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로 알고 있다. 법치주의는 군주나 독재자의 자의가 아니라 법이 지배한다는 원리로 ‘법의 지배’(Rule of Law)라고도 한다. 법치주의는 17세기 영국에서 마그나 카르타·권리청원·권리장전 등의 제정으로 군주의 권력을 통제하면서 발전했다. 18세기에는 프랑스 시민혁명의 성공으로 법률 우위 사상과 법치주의 사상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법의 지배는 법률로만 규정하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와 구별되어야 한다. ‘법의 지배’에서는 인간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지만 ‘법에 의한 지배’에서 법은 단지 권력자의 통치 수단에 불과할 수 있다. 경국대전이란 법전이 있었다고 조선을 법치국가라고 하지 않는다. 수권법을 이용해 히틀러가 마음대로 입법권을 휘둘렀던 나치 독일을 법치국가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 경우 법을 지킨다고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에 대한 복종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에 의한 지배’를 형식적 법치주의라고 하는 반면 ‘법의 지배’는 실질적 법치주의라고 한다. 실질적 법치주의에서는 법의 내용까지 정당할 것이 요구된다. 이는 특히 미국에서 발전했는데, 처음에는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의 원칙’이라고 해서 진실을 찾아나가는 절차 자체의 보장을 강조하다가 나중에는 실체적 내용까지도 정당할 것을 요구하는 원칙으로 확대되었다. 미국은 연방대법원에 의한 위헌법률심사제가 일찍이 발달되어 법치주의 확립에 기여했다. 나치에 의한 법치주의 악용을 겪은 독일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실질적 법치주의가 확립됐고 기본법에 사회적 법치주의를 명시하기에 이르렀다.
현대 민주국가는 당연히 실질적 법치주의를 추구하고 이를 헌법과 주요 법률에 반영하고 있다. 기본권 보장·적법절차의 원리, 삼권분립·위헌법률심사제도, 포괄위임입법 금지, 행정의 합법률성·예측가능성과 신뢰보호의 원칙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실질적 법치주의로의 발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법부에 의한 재판 제도의 발달과 확립이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행정과 입법을 재판으로 제재하면서 권력을 통제한 것이다. 그래서 삼권(입법·행정·사법) 분립의 내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실은 사법권의 독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87년 개헌으로 헌법재판소가 출범하면서 숱한 위헌 결정과 헌법소원 인용으로 기본권이 크게 신장됐다.
그래서 어느 나라이건 권위주의 통치자가 등장하거나 일당 독주가 시작되면 사법부 무력화 내지 장악을 시도한다. 베네수엘라가 그렇다. 2015년 야권이 총선에서 압승했지만 이미 마두로 대통령에 장악된 대법원은 철저하게 마두로를 위한 판결을 했다. 2018년 대선에서 마두로에 패한 후아 과이도 국회의장이 과도정부를 선언하며 저항했지만 대법원은 철저하게 마두로에 복속했다. 그 결과 마두로가 3연임을 이어 가고 국가는 끝없이 추락 중이다.
그러므로 사법권 독립을 위해 법원과 법관을 행정과 입법 권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법원의 행정이나 인사에 관여할 수 없다. 법관의 자격도 법률로만 정할 수 있고 임기와 정년이 보장된다.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고 헌법(제106조 제1항)에 명시돼 있다.
그러나 사법권 독립의 궁극적인 목적은 법원과 법관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독립을 보장받는 대신에 헌법(제103조)상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의무를 갖는다. 즉 특정 정당이나 정파에 기울지 말고 중립을 지키라는 것이다. 법관의 양심도 개인의 주관적 양심이 결코 아니다. 법조적·법리적 양심으로서 객관적 양심이다.
국민의 시각에서 볼 때 사법권 독립의 핵심은 법원의 판결이 마치 한 사람의 법관이 내린 것처럼 형평과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위 ‘고무줄 재판’이라고 해서 법원이 어디냐, 판사가 누구냐, 변호사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면 사법에 대한 불신이 초래된다. 이는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이럴 바엔 차라리 인공지능(AI) 판사를 도입하자는 말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데 12.3 계엄 사태 이후 일련의 영장 재판을 보면서 법치주의가 무너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법’의 지배가 아닌 ‘법관’의 지배가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수처가 대통령 내란죄 수사를 할 권한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법조계에서 숱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법원이 무리한 영장 청구에 제동을 걸어 줬어야 하는데 마치 자판기처럼 영장을 발부했다. 입법부도 아닌 영장 판사가 법률 적용을 배제해 버리더니 구속 이유도 단 15자에 불과했다. 이러니 공수처는 망나니처럼 날뛰고 있다. 헌법상 기본권인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을 강제로 끌고 가겠다면서 밤늦게까지 설쳐댔다.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을 보면 실정법에 어긋나게 법을 적용하며 신속 재판만 외쳐대고 있다. 마치 하루라도 빨리 탄핵하려고 작정한 듯한 기세다.
반면에 법원은 이재명에 대해서는 야당 대표라는 이유로 구속을 면해 줬다. 그 덕에 이재명과 민주당은 29번의 탄핵을 남발했다. 모두의 예상을 깬 위증교사죄 무죄 판결 이후로 이재명은 아예 대놓고 ‘재판 땡땡이’를 치고 있다. 법원은 그저 묵묵부답이다.
이런 기이한 현상의 길목에는 희안하게도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그리고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라는 좌파 성향 단체 출신 법조인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찰 지경이다. 사법권 독립을 구실로 법관에 의한 지배, 아니 좌파 법관에 의한 지배가 횡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경이다. 법치주의가 고장난 것이다. 사법부를 이대로 놔둘 것인지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