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6-09-28 20:33
뉴스 > 연재기획
전 국정원 직원의 양심 증언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 [19] 청운의 꿈 품었건만… 허드렛일 하자니 한숨
김기삼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06 06:30:36
 
▲ 김기삼 전 국정원 내부고발자
  
 
 
잠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머리에 핵을 이고 살며 밖으로는 자국 중심주의의 물결이 살벌한 칼춤을 추는 가운데 국가안보와 경제에 집중해야 할 이때 난장판이 된 정치 상황에 모두가 넋을 놓고 있지 않은가. 
북한보다도 가난했던 시절을 이기고 전 세계 국력 순위 6위의 부강한 나라를 만든 우리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이 혼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를 살피다 보면 그 꼭짓점에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좌파 세력의 득세와 한반도와 세계의 안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북한 핵 개발의 출발점이 김대중 정권임을 고발한 전 국정원 직원의 기록… 이 절박한 시점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사명감과 소명 의식… 정보요원의 에너지원
 
국정원 업무는 대체로 폼 잡고 고상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이미 말했다시피 ‘007’ 제임스 본드와는 거리가 멀다. 정상적으로 안 되는 일을 국가 이익이라는 목적에 맞추려다 보면 때로는 비정상적이고 불법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다가 잘못되면 누군가에게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욕을 먹는 것은 정보기관 요원의 숙명이다.
 
그래서 국정원 직원은 ‘익명(匿名)에의 정열, 음지에서의 헌신’에 대한 자기 확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가를 위해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한다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누가 알아주리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언감생심이다. 때로는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하는 회의감이 몰려올 때가 있다. 그래서 사명감과 소명의식이란 에너지원 없이는 버틸 수가 없다.
 
흔히 정보요원은 눈, 코, 귀는 기형적으로 발달시켜야 하지만 입은 흔적만 남은 기관처럼 퇴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치 천형(天刑)을 진 사람들처럼 말이다.
 
지조와 자기주장 버려야…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정보기관에서는 자기주장이란 게 있을 수 없다. ‘지조’라는 말은 사치이다. 싫든 좋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권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그때마다 내면적인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정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신이 떠나야 한다. 자신을 죽여야만 살 수 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나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며칠 휴가를 보낸 뒤 나는 1994년 1월 초부터 소위 ‘남산’으로 출근했다. 일반인들에게는 공포와 전율의 대명사로 알려진 ‘남산’이었지만 나는 그저 무덤덤한 기분이었다. 당시 남산에는 국내정보 부서뿐만 아니라 대공 수사와 외사 방첩 부서, 그리고 감찰실 등 안기부의 핵심부서가 모두 모여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국내정보 수집 부서인 대공정책실로 발령이 났다.
 
우선 ‘대공정책실(대정실)’이라는 명칭부터 좀 설명하는 게 좋겠다. 대체로 국정원 부서의 명칭은 그 부서의 실제 업무 성격과는 거리가 있다. 굳이 ‘위장 명칭’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정확한 명칭은 아니다. ‘대공정책실’은 명칭대로라면 간첩을 잡기 위해 정책을 세우거나 정보를 수집하는 곳이어야 제격인데 실제로는 국내 정치정보 수집 부서였다. 중앙정보부 시절에는 ‘서울 분실’이라고도 불렸던 모양이다. 수도 서울에서 벌어지는 모든 정보를 수집하는 부서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서울대 법대 출신이라야 상대
 
나는 동기 한 명과 함께 신문과(新聞課)에 배치되었다. 국내정보반에서 함께 교육받았던 나머지 13명은 모두 국내정보 분석 부서인 기획판단국(企劃判斷局)으로 발령을 받았다. 나중에 듣기로는“신문과의 이양○ 기획관이 정보학교까지 직접 찾아와서 우리 둘을 선발했다”고 한다. 이런 일은 흔히 있던 일은 아니다.
 
 
▲ 당시 남산에는 국내정보 부서뿐만 아니라 대공 수사와 외사 방첩 부서·감찰실 등 안기부의 핵심부서가 모두 모여 있었다. 나는 신문과 기획반에 배속되었다. 기획반은 팀장인 기획관을 중심으로 2·3명의 기획반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획반은 과의 컨트롤타워 같은 곳이었다. 연합뉴스
 
당시에는 80년대 말부터 진행된 민주화 분위기에 힘입어 언론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정보기관이 예전처럼 언론을 ‘조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협조를 받아 내기도 점차 힘들어지고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언론 여건이 나날이 열악해지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학벌이라도 받쳐 주는 직원을 언론 수집관으로 차출하려다 보니 우리 둘이 불려오게 된 것이었다. 나는 서울대 법대 출신이었고, 같이 간 동기는 경기고와 고려대 출신이었다.
 
