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머리에 핵을 이고 살며 밖으로는 자국 중심주의의 물결이 살벌한 칼춤을 추는 가운데 국가안보와 경제에 집중해야 할 이때 난장판이 된 정치 상황에 모두가 넋을 놓고 있지 않은가.
북한보다도 가난했던 시절을 이기고 전 세계 국력 순위 6위의 부강한 나라를 만든 우리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이 혼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를 살피다 보면 그 꼭짓점에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좌파 세력의 득세와 한반도와 세계의 안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북한 핵 개발의 출발점이 김대중 정권임을 고발한 전 국정원 직원의 기록… 이 절박한 시점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미림팀장 공모 씨… 성실하고 수완 좋은 의리파
공운○ 씨는 선린상업고등학교 야간부를 졸업했고,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일에 관한 한 그는 민완하고 배짱 있는 사람이었다. 책임감도 강하고 의리도 있었고 열정과 자부심도 대단했다. 지난번 국정원 도청 사건으로 그가 무슨 크게 ‘나쁜 짓’을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잘못 알려진 측면이 있다. 그는 주어진 일을 충실히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욕을 먹어야 한다면 그에게 그런 일을 시킨 사람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림 사업은 극비에 속하는 사업이었다. 안기부의 같은 부서 내 사람들도 어렴풋이 짐작만 했을 뿐 대부분의 직원은 몰랐던 사업이다. 김덕 부장 같은 사람은 존재조차 모르고 퇴임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민감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공운○ 씨는 그런 일을 태연스레 해냈다. 그것도 아주 기가 막히게 잘 해냈다.
어느 날인가 미림팀 요원으로 일했던 선배가 일화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가 TK 인사들에 대한 작업을 마치고 한참 지난 후 장비를 회수하러 작업실에 들어갔는데 누군가 뒤에서 자기를 확 덮치더라는 것이다. 그는 순간적으로 ‘눈치 채였구나’ 하고 판단하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미친 듯이 대들어서’ 겨우 상황을 모면했다고 한다.
공운○ 씨도 비슷하게 낭패당한 얘기를 해 준 적이 있다. 한번은 대통령 비서실에서 예약한 저녁 식사 자리에 도청기를 꽂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 비서실의 누군가가 나타나리라고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김영삼 대통령이 들어서더라는 것이다. 그들은 예상치 못한 대통령의 출현에 혼비백산하고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요원 3명 구성의 초미니 조직 ‘미림팀’
미림팀은 공운○ 팀장을 비롯해 3명으로 이루어진 초미니 조직이었다. 공 팀장과 그를 보조하는 젊은 직원이 두 명 있었다. 장○○와 박○○이었다. 이들은 둘 다 착하고 책임감 있는 요원들이었다.
미림팀 일이 위험한 일이다 보니 아무도 이 일을 선뜻 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래서 공 팀장은 요원을 충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언젠가 공 팀장은 나에게 박○○을 팀원으로 영입할 때의 에피소드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공 팀장이나 박○○이나 둘 다 정규 일반직원이 아니라 행정 보조요원으로 입사한 사람들이었다. 공 팀장은 박○○에게 “9급 출신이 회사 내에서 살아남으려면 미림 일이 가장 낫다”고 설득한 끝에 그를 영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난번 미림팀 일이 세상에 알려지고 나서 박○○은 가택수색까지 당하고 악의적인 언론에 시달렸다. 나는 그런 기사를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내가 미림팀의 존재와 실상을 세상에 알렸기 때문에 그가 욕을 먹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순수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이 지면을 빌려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미림 보고서’… 안기부 최고급 정보‧대한민국 최고의 야사(野史)
공운○ 씨는 매일 오전 부속실에 들러 밤새 작업한 결과를 보고했다. 미림팀이 수집한 정보는 손꼽을 정도의 인원만 볼 수 있는 안기부 내의 최고급 정보였고 대한민국 최고의 야사(野史)였다. 그가 작성한 미림 보고서는 오 실장이 직접 관리했기 때문에 내가 볼 수는 없었다. 부속실의 모든 보고서는 내가 책임지고 관리했지만 미림 보고서만은 예외였다. 나는 어쩌다 오 실장의 책상 위에 놓인 미림 보고서를 힐끗 볼 수 있었을 뿐이다.
