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6-09-28 21:05
뉴스 > 연재기획
[이동호의 법으로 세상읽기] 헌법으로 본 대한민국 건국은 1948년이다
헌행 헌법, 1919년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은 1948년임을 천명
이동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9-04 06:31:20
▲ 이동호 변호사
유례없이 더웠던 8월이 지나갔다. 날씨만 뜨거운 게 아니라 논쟁도 뜨거웠다. 8월15일 광복절을 맞아 이종찬 광복회장이 제기한 대한민국 건국일 논쟁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주도하는 광복회는 3·1 운동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된 1919년을 대한민국 건국 시기로 보는 입장이다. 좌파 진영도 이에 동조한다. 반면에 우파 진영은 국가의 3요소인 영토·국민·주권을 모두 갖춘 1948년 8월15일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진정한 건국 시기로 보는 입장인 것 같다.
 
이 문제는 현재 좌파와 우파의 정체성을 가르는 중요한 분수령일 수 있다. 1948년을 건국 시점으로 보면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건국의 아버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1919년을 건국 시점으로 보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오히려 분단의 시작이 되고 현재의 대한민국은 정통성을 잃게 된다. 마지막까지 임시정부를 이끌고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한 김구가 건국의 아버지가 된다. 지금 한국 사회는 이 문제의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그 해답을 헌법에서 찾고 싶다. 1948년 7월17일 제정된 초대 헌법전문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써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고 쓰여 있다.
 
즉 대한민국은 1919년 3·1운동으로 일단 ‘수립’되었다가 1948년에 ‘재건’되었다고 한 것이다. 그 당시 헌법의 아버지들은 1919년을 건국 시점으로 본 것인데, 초대 정부의 대통령 이승만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었고 부통령 이시영도 임시정부 인사였음을 반영한 결과 같다.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는 문구는 이승만과 윤보선 정권하에서 계속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박정희 대통령의 3공화국 시기인 1962년 12월26일 5차 개정 헌법에서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라고 하여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이 건립되었다는 표현이 빠지고 독립정신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바뀌었다.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란 표현은 그 이후 5공화국 헌법인 8차 개정 헌법까지 이어졌다.
 
광고
그러다가 현행 6공화국 헌법인 1988년 9차 개정에서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바뀌었다. 6공화국 헌법부터는 독립정신만이 아니라 ‘법통’을 계승한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정부와 임시정부의 연관성이 이전보다는 더 강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초대 헌법처럼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이 건립되었다고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즉, 6공화국 헌법을 제정한 헌법 제정권력자로서의 국민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하여 독립운동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수립은 1919년이 아닌 1948년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치학이나 헌법학적 관점에서도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보기는 어렵다. 국가의 3요소인 영토·국민·주권 중에 갖춰진 것이 사실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망명정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망명정부는 이미 존재했던 국가의 행정부가 외국으로 도피해 설립된 것이라서 임시정부와는 다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당시 정부인 대한제국 황실과 무관하게 설립됐다. 
 
임시정부가 1919년 9월11일 공포한 대한민국 임시헌법은 구황실을 우대한다고 했지만 대한민국 주권은 인민 전체에게 있고 주권 행사는 임시대통령에게 전임한다고 하여 민주공화국임을 표방했다. 대한제국과는 국체 자체가 다른데 어떻게 망명정부이겠는가.
 
어쩌면 이 논쟁의 답은 아주 간단하다. 1919년부터 1948년 건국까지는 독립과 정부 수립을 위한 과정으로 보면 된다. 그렇다면 1919년 임시정부 수립, 1945년 해방과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모두 소중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1945년 8월15일의 해방만 기념했지 1948년 8월15일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너무 간과했다. 
 
1948년에 수립되어 1950년 공산주의 침략에서 피 흘려 지켜 낸 신생국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10대 강국 반열에 섰다. 남과 북이 갈라져 체제 경쟁을 했지만 대한민국이 최종 승자인 것은 세계사적으로 자명한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들이 다 민주공화국으로 번성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이 가장 탁월한 발전을 이룩했다. 이는 독립운동과는 별개로 1948년 이후에 모든 국민이 쏟아 부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1948년 건국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광복과 함께 건국도 기념하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1948년 5월31일의 제헌국회는 목사였던 이윤영 의원의 주도로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라는 기도로 시작해 “하나님, 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의 우리의 환희와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으로 끝맺었다고 한다. 기독교도가 아니더라도 가슴 벅차오르게 하는 기도다. 해방 80년을 앞두고 건국의 아버지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지금의 분열이 조속히 극복되기를 바랄 뿐이다.
후원하기
  • 정기 후원
  • 일반 후원
  •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는 공공성에 기반해 독자가 만들어 가는 언론을 지향합니다. 정기 또는 일반 후원시 맞춤형 뉴스, 독자에게 할당하는 지면 서비스, 동행하는 홍보, 유상증자시 참여기회 제공(법인에 한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화나요
1
슬퍼요
0
댓글 : 0
방문수(PC&모바일)
오늘(실시간) 134,354 ▶
어제 140,329 ▶
최근 7일 ▶
대한민국 명사들
대면 기회를 가져보세요.
팬클럽 가기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방배천로2안길 82(방배동 463-18) 청송빌딩 3,4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종합일간지 등록번호 : 서울시 가50131,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민경두, 편집국장 : 주경준, 사업자 번호 : 214-88-81099 후원계좌 : 158-910019-39504(하나은행)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진강
본지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서약사로서 신문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