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처(周處)는 삼국시대 오(吳)나라와 서진(西晉)의 인물이다. 흉포함·뻔뻔함으로 만인의 지탄을 받았으나 잘못을 깨우쳐 역사에 기록된 사람이다. 사자성어 개과천선(改過遷善·잘못과 허물을 고쳐 새 사람이 되다)과 조문석개(朝聞夕改·아침에 잘못하면 저녁에 고친다)도 그의 일화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자신(自新)편 등에 의하면 주처는 수틀리면 주먹을 휘두르는 개망나니였다. 그런 주제에 스스로를 정의의 사도라 여기며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사는 사이코패스였다. 세간은 주처를 호랑이·교룡(蛟龍)과 함께 삼횡(三橫)·삼해(三害)라 일컬었다. 주처는 삼해 중 으뜸이었다.
주처는 왜 자신만 보면 사람들이 달아나는지 궁금해졌다. 고을 노인과 마주친 주처는 물었다. “무슨 일로 울상이오?” 노인은 답했다. “세 가지 해로운 것 때문에 그렇다네.” “그게 무엇이오?” “하나는 남산의 백호(白虎)고 하나는 장교 다리 밑의 교룡이네. 또 다른 하나는….” 노인은 이 막돼먹은 놈이 또 해코지할까 봐 “세 번째는 네 놈이다”고 차마 말을 못 했다.
주처는 “나는 정의의 화신”이라 저 홀로 믿어 의심치 않던 위인이었다. 그는 “이 몸이 해결해주마”며 냅다 산속으로 달렸다. 사람들은 “저 망나니가 이제야 임자 만나는구나”며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웬걸, 주처는 한 끼 호랑이 식사가 되기는커녕 맨손으로 범을 때려잡아 하산했다. 아연실색한 사람들은 주저앉았다.
민심이 여전히 무거운 것을 본 주처는 강물로 뛰어들었다. 백성들은 “부디 제발”이라며 기도했다. 주처가 사흘이나 떠오르지 않자 고을은 잔치를 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주처는 뭇사람의 기대를 저버리고 교룡을 둘러멘 채 무사 귀환했다. 사람들은 대성통곡했다.
주처는 그제야 삼해 중 자신이 일류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고을을 떠나 당대의 선비를 찾아갔다. 선비는 “아침에 깨우치면 저녁에 눈 감아도 좋다는 말이 있네. 이제라도 새 사람이 되게나”고 말했다. 10년이나 학문·덕행을 익힌 주처는 성인군자로 거듭났다. 후세인들은 주처무해(周處無害·주처는 더 이상 해롭지 않다)라며 크게 칭송했다.
여덟 개 사건에서 열두 개 혐의로 다섯 개 재판을 받는 야당 대표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몸조심하라’고 경고했다. 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연기로 대통령 탄핵심판 기각·각하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개망나니 주처는 개과천선 끝에 재평가받을 수 있었다. ‘카톡 검열’ 논란까지 일으켰던 야당 대표를 후세가 어찌 기록할지 궁금하다.
오주한 정치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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