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록산(安祿山)은 당나라 인물이다. 이란계 소그드인 부친과 돌궐족 무녀(巫女)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여느 중국인들과 달리 푸른 눈을 한 색목인(色目人)으로서 자수성가했다. 그런데 그의 출세 배경엔 혼이 담긴 ‘비위 맞추기’가 있었다.
구당서(舊唐書) 등에 의하면 안록산은 젊어서부터 ‘노란 싹’을 과시했다. 어느 날 그는 양떼를 훔치다 유주절도사(幽州節度使) 장수규(張守珪)에게 딱 걸렸다. 처형장에 끌려간 안록산은 돌연 “양번(兩蕃)을 멸하고 싶지 않거든 내 목을 쳐라!”고 적반하장으로 외쳤다. 자신이 거란 등을 토벌할 적임자이니 어디 죽여 보란 뜻이었다.
도둑놈의 큰소리에 혹한 장수규는 안록산을 측근으로 삼았다. 도둑놈은 상전의 ‘발’을 씻길 정도로 영혼을 다해 비위를 맞췄다. 그리고 장수규를 발판 삼아 중앙 정계에 진출했다. 수도 장안(長安)에 입성한 안록산은 전무후무한 ‘딸랑딸랑’에 나섰다.
황제 현종(玄宗)과 후궁 양귀비(楊貴妃)는 연일 주지육림(酒池肉林)에서 허우적댔다. 안록산은 초호화 연회가 열리면 호선무(胡旋舞)를 추어댔다. 호선무는 보는 이가 어지러울 정도로 날렵하게 빙글빙글 도는 춤이다. 그런데 안록산은 체중이 200여㎏에 달했다. 비대한 사내가 허연 뱃살을 출렁이며 정신없이 도니 주변은 배꼽이 빠졌다. 현종이 “네 뱃속엔 뭐가 들었는고?”라고 묻자 안록산은 지체 없이 사탕발림했다. “충심만이 가득하옵니다.”
안록산은 한참 어린 양귀비를 ‘수양어머니’로 모셨다. 매일 입조 전 문안 인사는 기본이었다. 양귀비는 안록산의 옷을 벗겨 ‘목욕’시키곤 했다. 궁궐에선 두 사람이 내연 관계란 추문이 퍼졌다. 소문을 들은 현종은 도리어 박장대소했다.
베갯머리 송사에 넘어간 현종은 도둑놈을 파격 중용했다. 안록산은 무려 세 개 지역 절도사를 겸하는 지위까지 올랐다. 그의 군대는 당군(唐軍) 전체의 3분의 1에 달했다. 대권을 거머쥐다시피 한 전과자는 본색을 드러냈다. 안록산은 서기 755년 안사(安史)의 난을 일으켜 전 국토를 집어삼키려 했다. 이후 당나라는 돌이킬 수 없는 쇠퇴의 길에 들어섰다.
지지율 하락세의 야당이 돌연 ‘우클릭’에 나섰다. 대(對)국민 ‘비위 맞추기’로 반전을 꾀한다는 분석이 정치권에서 나왔다. 그러나 사탕발림하면 재개발 비리 의혹 등을 망각할 거라 믿을 정도로 국민을 ‘바보’ 취급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야당 집권 시 숱한 이들을 길바닥에 나앉게 한 재개발 비리가 아예 전국 단위로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지 않다. 현명한 국민은 현종도 양귀비도 아니다.
오주한 정치전문 기자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