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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왔습니다] <50> 잠꼬대하며 기밀 ‘줄줄’… 공작조장 또 교체
김동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5-12 06:25:30
▲ 김동식 前남파공작원‧대북전략컨설팅 대표
 
조장이 뭐 대단한 벼슬이라고…
 
적구화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1988년 여름, 나와 조장 김명걸은 평안남도 평원군에 있는 석암저수지에서 열흘 동안 연례행사의 하나인 수영·잠수 훈련을 했다. 이때 김명걸의 수영 실력과 잠수 실력을 보니 먼저 만났던 박철만보다는 좀 나았던 것 같다. 
 
그러나 훈련 기간에는 보통 야외에 텐트를 쳐놓고 스스로 밥을 지어 먹는데, 김명걸이 조장이라는 위치를 대단하게 생각했는지 열흘 동안 한 번도 식사 당번을 하지 않아 동행했던 운전기사나 지도원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갓 결혼한 조장은 백두산 답사를 신혼여행으로
 
수영·잠수 훈련이 끝난 다음에는 백두산 답사를 다녀오게 되었다. 담당 과에서는 김명걸이 결혼한 지 얼마 안 되고, 또 그의 고향이 답사 코스의 중간 지점인 양강도 보천보였기 때문에 신혼여행을 겸해서 아내를 데리고 가게 했다. 나는 총각이었으므로 그와 떨어져 다른 지도원과 다녀왔다. 
 
김명걸은 이미 1988년 초 평양에 사는 친척의 중매로 김일성이 거처하고 있던 금수산의사당 경리부 산하 ‘경흥관’의 결혼식 매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아가씨와 결혼식을 올렸었다. 원래 사귀던 아가씨보다 키가 약간 작은 것을 제외하면 생김새도 미인이었고 성격도 좋았던 것 같다. 김명걸은 그 후 아내 덕을 단단히 보았다.
 
백두산 답사를 다녀온 지 얼마 안 되는 9월 중순 김명걸과 함께 또다시 약 10일에 걸쳐 종합 훈련에 참가했다.
 
또다시 받게 된 비합법 훈련… 지도원에게 이의 제기
 
당시 담당 지도원이 초대소에 들어와 종합 훈련을 할 예정이라고 전하며 기본은 비합법 훈련을 위주로 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불만이 있던 나는 지도원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비합법 훈련은 과거에도 여러 번 해서 이미 숙련되었으니 자동차 운전 연습과 같은 숙련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훈련 종목 가운데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훈련을 하자고 했다. 뜻밖의 문제 제기에 당황한 지도원은 당조직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것이지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냐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내 주장을 굽히지 않자 지도원은 말문이 막혀 “당의 방침이니 무조건 집행해야 한다”며 당의 방침까지 들먹였다. 그래서 “그것이 당의 방침이었다면 왜 처음부터 당의 방침에 의해서 이번 훈련을 하게 되었다고 알려 주지 않았습니까? 그랬으면 나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았을 텐데요”라며 다시 항의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공작부서에서 결정했기 때문에 훈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열흘 동안 늦가을의 차가운 비를 맞으며 평안남도 평원과 숙천·문덕 일대에서 행군과 숙영·무인 포스트 매몰 및 발굴·접선 등의 비합법 훈련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저녁에는 100리 강행군을 해서 초대소 근처까지 뛰어 들어와 산속에 비트를 파고 다음 날 아침 지도원의 비트 수색을 끝으로 훈련을 마무리하게 되었는데 이것 역시 계획대로 마쳤다.
 
“6·25 때처럼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지도원은 내가 이의를 제기했던 것 때문에 좋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었던지 100리를 뛰어와서 초대소 요리사가 끓여다 준 따끈한 꿀물을 마시려는데 감정을 자극하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지도원은 빈정대는 투로 이렇게 얘기했다.
 
“이런 정도의 훈련을 하면서 꿀물까지 마시면 되겠소? 우리는 6·25 전쟁 때 그런 것은 생각도 못 했는데…, 이래서야 어떻게 혁명을 하겠소?”
 
나는 그 말에 또다시 참지 못하고 이렇게 대답했다.
 
