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머리에 핵을 이고 살며 밖으로는 자국 중심주의의 물결이 살벌한 칼춤을 추는 가운데 국가안보와 경제에 집중해야 할 이때 난장판이 된 정치 상황에 모두가 넋을 놓고 있지 않은가.
북한보다도 가난했던 시절을 이기고 전 세계 국력 순위 6위의 부강한 나라를 만든 우리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이 혼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를 살피다 보면 그 꼭짓점에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좌파 세력의 득세와 한반도와 세계의 안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북한 핵 개발의 출발점이 김대중 정권임을 고발한 전 국정원 직원의 기록… 이 절박한 시점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북한산 산악 훈련
전반기 교육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즈음 산악 훈련을 갔다. 나는 동기들이 먹을 쌀자루를 지고 북한산에 오르느라 땀깨나 흘렸다. 우리는 북한산과 도봉산 일원에서 야영을 하며 며칠을 지냈다. 신동아 2008년 7월호엔 정규과정 학생들의 지리산 종주 훈련이 기사로 실렸다. 요즘은 북한산 일대에 등산객이 너무 많아 산악 훈련 장소를 지리산으로 옮긴 모양이다. 그 기사는 산악 훈련 과정을 현장감 있게 잘 소개하면서 정보와 감동을 함께 전달하는 훌륭한 기사였다.
우리는 산속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낮에는 체력 단련을 하고 야간에는 담력 훈련을 했다. 몸이 고되기는 했으나 돌이켜보면 즐거운 추억이었다. 비좁은 텐트 속에서 야영하다 보니 동기들끼리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가끔 훈련 후에는 소주 한잔으로 회포를 풀 때도 있었다. 북한산에서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며 마시는 소주는 특별한 정취가 있었다. 밤이면 텐트 속에서 꾼들끼리 몰래 어울려 세븐오디 포커를 치기도 했다. 세븐오디가 우정을 돈독히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스포츠라는 걸 알게 되었다.
훈육관은 이런 종류의 여가 선용은 관대하게 눈감아 주었다. 그 후 양지관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몰래 포커판을 벌였다. 교육 후에도 마음 맞는 동기들끼리 가끔 여관이나 음식점에서 밤새 포커판을 벌이곤 했다.
전반기 교육과정의 하이라이트는 공수와 해양 훈련
전반기 교육과정의 하이라이트는 공수와 해양 훈련이었다. 두 훈련 모두 체력과 담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하는 것이었다. 공수 훈련은 경기도 용인에 있는 특전사 훈련장에서 3주간 실시되었다. 공수 훈련장에 도착해 보니 훈련장이 모래사장일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는 완전히 어긋났다. 그저 산골짜기에 나무를 베어 내고 적당히 정리한 곳이었다.
우리는 일반 훈련병들 틈에 끼어 함께 훈련을 받았다. 처음 2주간은 기본동작과 막타워(모조 시설) 훈련을 했다. 기본동작을 익히기 위해 쉴 새 없이 뛰고 구르는 동작을 반복했다.
고소공포증과 막타워 훈련
막타워는 높이가 10m쯤 되었다. 인간이 가장 공포감을 느끼는 높이가 그 정도 높이라고 했다. 나는 평소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느꼈는데, 그래서 그런지 막타워에서 뛰어내릴 때 도통 자세가 나오지 않았다. 두 손으로는 예비 낙하산을 착 감싸 쥐고 다리를 곧게 펴서 몸을 V자 모양으로 만들면서 양발로 동시에 착지해야 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그게 잘 안 됐다.
부끄럽게도 여자 동기들 중에도 용감하게 뛰어내리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나는 유감스럽게도 영 ‘아니올시다’였다. 뛰어내릴 때마다 몸이 오그라들다 보니 자세가 잘 나오지 않았다. 겁에 질려 눈을 감는 것도 큰 문제였다. 착지 자세가 잘 나오는 친구들은 먼저 통과하여 쉬고 있는데 나는 항상 맨 나중까지 남았다.
우리가 훈련받고 있는 와중에 모 방송사의 무슨 드라마 제작팀이 와서 공수 훈련 장면을 촬영하고 돌아갔다.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때 “탤런트 최수종 씨가 막타워를 멋있게 뛰어내렸다”고 했다. 그가 생긴 것과는 다르게 ‘깡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연속극에서 그가 장보고를 연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가 보여준 카리스마는 그의 성격에서 나온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기부 훈련병‧학사장교 출신 훈련병 간의 패싸움
공수 훈련 중에 한번은 우리 동기들과 학사장교 출신 훈련병들 간에 집단 패싸움이 벌어졌다. 우리는 서로 잘 아는 집단인데 비해 그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오합지졸들이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그들을 두들겨 팼다. 같이 공수훈련을 받던 하사관 후보병들도 있었다. 그들은 노란색의 임시하사 계급장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단풍 하사’라고 불렸다. 그들의 눈에 우리가 좀 과격해 보였던지 그들은 우리를 ‘대북 침투요원’이라며 수군거렸다.
