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팎에 온통 먹구름이 끼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하다. 말 그대로 내우외환이다. 전후좌우 사정을 보면 이번에 닥친 한국의 위기는 국가가 단방에 그대로 풀썩 주저앉을 수 있는 강력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 지난 수십 년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제조업이 일거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처한 상황이 과거의 위기와는 크게 다르다. ‘트럼프 스톰’이 초읽기에 들어가고 있고, 이에 대응하는 각국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향방과 이에 따른 지구촌 제조업의 지도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 초점이 모인다. 위협을 기회로 만들기 위한 물밑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국과 같은 제조업 강국이 졸지에 추락할 수 있다는 예감까지 든다.
중국 제조업의 도전은 끝이 없다. 첨단 제조업 경쟁에선 미·중 양강 구도를 굳혔다. 한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독일까지 멀찌감치 따돌린 상황이다. 정권의 색깔이 바뀌어도 미국이 중국의 기세를 꺾으려고 부단하게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는 것도 중국 제조업의 부상 때문이다.
오랜 기간 침묵하던 일본 제조업의 기지개도 만만찮다. 디지털과 그린 전환에서 뒷걸음질 쳤던 그들이 인공지능(AI) 경쟁에서는 물러설 수 없다면서 배수의 진을 치고 과감하게 변신 중이다. 반도체산업 재건을 위해 자존심을 접고 대만에 손을 내밀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신생 파운드리 기업인 라피더스가 미국 브로드컴에 2나노 시제품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TSMC와 삼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 제조업에 닥치고 있는 대내외의 부정적 기류가 심상치 않다.
그나마 우울한 한국을 지탱해 주고 그나마 한 줌 기대라도 걸어 볼 만한 쪽은 기업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와 미래에도 마찬가지다.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한류가 꽃을 피우고 있는 것도 오랜 기간 한국 기업이 축적해 놓은 국가 이미지 위에서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몰고 올 폭풍에 대비해 전 세계에 긴장감과 전운이 감돌고 있지만 꺼져 가는 한국 경제에서 실낱같은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 제조업 지각 변동이 예상되는 가운데 트럼프 체제가 정식으로 출범하기 전부터 잇단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는 것이다. 연초부터 미국 제조업 현장에서 한국 기업의 용트림이 거세다. 이미 투자를 진행 중인 삼성·현대차·LG 등에 이어 제철·식품·가전 등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움직인다. 우리 기업들이 트럼프 2기에 선물 보따리를 안기고 있는 것이다.
현대 측이 미국 내 자동차 생산 확대를 위해 10조 원을 들여 제철소를 짓기로 했다. 미국 정부가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불허한 후 나온 직접투자 결정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CJ제일제당은 작년 11월 최대 아시안 푸드 공장을 착공했다. SPC는 미국 첫 제빵 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관세 장벽에 대한 선제 대응의 일환이다.
한편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직후부터 한국 조선업과의 협력에 강력한 관심을 표명했다. 갈수록 막강해지는 중국의 ‘해군 굴기’에 맞불을 놓기 위한 최적의 파트너로 한국을 선택했다. 미국 의회도 적극적인 피드백에 나서고 있다. 조선 기술력 1위인 한국을 비롯해 일본 등 동맹국과의 연대를 통해 해외 군함 건조를 금지하는 법에 예외 조항을 만들 예정이다. 이미 한·미 ‘조선 동맹’이 가시화되면서 350조에 달하는 블루오션이 현실화되고 있다.
또한 한·미 ‘원전 동맹’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K원전에 딴지를 걸던 웨스팅하우스의 CEO가 퇴진하면서 지적재산권 분쟁이 해결되고 협력의 물꼬가 트이고 있다. 족쇄가 풀리면서 양국이 해외시장에서 공동 대응해 나가기로 합의에 도달했다. 유망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동은 한국이, 유럽은 미국이 주도하되 공동 전선을 형성하여 상호 이익을 극대화해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중국의 ‘원전 굴기’에 대한 우려로 양국이 분열보다는 화합해야 둘 다 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다만 협력이 실질적이어야 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시장에서 입증해 내야 한다. 여하튼 제조업 재건에 방점을 둔 미국에 협력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파트너가 한국 제조업이라는 점이 여기저기서 확인된다.
더 강력해진 트럼프 2기 출범에 떨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공격적인 통상 대응 체제를 갖춰야 한다. 미국의 연이은 한국 제조업에 대한 러브콜에 맞추어 ‘한·미 제조 동맹’이라는 과감한 제안을 본격 검토해 볼 때다. 우리가 아니라 미국이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듯이 살 길은 있다. 이것마저 타이밍을 놓치고 실기하면 자칫 경쟁국에 우선권을 내줄 수도 있다. 한미 안보·경제 동맹의 틀을 한 단계 격상시키면서 트럼프와의 거래에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난 30여 년 동안 중국과의 협력에 사활을 걸었지만 이제 그것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 미국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국 제조업이 제2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다. 한·미를 축으로 일본이나 대만 등 다른 아시아 국가 혹은 미국 편에 설 수 있는 제3 세계 국가와의 다자 간 제조 동맹까지 시야에 넣고 돌파구를 찾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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