재를 많이 모으는 나라는 번영하고 그런 인재가 떠나는 나라는 망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대한민국이 인재 천국이 아니라 범죄자 천국이 된다면 국민의 삶은 붕괴하고 나라도 망할 것이다.
집권 세력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국가의 가장 기본적 기능인 외적의 침략을 막아 내고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일에 우선 집중해야 한다. 집권 세력이 의지를 갖고 개악된 형사소송법 제312조 개정을 추진한다면 이재명의 더불어민주당도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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