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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전쟁에는 명분이 중요했다. 전쟁을 벌일 때 실제로는 이 전쟁으로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계산이 깔려 있다고 해도 전쟁을 선포할 때는 정의나 성전 또는 자국민 보호와 같은 멋진 단어들을 쓰기 마련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가 끝난 지 1주일이 지났다. 임시주총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의 판정승으로 끝났지만 순환출자 구조에 따른 영풍 측 의결권 제한이 문제가 되면서 법정에서의 2라운드가 예고됐다.
고려아연과 영풍·MBK 파트너스는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거창한 명분을 내세웠다. 실제로는 고려아연이라는 거대 기업의 경영권을 가지기 위한 경영권 분쟁이었음에도 주주 이익을 우선 내세웠다. 이에 이에 더해 영풍·MBK 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의 재정 문제를 거론했으며 고려아연 측은 아연 제련 기술에 대한 전문성과 국가 핵심기술 유출 방지 등을 내세워 자신들이 더 정의롭고 적법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쟁이 으레 그렇듯이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는 오직 승리하기 위한 수많은 방법이 난무했다. 공개 매수 과정에서 앞다퉈 매수 가격을 올리면서 생기는 재정적 부담을 무시했고 최윤범 회장의 유상증자 카드는 큰 비판을 받으면서 철회됐다.
여기에 임시주총 하루 전에 계열사를 이용해 지분을 사들이면서 상대가 대응할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임시주주총회 당일 의결권이 없다고 선언한 것은 놀랍도록 창의적인 대응 방법이었다. 중복 위임장 문제로 주주총회를 질질 끈 것은 신중을 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나 이것 또한 물밑에서 수많은 암투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대목이다.
서린상사 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제를 거부했던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에 유리한 상황이 되자 소액주주 권리 보호를 외치면서 집중투표를 강력히 주장했고 주주 권익 보호를 앞장서서 외치던 MBK·영풍은 집중투표제가 불리하게 작용하자 바로 반대했다.
영풍은 고려아연에 자사주 소각을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행동주의펀드 머스트자산운용이 영풍이 보유한 자사주 6.62%를 소각해야 한다고 주장했음에도 영풍에서 이에 대해 대처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명분은 그저 명분일 뿐이며 싸움에서 이겨서 이권을 차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에 굳이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대부분의 전쟁이 그렇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명분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그 명분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 정도는 보여야 명분이 바로 설 수 있다.
수많은 방법들이 동원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고려아연과 영풍·MBK가 자신들이 내세운 명분을 뒷받침할 만한 행동을 얼마나 보여줬는지는 의문이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려아연 측이 소통과 대화를 언급하면서 협력을 시도하고 있지만 영풍·MBK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고 결국 그 예상대로 새로운 라운드가 시작되고 있다.
법정 싸움은 또다시 진흙탕 싸움으로 이어질 것이다. 법정은 물론이고 3월에 열릴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에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개싸움이 벌어질 것이라는 그림 또한 모두가 예상하고 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어떻게 끝날지는 모른다. 어느 쪽이 이기더라도 우리는 정의를 위해 싸웠고 우리가 이기는 것이 고려아연 주주들과 직원들을 위한 결과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진흙탕 싸움에서 이기고 나서 흙과 피가 묻은 입으로 하는 말에 설득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양측 모두 기업과 국가를 위해 싸운다고 했으니 그 말에 맞게 조금 더 품격 있는 대결의 장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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