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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의 도쿄타워] 극적 변화 대신 ‘코츠코츠’‘카이젠’… 일본의 靜中動
박정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2-24 00:02:55
▲ 박정석 도쿄 통신원
문화를 간단명료하게 정의하긴 참 어렵다. 지식백과를 찾아보니 문화란 ‘보편적으로 한 사회의 주요한 행동 양식이나 상징 체계를 말한다’고 돼 있다. 미국의 문화학자 리처드 니부어는 문화란 “인간 활동의 총체적 과정과 그 활동으로 인한 총체적 결과”로 정의하며, 의식주와 언어·풍습·종교·학문·예술·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시켰다.
 
30년 넘게 일본에 살면서 습관처럼 일상 속 일본인들을 관찰해 온 필자에게 가장 와닿는 문화의 정의는 이렇다. “인류에게서만 볼 수 있는 사유·생활방식 중에서 유전이 아닌 학습에 의해 소속된 사회로부터 습득하고 전달받은 것 전체.” 
 
아침마다 차로 출근하다 보면 차선을 바꾸지 않는 일본인들을 접한다. 그것이 준법정신이라기보다 ‘변화를 싫어하는 기질’로 여겨지기 시작한 지 오래다. 과거 한국 TV프로에서 일본의 철저한 횡단보도 앞 차선 지키기를 촬영하던 중, 차선을 살짝 벗어나자 큰 죄를 지은 양 “스미마셍(미안합니다)”을 연발하는 현지인들 모습에 한국 시청자들이 실소를 터뜨렸다. 
 
일본 문화는 모든 면에서 이른바 ‘츠츠시미(謹)’, 즉 삼가는 것을 기본으로 하며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게 미덕이다. 나름의 장점이 있긴 하지만 숨막히는 구석도 있다. 마치 전신을 둘둘 감아 종종걸음밖에 치지 못하게 만든 우아한 여성 정장 기모노처럼 말이다.
 
일본 토요타가 세계 1위를 하기까지 그 정신을 대표한 키워드가 ‘카이젠(改善·개선)’이며 그것의 방법론이 ‘코츠코츠(矻矻)’다. ‘코츠코츠’란 우리말 ‘꾸준히’로 번역되는 부사어인데, ‘뚜벅뚜벅’에 해당하는 의성어이자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모습의 의태어다. ‘코츠코츠’ ‘카이젠’이란 한 번에 확 좋아지진 않지만 조금씩 그러나 착실하게 더 좋은 상태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일본어 사전에선 코츠코츠를 ‘눈에 띄진 않으나 착실히 지속적으로 어떤 행위를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일본인 특유의 정중동(靜中動)이 녹아 있는 표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세계 질서 면에서 가장 동적인 나라가 미국이라면 그에 가장 대비되는 대표적 국가는 정중동의 일본이 아닐까 한다. 그것이 녹아 있는 게 토요타의 ‘카이젠’ ‘코츠코츠’ 정신이다.
 
일본식 카이젠 정신이 ‘분임 토의’의 방식으로 1980년대 한국에 적용돼 경제발전에 기여한 것을 기억한다. 여러 분야에 분임 토의가 자리 잡으면서 업무 효율과 품질을 개선하며 경쟁력을 더해 준 것이다. 한국 경제계의 두 거목에 관한 베스트셀러로 ‘이기는 정주영, 지지 않는 이병철’이 있다면, 세계사 속엔 ‘이기는 미국, 지지 않는 일본’이 존재한다. 우리로선 모두 귀한 이웃이고 자산이며,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이다.
 
한편 중국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태도가 있다. 우직함의 상징, 미련해 보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저력과 불굴의 의지를 상징한다. 시진핑 주석도 이 말을 공식 석상에서 몇 번 쓴 적 있다. 중국의 패권 목표가 우공이산으로 표현된 셈이라 꽤나 문제적으로 들렸다. ‘우공이 산을 옮기다’… 실현 불가능한 일에 어리석게 매달리는 것 같지만 결국엔 목적을 달성하고 만다는 이야기가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온다.
 
옛날 태항산과 왕옥산 사이에 살던 90세 노인 우공이 불편함을 못이겨 산을 깎아 남쪽까지 편하게 오갈 수 있도록 하려 한다. 주위에서 비웃지만 자기가 하다 못하면 자자손손 이어 언젠가 달성된다며 실천에 옮긴다. 결국 지성에 감동한 옥황상제의 초월적 힘으로 목표가 완성되는데, 오로지 착실함·꾸준함이 성공의 비결임을 강조할 때 등장하는 고사성어가 됐다. 일본의 카이젠·코츠코츠 정신과 함께 이 또한 만만히 보아선 안 될 기질이다. 특히 시진핑의 입으로 듣고 보니 좀 으스스했다.  
 
한반도는 주술의 시대를 지나 불교가 1000년간 꽃피었고, 주자학이 500년 융성한 다음 기독교가 들어와 근대화에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이렇게 한반도는 인류사에 가장 고급진 정신문명이 켜켜이 쌓인 곳이다. 한편 토속신앙 ‘신또(神道)’의 일본에 백제로부터 불교가 들어올 때 저항이 심했다. 쇼토쿠(聖德)태자 시절 불교의 융성은 그 아저씨뻘 소가(蘇我) 시대에 저항을 진압한 이후의 일이다. 그러고나서 오랜 세월 신또와 불교가 뒤섞여 유지됐으나 19세기 후반 메이지시대 들어 강제 분리돼 오늘에 이른다. 신또를 근대국가의 정통성과 국민 통합에 활용하고자 불교와 떼어 놓아야만 했던 것이다.
 
기독교가 일본에 전래된 게 이미 16세기였고, 19세기 후반 이래 그토록 열렬히 서구화에 매진했음에도 오늘날 일본은 기독교인이 인구의 2% 미만이다. 천황을 신으로 만들었기에 다른 신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수 있다. 심오한 학술 논의가 가능한 대목이겠지만, 필자는 여기서도 변화에 강한 한국인, 극적인 변화를 싫어하는 일본인들의 기질 차이를 본다. 한·일이 서로를 보완해 윈윈할 여지도 이런 부분을 잘 들여다볼 때 발견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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