그가 수집해 온 정보는 언제나 나라를 뒤집을 만한 폭발력이 있는 것들이었다. 거기엔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지난번 언론에 소개된 대로,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 같은 사람도 미림 보고서 한 장에 단번에 날아가 버렸다.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이회창 국무총리나 박상범 경호실장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경질되었다.
나는 미림 보고서가 어떻게 쓰이는지 지켜보면서 정보기관의 힘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미림팀의 활동에 대해서는 2005년 5월22일에 방영된 ‘손석희의 시선 집중 인터뷰’를 참조하면 된다.
대공정책실 보좌원이 지켜본 정치권력의 민낯
돌이켜보면 대공정책실 보좌원으로 1년간 근무하면서 참으로 많은 일을 보고 들었다. 권력의 턱 밑에서 일하다 보니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었다. 장막 뒤편에서 정치권력이 지어 보이는 음흉한 미소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무대 뒤편에서 정치권력이 토해 내는 거친 숨소리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종필 총재의 관계가 깨지는 과정은 실시간으로 중계하듯이 지켜보았다. 그건 마치 초등학교 어린아이들 다툼 같아 보였다. 아니 그보다도 못해 보였다. 전국 각지에서 사건 사고가 봇물 터지듯 일어나고 사회 각계각층의 집단적인 이해관계가 충돌했을 때, 아마추어 문민정부가 갈팡질팡 허둥거리던 장면도 가까이서 관찰했다.
정치와 언론의 악어와 악어새 같은 기이한 공생관계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신문에 보도된 수많은 사건의 행간에는 보도되지 않는 은밀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방송에 보도되는 수많은 사건의 뒷면에도 방영되지 않는 깊숙한 이야기가 따로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추락한 민심을 호도하기 위해 연예계 사정이라는 칼을 빼 들었을 때는 연예계라는 별천지의 치마 속 풍경을 흘깃 들여다보는 행운도 누렸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우리나라의 국가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저열한 인간들인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얼마나 형편없는 곳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 사회는 정치권‧언론계뿐만 아니라 법조계‧종교계‧학계‧재계 등 어느 곳 하나 성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본 우리 사회는 수술하려고 칼을 들었다가 상태가 너무 심하여 그냥 덮어 버리지 않을 수 없는 환자와도 같은 실정이었다. 비록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이 기회에 내가 본 문민정부의 민낯과 우리 사회의 뒷모습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정보보고서 읽기를 싫어한 YS
김영삼(YS) 대통령은 정보기관에 대한 불신이 대단했다. 그는 과거 야당 시절에 중앙정보부와 안기부로부터 감시당하고 구박받았던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는 듯했다. 대통령이 되었으면 자신의 수족과 다름없는 정보기관을 신뢰하고 감싸 주어야 했는데 그는 체질적으로 그러질 못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정보기관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했다. 피는 고사하고 먼지도 묻히기 싫어했다.
문민 정권 초기, 김덕 부장이 매주 목요일 오전에 청와대로 주례보고를 갔다. 그런데 심심찮게 “대통령이 진지하게 보고를 받지 않는다”는 얘기가 들렸다. “YS가 보고서 읽는 걸 싫어한다”는 말도 들렸다. “부장이 보고하러 들어갔다가 보고서를 그냥 책상 위에 놓고 왔다”는 수군거림도 있었다.
대통령이 챙겨 보지 않는 보고서는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다. 각 수석실에서는 보고서 제목만 대충 보고 가져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개 이런 과정에서 보안사고가 터진다. 이런 측면에서 김영삼의 청와대와 노무현의 청와대는 많이 비슷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영삼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판단한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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