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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정원 직원의 양심 증언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 [20] 신문과 배속 한 달 만에 부속실 이동… 졸지에 ‘보좌관님’
김기삼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07 06:30:40
 
▲ 김기삼 전 국정원 내부고발자
   
 
잠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머리에 핵을 이고 살며 밖으로는 자국 중심주의의 물결이 살벌한 칼춤을 추는 가운데 국가안보와 경제에 집중해야 할 이때 난장판이 된 정치 상황에 모두가 넋을 놓고 있지 않은가. 
북한보다도 가난했던 시절을 이기고 전 세계 국력 순위 6위의 부강한 나라를 만든 우리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이 혼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를 살피다 보면 그 꼭짓점에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좌파 세력의 득세와 한반도와 세계의 안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북한 핵 개발의 출발점이 김대중 정권임을 고발한 전 국정원 직원의 기록… 이 절박한 시점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신문과에 적응하며 졸지에 기획관의 최측근으로
 
나는 신문과에 빠르게 적응해 갔다. 다른 신입사원들처럼 열심히 일하고 겸손히 배우려고 노력했다. 매일 일찍 출근하여 사무실 청소와 걸레질부터 했다. 당시까지도 대정실 청사 사무실 바닥은 대걸레로 청소해야 했다. 선배들과도 그런대로 잘 어울렸다. 선배라고 해 봐야 비슷한 또래였다.
 
나의 직속상관이었던 이양○ 기획관은 성격이 매우 꼼꼼하고 까탈스러운 분이었는데, 웬일인지 나에게는 특별히 잘해 주었다. 아마 자신이 직접 골라온 직원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나에게는 칭찬도 인색하지 않았다. 한번은 내가 과의 벽시계를 고쳐 놓았더니 “시계가 틀려도 아무도 신경을 안 썼는데 새로 전입해 온 직원이 바로 고쳐 놓았다”며 공개적으로 나를 칭찬했다. 그때부터 나는 졸지에 기획관의 최측근으로 분류되었다.
 
 
이 기획관은 내가 부속실로 자리를 옮겼을 때와 후에 대공정책실을 떠나게 되었을 때 많이 아쉬워했다. 내가 외국으로 연수 나간다고 인사하러 갔을 때도 특별히 불러 전별금 봉투를 건네주기도 했다. 그는 진심으로 나를 훌륭한 조선일보 담당 후계자로 키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같이 좀 못하자”
 
하루는 같이 배치되었던 동기가 “할 얘기가 있다”며 “복도에서 좀 보자”고 했다. 그는 대뜸 나에게 “네가 사무실에서 너무 잘하는 바람에 내가 상대적으로 못하는 것으로 비쳐 불편하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차라리 같이 좀 못하자. 선배들에게도 깍듯이 할 게 아니라 적당히 말도 놓고 쉽게 지내자”고 제안해 왔다.
 
나는 그의 얘기를 듣고 조금 황당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입 직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그 때문에 시기를 받을 줄은 몰랐다. 내가 동기의 입장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는지 반성해 보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그때 ‘정보기관은 가치가 전도된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는 곳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그 동기는 그 후 이종찬 원장 시절, 한화그룹을 담당하는 수집관으로 활동했는데 돈 문제로 면직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는 집권당의 당직을 맡고 있는 경기고 출신 모 선배에게 긴급히 구명을 요청한 덕에 간신히 살아났다고 한다. 한참 후에 그가 퇴사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는데, 나라를 위해서도 그 자신을 위해서도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 CIA국장의 방한 한겨레 특종 보도로 ‘보안 사고’
 
내가 신문과에 발령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울시 미 CIA국장의 방한 사실이 한겨레신문에 보도되는 사건이 일어났다(1994년 1월21일자 한계레 신문 1면 사진 기사 참조). 극비로 방한한 우방국 정보기관장의 동선이 노출되었으니 커다란 보안사고가 터진 것이다. 한겨레의 사회부 기자들은 울시 국장의 방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국방부 청사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행사 진행 요원들이 가까이에서 찍은 필름은 압수했지만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은 빼앗지 못했던 모양이다.
 
 
▲ 1994년 1월21일 제임스 울시 미 CIA 국장의 방한 사실이 한겨레신문에 보도되었다. 극비로 방한한 우방국 정보기관장의 동선이 노출되었으니 커다란 보안사고가 터진 것이다. 문민정부에서는 이러한 보안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울시가 1993년 2월2일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미 중앙정보국장으로 지명된 후 선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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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난 후 감찰실은 어디서 보안이 새어 나갔는지 파악하느라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하지만 끝내 유출자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아마추어인 청와대에서 누설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문민정부에서는 이러한 보안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그 점에서는 참여정부의 행태와 많이 닮았다. 보안사고는 준비 안 된 아마추어들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그때 특종을 주도한 한겨레 사회부의 이모 기자는 그 후 노무현 정권 때는 한국기자협회 회장이 되었다.
 
