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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작원 김동식 회고록-죽기 위해 살아야 하는 운명
[평양에서 왔습니다] <39> 사로청 위원장들 기강 엉망… 회의 불참, 지각 예사
김동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4-17 06:25:30
▲ 김동식 前남파공작원‧대북전략컨설팅 대표
 
독자성 없는 꼭두각시 청년조직
 
북한의 청년조직은 어디까지나 노동당의 지도에 따라 당의 정책을 집행하는 노동당의 전위 조직이자 정치 조직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독자적으로 계획하고 전개하는 것이 전혀 없다. 아니,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각 기관·기업소의 청년동맹 조직은 중앙이나 시·도 단위 청년동맹 조직을 통해 받은 노동당의 지시대로 그 방침을 내려보내면 되는데, 주로 정치적인 행사나 모임 또는 경제적인 과제를 캠페인 식으로 해결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위에서 내려보내는 방침으로는 ‘김정일의 청년 시절을 따라 배우는 운동을 힘있게 전개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것도 있고, 경제적인 과제의 경우엔 ‘고철·파동(구리) 수집 또는 농촌에 보낼 영농 자재 모으기’ 등 상급 단위 조직에서 주는 과제도 있었다. 이런 과제는 정해 준 기간 내에 캠페인 식으로 집행하면 된다. 다시 말해, 정기적으로 하게 되어 있는 생활총화나 회의 등을 제때에 하면 되고, 문제가 제기되는 시기마다 그것을 집행하기 위한 대책만 세우고 나면 그 외에는 크게 할 일이 없었다.
 
간부 현실 체험 훈련을 위해 건설사업소 청년동맹(사로청)에 파견된 나는 사로청(조선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 사업의 이런 본질적인 내용과 함께 건설사업소 청년동맹 업무의 문제점까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 사로청위원장이 카드놀이나 장기와 같은 오락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각종 문서가 전혀 정리되어 있지 않았음은 물론, 직장이나 작업반 단위의 조직들은 이미 유명무실한 조직이 되어 있었다. 사실 북한의 건설사업소는 일반적으로 그 지역에서 가장 말썽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어서 이런 문제들은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여건을 파악한 후 앞으로 내가 현실 체험 기간에 중점적으로 해야 할 2가지 목표를 설정했다. 그 하나는 회의록을 비롯한 일체의 문건들을 정리하는 것이었고, 다음으로는 1·2개의 조직을 추려서 시범 단위인 ‘모범 초급단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은 다른 문제점들은 제기될 때마다 상황에 따라 대처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사람과의 사업, 건설사업소의 군기반장
 
청년조직 업무 전반에 대해 파악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부조직인 직장·작업반 사로청위원장들이 회의 시간을 제대로 지키도록 기강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처음에 회의를 소집했을 때 시간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은 몇 명밖에 없었고 20명이 넘는 나머지 인원들은 시간도 안 지키고 아예 빠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일단 회의나 모임을 소집했을 때 1명이라도 정해진 시간에 늦거나 빠지면 다음 날로 회의를 연기하도록 했다. 그리고 회의를 연기하게 만든 장본인에게는 반성문을 쓰게 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비판을 시키겠다고 선포하고 그것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직장·작업반 사로청위원장들 대부분이 제대군인인 데다 이미 결혼을 한 사람들이었고 나 역시 제대군인 경력자로 위장하고 나갔었기 때문에 좀 봐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처음에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나는 두 번째까지는 연배로서의 대접도 해 주면서 결코 강요나 무리한 요구가 아니니 자발적으로 알아서 지켜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실행에 옮기겠다고 경고한 후 실제로 그렇게 강행했다. 그랬더니 안 되겠다 싶었던지 회의나 모임 시간을 잘 지켰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약 2개월이 걸렸다.
 
이 과정을 통해 그다지 복잡하거나 힘든 문제가 아님에도 이미 굳어진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본인의 노력이 물론 중요하지만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의 역할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인식도 하게 되었다.
 
또한 이미 결심한 대로 업무 관련 서류를 갖추어 놓는 일도 동시에 해 나갔다. 서류는 회의를 진행하거나 어떤 문제를 집행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그것을 기록해 놓는 것이었는데, 후일에 사로청 사업의 장단점을 평가하는 물적 증거가 될 뿐 아니라 앞으로 언제인가는 반드시 있게 될 검열(감사)에 임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당의 방침을 집행하기 위해 세웠던 여러 가지 집행계획서나 각종 회의 보고서와 결정서·토론 내용들이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것을 잘 정리해 하나로 엮어 놓는 한편 없는 문건은 새로 만들어 보충해 놓았다.
 
 
▲ 2016년 8월29일 평양에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9차대회 강연이 있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1일 보도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군중 앞에서의 강연·시범 단위 만들기
 
다음으로 간부 현실 체험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인 군중 상대로 담력 키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곳에 있는 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과 접촉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심리도 파악하고 대인관계 요령도 습득하는 한편, 적게는 수십 명부터 많게는 1000여 명의 인원을 상대로 강연도 해 보는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사람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앞에 나가 말을 하려고 해도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떨려 생각했던 말을 다 못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얼마 후부터는 수천 명의 군중 앞에서도 자신감을 갖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시범 단위를 만드는 문제에 대해서는 수도관 및 난방 배관 공사만을 전문으로 하는 난방작업반과 각종 건설기계 수리와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공무직장의 사로청 조직 등 2개 단위를 ‘모범 초급단체’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그 일을 추진했다. 어떤 문제든 키포인트(중점)를 먼저 찾아내고 거기에 역량을 집중하면 다른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어떤 조직이든 그 조직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책임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이미 시범 단위로 만들겠다고 설정한 단위의 책임자들을 만나 내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파악했다. 동시에 그들 각자가 맡은 바 임무와 사명에 충실하도록 설득하는 일도 병행했다.
 
