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으로 이만큼 풍족하게 살면서도 우리 내부는 늘 혼란스럽고 무질서하다. 이념과 가치가 진영으로 나뉘어 쌈박질하면서 극도의 혼돈으로 치닫는다. 왜 이 지경에 다다랐는지에 대해 원인을 알아야 처방전도 나온다.
어떤 문제나 사안을 두고 해결 방법을 찾아나가는 데 다양한 시각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치면 합리적인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사회 구성원이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인사들의 지식이나 경험이 편협하거나 균형 감각이 부족해서 생기고 있는 현상이다. 이런 공동체에서는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상대를 제압하려는 긴장감이 조성되고 공회전을 거듭해 실리적인 접근이 실종되면서 국가는 위기에 노출되고 국익이 밖으로 샌다.
우리와 운명적인 이웃인 중국·일본과는 과거에 그랬듯이 현재에도 실시간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고 있다. 현대사적으로 보더라도 이들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매우 양면적이면서 평가도 분분하다. 때때로 감성에 매몰되고 이성이 마비되어 균형추를 상실하면서 길을 잘못 찾아 헤맨다.
올해 일본과는 수교 60주년이고, 중국과는 33년이 된다. 한국이 이 정도의 경제적 성취를 이루는 데 양국과의 긴밀한 교류가 원동력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상대인 중국·일본도 한국과의 관계 증진을 통해 얻은 이익이 적지 않다. 앞으로도 이런 협력은 계속되겠지만 형태나 방법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기존 방식을 고집하기에는 주어진 환경이나 현실이 빠르게 바뀌고 있고 녹록지 않다.
개략적으로 20년 간격을 두고 한국이 일본을 따라가고, 중국이 한국을 따라온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옛말이고 이제는 역전되어 중국이 가장 앞서간다는 평가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경제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중국은 이제 한국이나 일본이 별로 안중이 없다. 중국 앞에는 오직 미국이 있을 뿐이다. 아쉬운 쪽은 오히려 한국이나 일본이다.
중국은 주력 산업 경쟁력이나 미래 기술 선점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힘을 합쳐도 중국을 상대하기가 버거울 정도다. 거대한 인구와 시장·새로운 기업과 인재의 발굴 등 혁신 경쟁·해외시장 장악력, 그리고 무엇보다 속도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내부 구조적인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외부적인 관점에서 보면 중국은 절대 강자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 이후에도 여전히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기업의 활력도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인지 홀로서기보다 외국 기업과의 합종연횡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는 중이다. 미국 기업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만 기업에까지 손을 뻗친다. 한국 기업과도 내심 협력을 원하고 있으면서도 양국 간의 미묘한 앙금으로 인해 물꼬가 트이지 않고 있다.
한국 기업의 처지도 대동소이하다. 최근 삼성전자·오픈 AI·소프트뱅크 간 한·미·일 3자 민간 차원의 AI 동맹이 어렵게 만들어진 것도 미국 측의 강력한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중국의 강력한 기술 굴기를 견제하고 싶지만 독자적으로는 역부족이고 그렇다고 선뜻 손을 잡기도 어려운 미묘한 상황에서 시간만 덧없이 지나가고 있다.
중국과 한국이 서로 양국을 보는 경제적 정서도 많이 바뀌었다. 중국은 이제 한국으로부터 절실한 것이 별로 없다. 한국 기업의 중국 투자를 기대하기보다는 한국을 중국 상품의 수출 시장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짙다. 실제로 한국 시장은 중국의 의도대로 생활잡화부터 내구소비재, 소재·부품·장비에 이르기까지 중국산이 없으면 경제가 마비될 정도다.
역으로 한국 상품의 중국 시장 내에서의 입지는 갈수록 약화되고 있고, 중국에 진출한 기업까지 생산기지를 3국으로 옮겨야 할 처지다. 미국 등 시장으로의 진출을 위해 중국 기업이 한국을 우회 생산거점으로 활용하고 있을 정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을 위협 대상으로 생각하면서 서둘러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이제는 그마저도 잘 들리지 않는다.
지난 30여 년을 돌이켜보면 한·중 협력이 상호 유익했다. 중국의 고도 경제성장에 한국 기업이 이바지한 바가 크고, 중국은 한국이 선진국 문턱까지 진입하는 데 발판이 된 최고의 효자 시장이었다. 그러나 냉정한 관점에서 보면 지금은 아니다. 중국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중국 시장에 더 많은 기업이 현지에 진출해야 하고 협력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류들이 있다. 그들의 열정과 진심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엄중한 현실을 보면 과거와 같은 잣대나 방식은 이제 중국에 통하지 않는다. 성공할 확률이 낮아진 시장을 바라보고 무모하게 덤비기보다는 승산이 높은 시장이나 상대로 눈을 돌려야 한다. 어려울수록 편향된 사고를 버리고 균형감을 가지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동병상련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과도 더 열린 자세로 협력의 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수교 60주년이라면 이제 성숙해질 시기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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