그런데, 문제는 패싸움 후에 발생했다. 구타를 당한 장교들이 사병들 앞에서 집단으로 구타를 당해 장교로서의 품위가 손상되었다며 “훈련을 거부하겠다”고 들고나왔다. 훈련장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 바깥으로 소문이 날 리는 없었지만 외부로 알려지면 좋을 게 없는 일이었다. 그 전 해에는 공수 교육을 받던 안기부 훈련생들이 외출 중에 음주 사고를 일으킨 것이 언론에 보도되어 크게 말썽이 된 적도 있었다.
이번에도 훈육관이 나섰다. 마침 훈육관이 학사장교 출신이어서 장교들을 달래는 데 유리했다. 훈육관은 패싸움을 주도한 동기들을 불러내 공개적으로 빳따를 쳤다. 몽둥이가 여러 개 부러져 나가면서 약간의 전시 효과가 있었다. 훈육관이 그런 식으로나마 어느 정도 성의(?)를 보이자 학사장교들도 분이 좀 풀어진 것 같았다. 그들도 더 이상 문제가 확대되는 걸 원치 않았다. 다행히 사건이 그 정도에서 원만히 해결되었다.
공수 훈련의 마지막 과정은 낙하산 훈련
공수 훈련은 처음 2주간 기본 훈련 기간이 힘들었고, 마지막 주 실전 낙하 때는 오히려 편했다. 나는 체력에 별 문제가 없었으나 다른 동기들은 매우 힘들어했다. 특히 여자 동기들은 불쌍하게 보였다.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으나 문제는 다른 데서 발생했다.
공수 훈련은 최악의 후유증을 남겼다. 부상자가 여럿 발생했다. 낙하산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안전이다. 부상하지 않는 게 중요했다. 안전하게 낙하하기 위해서는 우선 낙하지점을 잘 잡아야 한다. 중앙 십자로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평지에 착지해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훈련장 안쪽에 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점은 두 발을 동시에 착지하는 것이다. 낙하하다가 지면이 가까워지면 갑자기 땅이 솟구쳐 오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는데, 이때 당황하여 발을 헛디디면 발목을 삐게 된다. 자갈밭에라도 떨어지게 되면 다리뼈가 부러져 나간다.
낙하산 훈련… 부상‧사고의 연속
본래 계획대로라면 네 차례 점프하기로 되어 있었다. 기구 점프 1회‧헬기 점프 1회, 그리고 야간과 주간 비행기 점프 각 1회씩이었다. 하지만 기상 악화로 인해 기구 점프는 몇 명만 실행하다가 중도에 그만두었다. 헬기 점프는 그런대로 무사히 넘어갔다. 그런데 야간 비행기 점프 때 운이 좋지 못했다. 불행히도 바람이 심하게 부는 밤이었다.
나는 낙하 대열의 중간쯤에 있었기 때문에 중앙 십자로 근처의 안전지대에 무사히 착지했다. 하지만 동기들 중에는 바람에 밀려 훈련장 바깥으로 멀리 날아가 버린 친구도 있었다. 어떤 동기는 바위에 부딪혔고, 일부는 나무에 걸렸다. 마이크로 훈련상황을 점검하고 지휘하던 통제관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다음 날 주간 낙하 때에도 불운이 이어졌다. 두 번의 낙하 훈련에서 부상자가 열댓 명이나 나왔다. 단순히 발목을 삔 정도는 아예 부상자 축에 끼지도 못했다. 대부분 다리뼈가 부러져 나갔다. 그나마 평생 불구자가 안 생긴 걸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할 정도였다.
그 전 해에 교육받은 선배 중에서는 심하지는 않았지만 평생 불구가 된 경우도 있었다. 부상한 동기 가운데 김준○은 사고를 당할까 봐 “발톱도 깍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가 가장 크게 다쳤다. 시퍼렇게 부어오른 그의 다리를 보고 있자니 애처로운 기분이 들었다. 그는 큰 수술을 받고 여러 달 동안 깁스를 한 채 살아야 했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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