사로청 간부 현실 체험을 하는 과정에선 여러 가지 일이 많았는데,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그들과 대인관계를 형성하며 이를 심화시키는 중요한 방법을 체득하는 등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각종 회의와 모임을 준비하는 과정에 보고서와 결정서·토론문 등 여러 종류의 글을 많이 써 보면서 글쓰기 능력도 키울 수 있었다. 
 
또한 강연과 대중 선동 연설을 하고 크고 작은 규모의 회의와 모임을 직접 지도해 보는 과정을 통해 웅변술을 제고할 수 있었고 조직 운영 방법에도 숙달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나의 노력으로 당시 평성 도시건설 사업소 사로청 조직은 활기 있게 움직이는, 살아 있는 조직이 될 수 있었다.
 
엄청난 규율 위반
 
이 기간에는 간부 현실 체험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엄청난 ‘규율 위반’을 감행한 것 등이 있다.
 
평성에서 간부 현실 체험 중이던 1987년 겨울, 나는 고향에 편지를 보내 어머니와 함께 두 동생에게 내가 숙식하고 있던 도당 초대소에 면회를 다녀가도록 했다. 그래서 어머니와 두 동생은 내 편지를 받고 평성 초대소로 찾아와 2박3일 동안 나와 같이 지내며 휴식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편지도 못 하게 되어 있고 무단 행동을 하다가 걸리면 비판은 물론 제대(해임)까지 감수해야 하는 여건에서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는데, 나는 겁도 없이 그런 위험천만한 일을 저질렀다. 물론 사전에 가족들이 다녀갈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주도면밀하게 했기 때문에 걸릴 염려는 없었다. 공작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가족에 대한 생각이나 그리움 같은 인간적인 욕망은 사치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는 2박3일간 어머니·동생들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했더라도 실수를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제대로까지 이어질 정도의 심각한 규율 위반을 한 셈인데, 그 당시 내가 무슨 배짱으로 그런 모험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시간이 많이 흘러서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다
 
2021년 11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 후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 중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마친 아들과 내가 직접 나눈 대화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는 형식으로 본 연재의 각 회차 마무리를 대신하려 한다.
 
아들 : 북한에서 탈북한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탈북인 중에서도 해외에서 근무하던 외교관들은 상대적으로 서양 문물이나 특히 한국의 현실적인 모습이나 문화 등을 더 직접적으로 자주 접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대남 공작을 위해 한국에 와서 직접 이곳의 실상을 보고 느꼈다가 북한으로 복귀한 아버지처럼 말이죠. 여기서 태어나 자란 나조차도 해외 다른 나라들을 접하게 되면 자연스레 비교를 하게 되곤 하는데, 해외 생활을 경험하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생길 것 같아요. 아버지는 그런 적 없었나요?
 
아버지 : 결론부터 얘기하면, 나도 북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 사실 내가 대남 공작을 위해 한국에 침투해서 생활하면서 북한에 있을 때는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고,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면서 느낀 것도 많았어.
 
그런데 북한으로 돌아간 다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건 한국의 발전된 모습이나 맛있는 음식, 풍요로운 생활이 아니라 통제로 인한 북한 현실의 답답함이었어. 북한으로 복귀하자마자 시도 때도 없이 회의를 하자고 하고, 김 부자 교시 학습하라고 하고, 생활총화 하자고 하고, 아무튼 사람을 한시도 가만히 놔두지 않아.
 
물론 남한에 침투하기 전에는 다 했던 것들인데, 매일 회의다 뭐다 해서 수시로 집합시키고 다 알고 있는 내용을 또 학습하라고 과제를 주고,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생활총화에서 자아비판을 하라고 하고…. 그런 것들이 그렇게 싫고 거부감이 생기더라고. 나중에는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앞으로 이렇게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니 ‘차라리 다시 남한에 침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어. 남한에 침투해서 활동할 때는 회의나 학습·생활총화 같은 정치적인 행사는 여건이 안 되니까 안 하고 살았거든.
 
통제가 오죽 답답했으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대남 침투까지 다시 생각할 정도였겠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바로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던 것 같아.
 
그만큼 북한은 주민들에게 티끌만큼도 자유를 주지 않아. 주민을 꼼짝 못 하게 통제하는 방식으로 유지되는 체제이기 때문에 해외에서 근무했거나 남한에 침투했던 사람들은 그러한 통제를 가장 싫어하고, 그 때문에 답답해서 탈출하고 싶은 생각이 생기는 거야.
 
그런 데다 나는 남한에 침투했다 복귀한 다음 노동당 간부 현실 체험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김씨 일가의 사치와 위선·간부들의 부정부패·최악의 경제난 등을 직접 체험하면서 내 직업에 대한 회의감과 북한 체제에 대한 환멸감을 강하게 느끼게 됐어.
 
그래서 내가 능력만 된다면 김씨 독재체제를 붕괴시키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나 혼자서는 북한 김씨 독재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러면서 내가 찾은 결론은 해외로 나가는 거였어. 남한으로 도망치면 부모 형제가 숙청되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해외에 나가 살자고 결심하고 해외 공작원으로 파트를 바꾸려고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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