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에 따른 북·러의 밀착화는 단지 지정학적 차원의 사활적 핵심 이익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이는 북한의 외교적 고립 탈피와 러시아의 대(對)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확보라는 당면한 상황적 이해타산에 기초해 필요에 따라 추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러 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고리로 관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런 차원에서 푸틴이 방북한 것이다. 푸틴의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승리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북한의 지속적인 협력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소모전 양상으로 끝없이 장기화됨에 따라 재래식 무기와 탄약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추가 군사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북·러 양국은 군사협력이 공식화되면서 2024년 6월19일 과거 조·소 동맹조약의 자동 군사개입 조항을 포함하는 양국 간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북한은 이 조약을 근거로 전투병을 러시아군에 편입시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기에 이르렀다. 북한군은 2024년 10월 중순부터 1만2000여 명을 파병하여 상당수가 쿠르스크 지역에 배치되었다. 특히 12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전투에 투입돼 상당한 피해를 입기 시작하면서 12월 말까지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사상자가 증가함에 따라 쿠르스크 전선에서의 승리를 위하여 북한이 추가 파병을 실시할 가능성까지도 예상되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대적인 규탄과 제재 강화가 불을 보듯 훤함에도 파병을 결정한 것은 김정은과 푸틴의 이해관계(needs)가 아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가장 먼저 파병의 모태(母胎)가 된 것은 지난해 6월19일 푸틴이 평양을 방문해 체결한 이른바 ‘포괄적 전략동반자관계조약’의 제4조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자동개입 규정이다.
그다음은 푸틴의 절박한 처지가 핵심 동인(動因)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는 2022년 2월24일 ‘특수 군사작전(special military operation)’이라는 명목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으나 어느덧 2년 11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고 있으며, 외교적 고립은 물론 탄약·병력 부족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특히 병력난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북한군의 도움을 받아 승기를 빠르게 잡아 나가야 1월 출범한 미국 신행정부에서 본격화될 휴전회담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수 있다.
한편 김정은도 절박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집권 이후 올인하고 있는 핵·미사일 개발 노선을 변경하지 않는 한 당분간 국제사회의 제재가 풀릴 가능성이 거의 보이지 않고 있는 곤궁 국면,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며 남·북한 간 격차와 경제난이 한층 더 심화되고 주민들 사이에선 대남 동경심이 비등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해 나가야 할 필요성, 즉 이른바 ‘적대적 두 국가론’의 핵심 배경이 커지고 있어 모험적인 베팅을 시도한 것이다.
북한은 러시아에 막대한 규모의 군수품 저장고를 개방함으로써 러시아로부터 새로운 지위를 얻었으며, 대러 무기 지원 대가로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킴과 동시에 러시아의 첨단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관계 강화를 통해 국제적 감시·봉쇄망을 뚫고 핵·미사일 고도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제사회는 러시아가 북한의 무기 지원에 대한 대가로 2024년 3월 대북 제재 이행을 감시하는 유엔 전문가 패널의 활동 연장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와 인공위성 등 러시아의 정교한 군사기술에 대한 접근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대(對)러시아 탄도미사일 및 포탄 등의 공급을 실제 전투에서 무기체계의 성능을 평가·개선할 기회로 활용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고립된 북한은 러시아에게 군사 부문 이외에 식량 등 여러 가지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대북 접근은 탄약 및 포탄 등 군수물자와 재래식 무기를 지원받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서방 문명과 결별하고 미국과 뜻을 같이하지 않는 모든 국가를 규합해 반미 전선을 구축하려는 의도를 품은 것으로 볼 수 있다. 2023년 3월31일 새로 개정된 ‘러시아연방 대외정책개념’은 러시아가 서방 국가들, 특히 미국과의 대결 구도를 견지하면서 비서방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에 주력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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