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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헌의 스포츠세상] 원로 야구선수 장훈의 일본 귀화 안타깝다
박병헌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1-21 06:30:53
 
▲ 박병헌 취재본부장
재일교포 원로 야구 선수 출신인 장훈은 한국프로야구(KBO) 리그 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받는 일본프로야구(NPB)의 전설적인 선수로 평가받는다. 그의 나이 올해 84세다.
 
광복 전인 1940년 경남 창녕군에서 태어나 굶주린 배를 채우려는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장훈은 야구 배트 하나로 전설을 쌓았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5세이던 1945년 8월 큰 누나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고 12세에 사망하는 비극까지 겪는 등 그의 어린 시절은 몹시 불우했다.
 
장훈은 초등학교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활달했다.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우람한 체격 덕분에 감히 장훈의 면전에서 ‘조센징’이라고 놀리거나 괴롭히는 경우는 없었다. 같은 동네 조선인 동포 학생이 일본 학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을 때 그들을 때려 눕혔을 정도로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의협심이 대단했다.
 
장훈은 오른손잡이지만 어린시절 사고로 장애가 생긴 탓에 왼손 타격을 했다. 어렸을 적 뛰어난 수영선수였지만 형의 주선으로 야구 배트를 잡았다. 수영에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았지만 인기도 등을 생각해 야구에 몰두한 것이다. 어머니는 밤에 담근 밀주와 암시장에서 받아온 곱창 등을 팔며 장훈을 뒷바라지했고, 형도 택시운전을 하며 동생을 지원했다.
 
장훈은 남들보다 우월한 체격과 실력을 앞세워 에이스와 4번 타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히로시마현 나니와상고를 거쳐 프로야구 선수가 된 장훈은 데뷔 첫 해부터 은퇴할 때까지 등번호 ‘10번’을 달았다. ‘10번’은 국내 여러 야구 후배에게 좌타자의 상징적인 번호가 되었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언스의 교타자인 장효조·LG트윈스 감독을 지냈던 김기태·양준혁 등은 장훈을 롤모델로 삼고 선수시절 10번을 달았던 선수들이다. 이들 모두 좌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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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은 일본 땅에서 재일 조선인으로서 받는 무시와 설움을 떨쳐 내려 밤낮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최고 타자가 저절로 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 ‘일본프로야구(NPB)의 전설’ 장훈 씨가 2018년 5월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소장품 기증식에서 현역 시절 몸담았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181cm 76kg의 다부진 체격을 가진 장훈은 데뷔 시즌인 1959 시즌 신인상을 수상하고 1962 시즌엔 일본시리즈 우승 및 퍼시픽 리그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하며 야구선수로서 명성을 드높여 갔다. 닛폰햄 파이터즈·요미우리 자이언츠·롯데 오리온즈 등에서 22년간 활약하는 동안 2752경기 출장에 통산 타율 3할1푼9리·3085안타·504 홈런·리그 타격왕 7회를 차지한 최고의 타자로 군림했다. 
 
선수 생활을 일본에서만 했고 이후에도 일본이 주 활동 무대였지만 끝까지 대한민국 국적을 버리지 않고 활약한 위대한 한국인이었다. 장훈은 일본인으로의 귀화를 제의받았지만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재일 한국인으로 살겠다는 굳은 각오였다. 더구나 그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멸시가 극심했던 시기였으나 일본인들의 차별과 시기를 스스로 이겨 냈고 일본 구단의 끈질긴 귀화 요청도 거부한 끝에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로 한국인으로서의 위상을 드높였던 장훈이다.
 
일본 야구전당에 헌액된 장훈은 70만 여명의 재일동포들에게 큰 희망이었으며, 조국에 대한 자긍심을 불어넣은 주인공이었다. “재일교포는 일본에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먹고살기위해 징용이나 징병에 끌려온 사람들이며, 모두 필사적으로 일했다”며 재일교포를 옹호하기도 했다. 그 덕에 1980년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훈했고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일본의 스포츠 선수 출신으로서 대한민국 문화 훈장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은퇴한 이듬해인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 이후 2005년까지 KBO총재 특별 보좌관을 맡으며 국내 프로야구 발전에 밑돌을 깔았다. 특히 일본에서 전성기를 지났거나 여러 차별로 별 활약을 하지 못한 재일 한국인 선수들을 한국프로야구에서 뛰도록 추천한 사람이 장훈이었다.
 
그토록 조국을 바라보며 사랑한 장훈이 결국 일본으로 귀화했다고 한다. 귀화한 지 몇 년이 지났다. 지난 연말 일본 언론을 통해 이 소식이 전해져 마음이 착잡하다. “국적은 종이 한 장 바꾸는 것으로 가능하지만 민족의 피는 바꿀 수 없다. 한국인이라는 것을 잊어 본 적이 없다”는 그였기에 충격이 자못 크다.
 
장훈은 인터뷰에서 “한때 (한국의) 어느 정권은 재일 한국인을 원해서 간 사람들이라든지 다른 나라에서 잘살고 있다든지 하는 식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적이 있다”며 일본을 ‘악의  국가’로 매도하는 등 이념적으로 경도된 집단이 보기 싫었던 게 귀화 배경이라고 밝혔다. 그가 말한 어느 정권은 ‘반일 죽창가’를 외친 문재인 정권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령의 나이에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을 보면 지난 몇 년간의 한국 상황이 노병에게 많은 실망감과 좌절을 안겨 준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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