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부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종종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진핑 덕분에 중국이 미국을 앞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미국 국제정치학자들을 만난 기억이 난다. 그들은 떠오르는 중국이 시진핑 때문에 미국을 앞지를 가능성은 없으며 그래서 시진핑이 중국공산당의 주석이라는 사실이 고맙다는 것이다. 시진핑 때문에 중국은 더 이상 부상하기는커녕 폭망해 버릴 것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실제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브렛 스티븐스(Bret Stephens)는 시진핑의 세 번째 임기가 시작될 무렵인 2022년 10월8일 ‘Thank You Xi Jin Ping(고마워요 시진핑)’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이후 ‘고마워요 시진핑’은 미·중 패권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되었다. 대다수 미국인은 시진핑이 마오쩌둥 이상의 권력을 거머쥐고 사실상 임기를 폐지한 후 3기 중국 국가주석직을 차지했을 때 중국의 부상은 끝났다고 생각했고, 미국의 패권 시대가 오래 지속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경제가 발전한 나라는 정치도 발전한다는 것이 역사의 철칙이다. 경제 발전이란 국민과 국가가 부유하게 됨을 의미하고 정치 발전이란 국가의 지배 방식이 자유화·민주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의 관계를 특별히 강조하는 미국 정치학자 세이무어 마틴 립셋 은 “경제 발전은 민주주의의 선결 조건(prerequisite)”이라고 말로 경제 발전이 이루어진 나라만이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는 유명한 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립셋 교수의 이론은 대한민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경제 발전을 이룬 후 독재 정치체제로부터 민주주의 국가로 전환된 과정을 잘 설명해 준다. 수많은 미국인이 중국이 경제 발전을 이룩할 경우 궁극적으로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기 때문에 부강한 중국이 미국의 위협이 될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중국의 경제 발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중국이 부강해질 경우 미국의 패권을 빼앗을지도 모르는 용(龍) 같은 무서운 나라가 되리라는 걱정은 부질없는 것이라며 무시되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의 역사, 특히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역사는 경제 발전을 이룩한 나라가 민주주의로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독재 체제가 더욱 심각하게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시진핑의 중국에서는 립셋 교수의 이론이 예상하는 바와 정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경제력이 강해진 나라가 민주화를 이룩하는 대신 독재체제를 강화할 경우 그 나라는 필연적으로 이웃나라들에게 공포와 경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고마워요 시진핑’ 기사를 쓴 브렛 스티븐스 기자는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것에 대한 미국의 감사와 축하를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뚜렷이 나타나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는 언젠가 당신의 통치가 미국 역사뿐만 아니라 다른 자유 국가들의 역사에도 예기치 않았던 거대한 축복 중 하나로 기록되게 될 것을 믿습니다”고 말하면서 시진핑의 독재정치 강화가 결국 자유 국가들에겐 축복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세상 사람 대부분이 중국은 눈부신 경제 발전 결과 고대 중국이 차지했던 세계 최고 강대국의 지위를 곧 다시 차지하게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런 기대는 현실화되지 못했다. 스티븐스 기자는 시진핑이 마오쩌둥의 문화혁명 당시 독재 정권 때문에 고생했던 처절한 경험과 더불어 1980년대 젊은 시절 미국 아이오와주의 한 미국인 가정에서 지냈던 경험 때문에 미국에 대해 어느 정도 호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됐지만 결국 그러한 희망은 실망으로 끝난 정도가 아니라 산산이 부서졌다고 말한다.
결국 시진핑의 독재화는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 혹은 톰 코튼(반중국 매파 상원의원)과 낸시 펠로시 등 공화당·민주당을 막론하고 모든 미국 정치인이 한결같이 시진핑을 제압해야 한다는 똑같은 마음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시진핑의 행동은 바이든으로 하여금 대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더 굳히게 만들었고, 일본으로 하여금 막강한 군사력을 갖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게다가 중국의 경제는 독재정치 체제하에서는 더 이상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한계에 봉착했다. 이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정치적 민주화와 더불어 진정한 자유주의 시장경제로 중국을 개혁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진정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할 경우 시진핑의 공산당 독재 정권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중국이 진정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로 개혁할 경우 이미 터무니 없이 비대해진 중국이라는 국가가 통일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냐의 문제가 대두된다.
민주화된 중국에서 위구르와 티베트는 물론 홍콩·만주·몽골이 중국의 일부로 남아 있으려 할까. 이들이 독립을 추구할 경우 민주화를 이룩한 중국의 중앙정부가 총칼을 들고 달려가서 분리 운동을 제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이 당면한 최대의 딜레마이며 불행하게도 시진핑에겐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게 중국의 아픔이다.
시진핑은 2012년 정권을 장악했을 당시부터 서서히 민주주의·자유주의적 개혁을 시도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스티븐스 기자의 말대로 중국이 서방 자유 진영, 특히 미국을 앞선다는 것은 물 건너간 일이다. 그래서 패권의 지위를 중국에게 빼앗길까 노심초사하던 미국 사람들에겐 시진핑이 고마운 것이다. Thank you Xi Jin P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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