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美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美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CIA와 대한민국’을 지면에 연재한다.
70년 만의 만남
문재인정부 시절이던 2018년 6월4일(현지시간) 새라 허커비 샌더스 미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미·북 정상 간의 회담이 싱가포르 현지시간으로 오전 9시에 열린다“고 밝혔다. 이 역사적 만남의 장소로는 원래 싱가포르를 비롯해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스위스·스웨덴 등이 거론되었는데 최종적으로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로 결정되었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북한 정권이 수립된 이후 70년 만에 사상 처음으로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직접 만남을 갖게 된 것에 전 세계 언론, 특히 대한민국 국민과 언론이 흥분한 가운데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회담의 추이에 주목했다.
이 회담에 앞서 2018년 4월26일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반도 정세를 논의하고, 긴장 완화를 위한 일련의 움직임을 환영한다”는 내용이 의장성명에 실리고, 이튿날인 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를 향한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키는 일련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1년 전인 2017년, 미국이 북한을 선제 타격할 거라는 둥 전쟁 위기가 코앞에 닥쳤던 것에 비하면 평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기대 반 실망 반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다.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또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는 김정은의 모두발언은 회담에 대한 모두의 기대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막상 회담의 결과에 대해서도 일각에선 한반도 정세가 위기를 벗어나 방향 전환을 시작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 반면 도대체가 뚜렷한 성과가 없는 시시한 회담이었다는 상반된 의견 또한 만만치 않았다. 또한 초기에 미·북 양국 사이에서 거간꾼 노릇을 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잘나가던 문 대통령은 이 시점부터 서서히 역할이 사라지며 배제되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계략
싱가포르에서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사흘 후 6월15일에 필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긴급 시국 강연을 했다. 강연의 주제는 ‘미온적인 싱가포르 회담 뒤에 숨은 트럼프의 계략’이었다. 다음은 강연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이번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많은 사람이 실망하고 있다. 나는 그동안 국내외 뉴스와 회담 현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이 주고받은 대화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그들이 숨기고 있는 속셈을, 아직은 전 세계를 속이고 있는 전략을,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다.
이번 싱가포르 회담은 전 세계를 속이기 위한 형식적인 쇼에 불과하다. 미·북 양측이 이미 합의하고 조율한 내용은 당분간 함구하고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TV 강연에서 지적한 대로 미국이 지금까지 취한 태도는 전략 자산을 한국에 배치해 북한을 무력으로 제압하겠다는 일종의 위협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전략적 제스처에 불과하고 미국의 실질적인 북한 문제 전략은 무력이 아닌, 귀신이 곡할 놀라운 것이 될 것이라고 암시한 바 있다. 이것은 모두 존 볼턴의 작품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무력으로 초토화시키겠다는 것을 믿게 만들었다. 그 결과 북한으로선 선택의 폭이 아주 좁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두 번씩이나 평양에 보내고, 북한에선 김영철이 워싱턴에 다녀가고 하면서 북한을 설득했다.
‘미국은 북한의 원수가 아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 적대적 태도를 버리자. 그렇게 되면 북한을 전 세계가 놀랄 경제대국으로 키워 주겠다. 체제 보장도 해 줄 테니 지금 그대로의 상태로 우리 품으로 들어와라. 미국이 지켜줄 것이다…’
이 제안의 낚싯밥을 북한이 물었다.
사실 그렇게만 된다면 북한으로선 더 바랄 게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북한은 분명히 잠시 고민을 했다.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몰라 시진핑도 만나보고 하며 시간을 끌자 트럼프는 계속 그렇게 할 거면 싱가포르 회담을 취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다급해진 건 북한의 김정은 쪽이었다. 김정은은 무엇이 북한의 생존을 위한 대안이 될 것인지 혼란스러운 가운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고 중국에 기대는 것보다 미국에 붙는 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미국의 품에 안기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러고는 당 간부들을 설득하고, 백기를 들고 싱가포르에 갔다.
미국은 칼을 쓸 것처럼 호통을 쳤지만 지략으로 적을 제패한 것이다. 결국 미국에겐 새로운 친구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동시에 중국은 친구 하나를 잃고 만 셈이다. 지금 국제사회에선 세계 질서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번 회담의 공동성명을 보고 많은 사람이 불만스럽게 여기지만 그러기에 앞서 미국과 북한 양국의 꿍꿍이속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결국 싱가포르 회담은 김정은의 분명한 항복 선언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 승자였다. 하지만 북한도 미국의 전략을 거스르지 않는 한 살길을 찾아낸 셈이었다.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 강행에 관한 언급이 빠져서 뭔가 허술하다고 하지만 사실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북한이 미국의 품에 안기고 미국의 영향권 내에 들어오면 북핵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북한이 핵을 보유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다
우리는 김정은을 포함해 우리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혀 온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다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미국은 기회가 되면 그들을 포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전략이다. 체제 보장을 해 주겠다는 건 모두 전략적으로 계산된 일종의 헛소리다. 어느 나라가 다른 나라의 체제를 보장하겠는가. 그것은 그 나라 국민의 선택에 달린 사항이다. 미국이 말한 체제 보장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김정은 너를 죽이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북한이 미국의 편으로 돌아서서 문호를 개방할 경우 미국의 엄청난 국력이라는 쓰나미에 밀려 김정은의 일인 독재·일당 독재·사회주의 체제는 경제개혁과 부강(富强)이라는 수의를 입고 행복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나의 이와 같은 견해는 서울에서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미국 워싱턴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앞으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할 것이 거의 확실하며 그는 아마도 임기 내에 중국을 작살낼 것 같다. 전 세계 국제 정치학자들이 다 그렇게 믿고 있다. 2040년을 기점으로 중국의 동북 3성(요녕성·길림성·흑룡강성)이 대한민국에 편입될 것이라는 예언도 있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050년 이내에 대한민국이 세계 2등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것은 통일 한국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중국은 역사 속에서 세계 평화에 기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트럼프는 중국이 큰소리치는 나라가 되면 지구상에 바람 잘 날이 없을 것을 잘 알고 있다. 미국이 북한은 살려 놓고 통제하겠지만, 중국에 대해서는 소수민족 분리 독립을 지원하며 각을 뜨는 식으로 갈 것 같다는 말이 많이 나돌고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 美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년·CIA(중앙정보국) 24년)
△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 美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 美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 CIA 한·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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