이양○ 기획관은 80년대부터 오랫동안 조선일보 담당관을 지낸 덕에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정통한 사람이었다. 그는 “조선일보는 서울대 법대 출신이 아니고는 접근이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 아마 조선일보 편집진에 유독 서울대 법대 출신이 많아서 그렇게 말한 게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신문과에 발령받기 전부터 나는 이양○ 기획관에 의해 장차 조선일보 담당관으로 이미 내정되어 있었던 셈이다.
 
신문과에 배치되어 인사를 갔을 때 과의 선배들은 “언론고시를 쳐서 조선일보에나 들어갈 것이지 여긴 뭣 하러 들어왔냐”며 농담으로 핀잔을 줬다. 나는 “아무렴 일국의 정보기관이 일개 신문사보다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고 웃으면서 받아넘겼다.
 
오리엔테이션 기간 각 과를 돌며 신입 인사
 
처음 일주일은 오리엔테이션이라 해서 적응 기간으로 각 과를 돌며 인사를 했다. 나는 하루에 한 과씩 순례하면서 대공정책실 요원들의 안면을 익혔다.
 
첫날 정치과를 방문하니 강욱○ 선배가 육중한 몸매에 어울리지 않게 특별한 방식으로 애정을 표시해 줬다. 그는 우리에게 ‘앉았다 섰다’를 시키는가 하면 코를 잡아당기기도 했다. 마치 군대에서 새로 전입해 온 신병들이 너무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꾹 참았다.
 
다음 날 학원과에서는 한양대학을 담당하고 있던 조광○ 선배 등으로부터 따뜻한 대접을 받았다. 특히 입사 1년 선배인 금장○ 선배가 우리를 살갑게 대해 주었다. 사회과에서는 조성○‧김남○ 등 젊은 직원들이 우리를 서울역 시위 현장으로 데리고 나가 현장실습을 시켜 주었다. 종교과에서는 먼저 입사해 일하고 있던 고등학교 후배를 만났다.
 
 
광고
나는 이렇게 대공정책실 전체 10여 개 과를 돌았다. 평소 안기부 수집관이라면 굉장한 사람들일 거라는 선입관이 있었는데 막상 만나 보니 별달리 특별한 점이 없었다. 모두가 그저 평범한 공무원들처럼 보였다. 조금은 의외였고, 조금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때 생각으로는 ‘정보기관이란 곳을 너무 과대평가할 필요가 없는 게로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보기관을 얕잡아 보다가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나의 행색에서 촌티가 가시지 않았던 탓인지 사람들은 나를 고려대 출신으로, 같이 갔던 다른 동기를 서울대 출신으로 착각하곤 했다.
 
허드렛일하는 행정관으로 신문과 기획반에 배속
 
나는 신문과 기획반에 배속되었다. 기획반은 팀장인 기획관을 중심으로 2‧3명의 기획반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획반은 과의 컨트롤타워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행정과 기획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기획반은 수집관들로부터 각자의 일일 수집 계획을 파악하기도 하고, 상부에 보고할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기획반의 가장 말단 직원을 행정관이라고 부르는데, 행정관은 과의 모든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직원이었다. 행정관은 자질구레한 행정 사항을 모두 챙겨야 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과장의 개인비서 노릇도 해야 하기 때문에 고달픈 직책이었다. 청운의 뜻을 품고 정보기관에 들어와서 1년간 고된 훈련을 마치고 막상 실무에 투입되었는데 고작 허드렛일이나 하고 있으려면 한숨이 저절로 날 법도 하다. 그래서 각 과의 행정관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는 저녁나절이면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 한 대를 나눠 피우면서 서로 애환을 나누곤 했다.
 
신문과장은 이장○이라는 분이었는데, 그는 덩치에 비해 좀 좀스러운 데가 있었다. 그는 행정관을 혹사시키는 스타일이었다. 전임 행정관인 윤점○ 선배는“과장의 집 전기료를 대납해 주러 은행 심부름을 가기도 했고, 심지어는 과장 딸의 교과서를 대신 타다 주기도 했다”며 투덜거렸다. 그는 행정관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였는지 우리를 무척 반기는 듯했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후원하기
  • 정기 후원
  • 일반 후원
  •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는 공공성에 기반해 독자가 만들어 가는 언론을 지향합니다. 정기 또는 일반 후원시 맞춤형 뉴스, 독자에게 할당하는 지면 서비스, 동행하는 홍보, 유상증자시 참여기회 제공(법인에 한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2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댓글 : 0
방문수(PC&모바일)
오늘(실시간) 129,573 ▶
어제 140,329 ▶
최근 7일 ▶
대한민국 명사들
대면 기회를 가져보세요.
팬클럽 가기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방배천로2안길 82(방배동 463-18) 청송빌딩 3,4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종합일간지 등록번호 : 서울시 가50131,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민경두, 편집국장 : 주경준, 사업자 번호 : 214-88-81099 후원계좌 : 158-910019-39504(하나은행)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진강
본지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서약사로서 신문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