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합지졸(烏合之卒)은 군기 빠진 군대를 까마귀 무리에 빗댄 말이다. 시커먼 새들이 들판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있는 모습이 꼭 통제 안 되는 병사의 무리 같았던 모양이다. 속담이 말해 주듯 우리나라에서 까마귀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하지만 우리가 원래부터 까마귀를 나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까마귀는 길조로 통한다. ‘삼국유사’ 권1의 기이(奇異) 사금갑(射琴匣)에 보면 신라 21대 소지왕이 천천정(天泉亭)에서 여가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왕 앞에 쥐와 까마귀가 나타났다고 한다.
쥐가 사람 말로 까마귀를 쫓아가 보라고 하자 왕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 그대로 했다. 까마귀는 어느 연못에 이르러 사라졌는데 연못 속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더니 왕에게 봉투를 올리며 이런 말을 했다.
“이 봉투를 열어 보시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
왕은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 봉투를 열지 않았으나 옆에 있던 일관(점술가)이 “한 사람은 곧 왕을 가리키므로 봉투를 열어 보는 게 좋겠다”고 아뢰었다.
그럴 듯도 하여 봉투를 열어 보니 그 안에서 ‘사금갑(射琴匣)’이라는 글이 나왔다. 금갑 즉 거문고 상자를 쏘라는 뜻이다. 왕이 활을 들어 금갑을 쏘자 그 안에서 비명이 들렸다. 화살을 맞고 죽은 이는 왕비와 내전을 드나드는 중이었다. 둘은 사통하는 사이로 왕을 죽일 계략을 짜고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신라에서는 정월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까마귀에게 찰밥으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정월대보름은 까마귀가 나타난 날이다. 찹쌀에 다섯 가지 곡식을 넣어 지으면 밥이 검은색이 되는데 이는 까마귀를 상징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오곡밥을 해 먹고 부럼을 깨 먹는 풍습으로 만족하지만 중국에서는 설부터 정월대보름까지를 춘절 명절로 지낸다. 북한에서는 정월대보름이 공휴일이다.
우리나라에서 까마귀에 대한 인식이 나빠진 것은 6·25전쟁 때라고 한다. 까마귀들이 시체 주위를 맴도는 것을 보고 까마귀와 죽음을 연결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TV 드라마에서 안 좋은 일을 앞두고 까마귀 울음을 하나의 장치로 사용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글자 그대로 까마귀는 흑색선전(black propaganda)의 희생물에 불과하다. 길조였던 까마귀는 언제쯤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까.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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