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한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이 타도된 것을 주역에서 ‘혁명’(革命)으로 불렀다. 3000년 전부터 ‘命(천명)을 革하다(바꾸다)’, 즉 왕조 교체를 내포한 혁명 개념이 자리잡은 배경이다.
짐승을 해체한 모습의 상형문자로 출발한 ‘가죽 혁’이 어쩌다 이런 동사로 쓰이게 됐을까. 털북숭이 동물의 표피가 칼집·신발·끈 등으로 가공되는 과정을 상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아득한 옛날 사람들에겐 이 쇼킹한 변모야말로 ‘바꾸다’의 생생한 실감이었던 것이다.
‘혁명’에 대응하는 단어 레볼루션(revolution)이 처음부터 이런 뜻은 아니었다. 별이 궤도를 한 바퀴 돌아 최초 출발점으로 귀환하는 것, 즉 천체의 순환·회귀가 레볼루션이었다. 천문학 용어에 가까웠던 셈이다.
레볼루션을 정치용어로 쓰게 된 이후에도 동사형(revolve)에서 보듯 이 단어는 여전히 ‘순환’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이와 동일한 라틴어 어원을 가진 여러 서구어 단어들 모두 마찬가지다. 철자도 발음도 비슷비슷하며 예외 없이 근대 이래 ‘정치적 격변’의 동의어, ‘산업혁명’에서처럼 획기적·근본적 변화의 비유로 더 자주 쓴다. 이런 의미의 전복·확장 사례는 흔하다.
고대 서구 지식인들은 역사적 주기를 한 단계 이동시킨 대사건이 발생할 때 천문학 용어이기도 한 레볼루션의 어원을 썼고 이후 이것이 계승됐다. 역사를 순환적인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정치적 특정 사건들을 지칭하면서 레볼루션을 처음 끌어다 쓴 것은 17세기 잉글랜드의 찰스 2세였다. 찰스1세의 사형, 공화정, 왕정복고 등을 아울러 “여러 차례의 레볼루션”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들의 결론이 영국 입헌주의의 성립이었는데, 피흘리지 않고 이뤄졌다 해서 훗날 ‘글로리어스 레볼루션’(1688)이라 불렸으며 이것이 한자어 ‘명예혁명’으로 옮겨졌다.
왕정복고의 주인공 찰스 2세가 ‘레볼루션’을 최초 언급할 때는 이 단어의 의미가 가치중립적이었지만 이후 긍정적 해석이 출현한다. 정치적 격변을 통해 노르만 정복 이전의 통치 방식으로 ‘회복 중’이라는 관점이었다.
당시 군주를 자유의 억압자, 이른바 노르만 멍에의 연장선으로 보며 제임스 2세를 폐위하고 윌리엄과 메리를 의회의 제약을 받는 국왕으로 세운 게 고대 자연권의 복원이라고 풀이한 것이다. 정치적 격변이 결국 더 나은 방향으로의 진전이라는 생각이 18세기 미국 독립과 프랑스혁명을 겪으면서 정착됐다. 19세기 들어 혁명=진보의 뉘앙스가 확고해진 것은 사회주의 사상가들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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