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안팎에서 찬밥 신세 전락 韓 기업,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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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 기업 유턴에 사활, 中 기업 덩치 키우기에 혈안
경쟁국 대비 역부족, 혁신적 초일류 국가 구호로 안 돼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0-09 06:30:02

한국 국적으로 기업 활동을 하는 게 여간 괴롭지 않다. 제대로 대우받던 고도 경제성장 시대와는 달리 성장의 동력이 떨어지고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기업의 입지가 갈수록 궁지에 몰리는 꼴이 되고 있다. 특히 민주화의 성숙이라는 명분으로 수시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반(反)기업·친(親)노동 풍조가 만연하다. 기업이나 기업가를 감싸고 옹호하는 쪽이 불편해지는 현상이 노골화되고 있다. 물론 이에는 일부 기업가의 부도덕이나 몰염치가 부정적 기류 확장을 부추긴 것도 사실이다. 국가의 지속성과 경쟁력·잠재적 성장 동력 확충을 위해서 기업만큼 중요한 자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방치되는 상황이다. 설 자리가 없어지면 기업을 포기하거나 보따리를 싸서 밖으로 나가는 방도 외에 대안이 없다.

마지못해 밖으로 뛰어나갔지만 거기서도 그리 편치 않다. 현지 정부 눈치를 봐야 하고 로컬 혹은 외국 기업과의 치열한 생존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한다. 여의치 않으면 결국 다시 짐 정리를 해서 또 다른 피난처를 찾아 둥지를 옮겨야 한다. 결국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성공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만신창이가 되는 기업도 수두룩하다. 마치 전염이라도 된 듯 우르르 몰려갔던 중국에서도 20여 년 만에 쫓기다시피 나오고 있다. 더 버틸 공간과 여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격화되면서 생겨난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중국의 위상이 축소되면서 각국 기업이 빠르게 탈(脫)중국을 서두른다. 또 다른 이유는 중국 기업의 부상으로 외국 기업의 이익이 급속히 감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유럽 등 경쟁국들은 해외 나가 있는 기업의 애로를 이해하고 이들의 리로케이션 지원에 매우 적극적이다. 특히 국내로 유턴할 수 있도록 ‘리쇼어링(Reshoring·국내 복귀)’에 팔을 걷어붙인다. 실시간으로 가중되고 있는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이에 사활을 건다. 한국 정부도 뒤늦게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응 방법이나 수단에서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한국 시장이 협소해서 한국으로 목적지를 이동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핑계로 댄다. 따지고 보면 현실적으로 중국 기업이나 산업(상품)의 위협에 가장 크게 노출된 쪽은 미국 등 경쟁국보다 바로 한국이다. 위기가 이처럼 엄중함에도 미봉책으로만 일관하고 근본적인 처방과 대책에는 모두 손을 놓고 있다.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 목표는 명확하다. 확장된 국가 안보 개념을 기반으로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역점을 둔다. 중국과 같은 우려국의 위협 요인을 사전 파악하고 우방국 중심의 협력체 구성과 이를 통해 자국 생산 역량 강화와 공급망 자립에 열을 올린다. 정권의 색깔과 무관하게 자국 우선주의라는 국가 이익에는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리쇼어링 지원 입법에 속도를 낸다. 2021년에만 1800여 개 사가 복귀하는 것을 비롯해 매년 평균 400개 정도의 기업이 미국으로 되돌아온다. 이들로 인해 신규로 생겨나는 일자리가 최대 40만 개로 늘어나고 있다. 연준의 고강도 통화 긴축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가 견실한 성장세를 유지된 데에는 제조업 유턴에 따른 투자 확대가 일조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에는 매년 600개 사 내외가 자국으로 귀환한다. 미국과 유사하게 경제 안전보장 차원에서 대기업과 핵심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복구에 혈안이다.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장기 불황의 돌파구로 이 전략을 채택했다. 미국 주도의 동맹국 중심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제조업의 부활까지 노린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이런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일자리가 남아돌아 청의 완전 고용에다 노인층의 일손 참여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판이다. 이런 미국이나 일본보다 우리 정부의 대책은 너무 느슨하고 안일하기 그지없다. 혜택은 찔끔거리고 규제는 무더기로 양산되고 있다. 중국 기업의 위협은 실시간으로 다가오는데 무방비 상태인데다 궁극적으로 노동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정책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지난 5년 동안 국내로 되돌아온 기업은 고작 108곳이고, 이 중 대기업은 불과 4개 사에 그친다. 그나마 올해 들어서는 유턴 기업이 현재까지 제로다. 정부에서 던지고 있는 당근책이 이들에게 전혀 효과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정부가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경쟁국보다 미흡하고 해외에서 표류하고 있는 기업에 솔깃하게 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점이다. 정부의 실책과 정책의 실패만을 노리는 야당만을 탓할 것이 여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내수와도 연결되는 해외 진출 기업 국내 유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징벌적 세(稅)부담을 줄이고 과감한 지출 구조 조정을 통해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내각책임제 국가였다면 벌써 내각 총사퇴를 해야 할 판이다. 경제가 불안하고 증시가 자꾸 하락하는데 한국에는 부양책이나 완충 장치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