한겨레신문 사회부는 문민정부 내내 정권을 꽤나 괴롭혔다. 그들은 팀을 조직하여 김현철을 파파라치처럼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한겨레는 김현철이 고려대에 편입하기 전 한성대에 다닌 사실을 취재하여 보도할 시점을 저울질하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김현철 관련 정보가 가장 민감했다.
 
조선일보도 질세라 ‘러시아 SVR 국장 방한’ 특종 보도
 
한겨레의 특종으로 ‘물먹은’ 여타 신문들이 후속 취재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일보의 박모 기자가 “러시아 대외정보국(SVR)의 프리마코프 국장이 93년 말에 방한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특종 보도했다.
 
알고 보니 박 기자는 나와 동년배로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이었다. 서양 속담에 “남의 집 마당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인다”고 하더니 그때 내 꼴이 좀 그랬다. 특종 기자가 부러웠던 것은 아니지만 정보기관에 들어와 허드렛일이나 하고 있는 내 처지가 조금은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조선일보에 보도가 나간 직후 또 다른 신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한‧미‧러 3국의 정보기관장이 서울에서 만나 한반도 문제를 논의했다’고 썼다. 이 기사는 너무 ‘오버’한 것이었다. 순전히 추측에 근거한 소설이었다. 언론사 간의 과당경쟁이 빚어낸 해프닝이었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우리나라 언론의 현주소라 할까, 수준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대공정책실 부속실의 ‘새끼’ 보좌관
 
나의 신문과 생활은 의외로 빨리 끝났다. 대공정책실 부속실 보좌원으로 불려갔기 때문이다. 신문과에 배정된 지 한 달여가 지났을 때 인천지부장에서 새로 대정실장으로 부임한 오정소 실장이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나를 대공정책실 부속실의 보좌원으로 임명했다. 보좌원도 대개 보좌관이라고 불렀다. 혹자는‘새끼’ 보좌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내가 보좌원으로 불려간 것은 일종의 행정착오 성격이 있었다. 왜냐하면 보좌원은 대개 부서에 배치된 지 1~2년이 지나 부서 돌아가는 사정을 좀 아는 직원 중에서 뽑는 게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오정소 실장은 내가 부서에 배치된 지 1~2년 지난 것으로 착각했거나 아니면 아예 그런 고려조차 하지 않고 그저 학력 등을 보고 대충 뽑았을 것이다.
 
신문과장은 내가 부속실로 불려가는 게 못마땅했던지 “오 실장과 무슨 사이냐. 어떻게 해서 부속실로 가게 됐느냐”며 취조하듯이 따져 물었다. 그러다가 내가 부속실로 옮겨 갈 것이 확실해지자 그는 금세 태도를 바꿨다. 별안간 아부 모드로 돌변한 것이다. 그 후 그는 부속실에 올 때마다 나에게 ‘보좌관님’이라며 깍듯이 존칭어를 썼다. ‘보좌관에게 잘못 보이면 불편해진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권력 앞에 엎드리고 끝나는 권력에 앞서 일어서는 국정원 ‘직업병’
 
국내 부서의 국정원 직원들은 권력에 지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들은 권력의 바람이 불어오기 전에 먼저 엎드렸다가 권력의 바람이 지나기 전에 먼저 일어선다. 서글픈 일이지만 나는 국정원 간부들이 겨자씨만 한 권력 앞에서도 비굴해지는 경향이 있음을 목격할 때가 많았다. 정보기관에 오래 근무하다 보면 자연히 체질이 그렇게 바뀌나 보다. 아마도 일종의 ‘직업병적’ 증세가 아닌가 생각된다.
 
부속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곳이었다. 팽팽하게 긴장된 생활이었다. 보좌원의 하루 일과는 실장이나 부실장의 잔심부름을 비롯한 부속실의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을 모두 처리하는 것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7시경에 출근했다. 출근하자마자 실장실과 부실장실의 재떨이를 비우고 손때 묻은 책상 위 유리부터 닦았다. 당직을 서는 선배들은 “보좌관이 왜 청소를 하느냐”고 만류했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 직원이 아침부터 걸레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던가 보다. 하지만 청소하는 아주머니는 사무실에 들어올 수 없고 여직원은 늦게 출근하니 우선은 내가 대충 청소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안 해도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게 했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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