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월25일 탄핵 심판 마지막 변론에서 “직무에 복귀하면 개헌에 집중하고, 잔여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 대통령직을 시작할 때부터 임기 중반 이후에는 개헌과 선거제 등 정치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개헌과 정치개혁을 마지막 사명으로 생각하여 87체제 개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탄핵소추가 기각되어 대통령 직에 복귀하면 임기를 단축해서라도 대통령 직선제를 바꾸는 헌법 개정을 시도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되었다.
그러자 언론과 정치권이 모두 야단이다. 조선일보는 2월27일 자 양상훈 칼럼을 통해 “탄핵이 기각되면 6개월 내에 개헌을 마치고 바로 물러나겠다고 하면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을 수 있고 헌법재판관들도 이를 참작할 것이라고 본다”며 개헌과 함께 임기 단축 퇴진을 몰아붙이고 있다. 오세훈·한동훈·김동연·김두관 등 잠룡들도 대체로 4년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 임기는 2028년 총선에 맞춰 3년으로 단축해야 한다면서 마치 대통령 임기를 ‘바겐세일’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진정성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현 대통령도 아닌 제3자들이 대통령 임기를 흥정하는 것도 가관이다.
물론 12.3 비상계엄 사태로 87년 헌정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난 이상 다수 국민도 개헌에 공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제일 큰 쟁점은 대통령제 유지 여부와 대통령 선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의원내각제로 가자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나오긴 했다. 발전된 민주국가는 대부분 의원내각제를 택하고 있다. 문제는 의원의 수준이 높아야 내각제가 원활하게 작동되는데 작금의 한국 정치 현실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재명 팬클럽 회원같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나 영남 텃밭에 안주하는 여당 의원들에게 행정까지 맡기면 나라 꼴이 말이 아닐 것 같다. 대통령 당선 아니면 감옥행밖에 없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내각제를 수용할 리도 없어 보인다. 보수층 역시 반대할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 내각제를 하면 권력을 통째로 민주당에 갖다 바치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현행 헌법은 의원의 각료 겸직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미 내각제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내각제보다는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5년 단임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식 4년 중임제 개헌이 가장 선호되는 것 같다. 현행 단임 대통령은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레임덕에 빠지거나 독선으로 흐를 수 있는 문제점을 중임제로 극복하자는 것이다.
사실 87년 헌법은 독재의 트라우마로 직전 5공 헌법에 비해 대통령 직선제와 연임 금지에만 몰두한 면이 크다. 대통령 임기도 7년에서 5년으로 단축했다. 그러나 단임 대통령이 5년 안에 성과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임기 절반을 지나면 레임덕에 빠지기 쉽고 여당이 의회 소수당인 경우에는 야당의 반대에 부딪쳐 국정을 제대로 펼 수가 없다. 이번 윤석열정부가 딱 그렇다. 그래서 국민 다수의 의견도 4년 중임제에 쏠리는 것 같다.
그런데 4년 중임제 개헌 시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 있는데, 바로 현직 대통령의 선거 운동 허용이다. 미국 대통령은 임기 중에 중간 선거가 있기도 해서 늘 선거운동을 하고 다닌다. 그런데 우리나라 실정은 어떠한가. 현행 공직선거법은 현직 대통령뿐 아니라 자치단체장의 선거운동이 금지되고 있다. 연임에 도전하는 자치단체장은 선거일 120일 전까지 사퇴해야 한다. 이 기간 동안 행정 공백이 발생하지만 선거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다.
그러나 재선에 도전하는 현직 대통령에게까지 사퇴를 요구할 수는 없다. 국정 공백은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직을 유지하며 선거를 치루는 대통령은 사실상 관권을 동원할 가능성이 큰데 국민 정서가 이를 용납할 아량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그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처럼 1% 이하의 근소한 차이로 당선된 대통령이라면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대통령이 재선하겠다고 선거운동을 하고 다니는 것을 용납할 아량이 없기 때문에 중임제를 시행하면 자칫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래서 필자는 중임제보다는 오히려 단임을 유지하되 결선투표제를 실시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결선투표제란 유효투표의 과반수를 얻는 후보자가 없을 경우에는 1·2 등 후보 간에 결선투표를 실시해서 과반수 득표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하는 제도이다. 다수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을 선출해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프랑스·폴란드·브라질·아르헨티나 등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 대부분이 결선투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시행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에 불과할 정도로 오히려 극소수이다.
결선투표제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 3위 이하 정당과 1·2위 정당 간에 연합이 시도되어 제3당 출현의 기반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나 충청도 같이 정치적으로 소외된 지역에서 지역정당이 출현해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 결선투표제의 장점 중 하나는 양당 간의 극단적 대립이 극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당제를 실현해 보겠다고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지만 위성정당이라는 기형만 낳은 채 정의당이 소멸해 버리는 참사가 벌어졌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헌법은 대통령 선거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위임하고 있어서 공직선거법 개정만으로도 결선투표제를 시행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21대 국회에서 이탄희 민주당 의원이 실제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고, 개헌 역시 매우 번거롭고 힘든 절차이다. 그렇다면 중임제를 채택할 것이 아니라 이미 익숙한 대통령 단임제를 유지하되 결선투표제를 시행해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고 다당제의 토양을 마련하는 데 집중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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