“6·25 전쟁 때 지도원 동지가 그렇게 했다고 우리가 꼭 그때처럼 해야 한다는 법이 있습니까? 우리가 고생하는 것도 다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것인데, 일부러 좋은 조건도 마다하고 고생을 사서 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꿀물 한 모금 마시는 게 무슨 대단한 사치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시는 건 지나친 것 아닙니까? 우리도 앞으로 고생을 해야 할 시기가 오면 감수할 각오가 다 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자 지도원은 얼굴이 상기되어 기어들어 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언제 선생하고 논쟁하자고 했소?”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4월 4일 특수작전부대 훈련기지를 방문해 종합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5일 보도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도원 골탕먹이려 찔레꽃 넝쿨 속에 판 비트
 
그날 밤 비합법 숙영을 하기 위해 비트를 팠는데, 나는 아예 다음 날 아침 지도원이 비트를 수색할 때 찾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가시가 많이 돋아 있는 찔레꽃 넝쿨 속을 헤집고 들어가 비트를 팠다.
 
사실 훈련을 거의 마무리할 때쯤 되면 다른 지도원들 경우에는 공작원들에게 일단 비트를 파게 한 다음 검열만 하고 거기서 잠을 재우지 않고 초대소에 들어와 자게 한다. 그런데 최 지도원은 비트를 파고 난 후에도 나오라거나 초대소로 철수하자는 말이 전혀 없었다. 당시 나와 관계가 그리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그가 워낙 원칙적인 선에서 조금도 타협할 줄 모르는 고지식한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지도원은 김명걸의 비트를 찾고 나서 내가 파고 들어가 있는 비트를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큰소리로 나를 부르며 나오라고 했다. 그렇지만 내가 고생 좀 해 보라는 마음으로 나가지 않자 그는 아예 포기하고 나에게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초대소로 돌아가 버렸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내가 스스로 비트에서 나와 초대소로 돌아오자 지도원은 내게 비트를 파지 않고 어디 다른 곳에 가서 잠을 자다가 오지 않았느냐고 의심부터 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실망스러워 자기 부하를 그렇게 믿지 못하겠느냐며 직접 내가 파고 들어가 잠을 잔 비트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확인을 시켜 주었다. 그제야 그는 비로소 어쩔 수 없다는 듯 아무 말도 못 했다.
 
격술은 각종 무술이 결합된 종합 무술
 
그해 10월에는 조장 김명걸과 함께 또다시 719훈련장에 들어가 약 20일 동안 격술 집중훈련을 받았다. 다른 공작원이라면 한 번만 받으면 될 격술 집중훈련을 후임 조장으로 만난 김명걸이 나보다 후배였던 관계로 두 번씩이나 반복해서 받아야 하는 ‘덕’을 입었다. 격술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태권도와 유도 및 호신술과 기합술 등 각종 무술이 결합된 종합 무술이다.
 
격술 훈련을 받는 과정에 한 번은 나와 김명걸이 자유대련을 하다가 진짜 싸움이 날뻔한 적이 있었다.
 
진짜 싸움으로 번질 뻔한 자유대련 
 
자유대련 전에 김명걸은 본인이 공작원양성반을 졸업한 공작원 가운데 격술을 제일 잘한다고 말끝마다 자랑했고, 내게도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덤벼들었다. 나는 김명걸이 나이도 많고 또 조장이어서 처음에는 공격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방어 위주로 했다. 
 
그랬더니 그는 정말로 내 수준이 낮아 공격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겁 없이 덤벼들었다. 나는 그냥 한번 위협을 준다는 차원에서 결정적인 순간 발차기로 맞받았다. 그랬더니 그는 미처 피하거나 방어를 못한 채 그대로 내게 얻어맞았다. 그 순간 그의 눈빛이 이상하게 변했다. 그대로 계속 하다가는 감정이 개입되어 훈련 과정에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할 것 같아 그만두자고 말하며 일단 등을 돌려 천천히 걸어갔다.
 
그 순간 그가 내 뒤로 소리 없이 다가와 권투장갑을 낀 주먹으로 내 뒤통수를 힘껏 내리쳤다. 그에게 한 방 얻어맞고 나도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져 곧바로 그에게 돌아서며 맞받아치려고 공격 자세를 취했지만 이내 이성을 찾았다. 똑같이 유치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동작을 멈춘 것이다.
 
또다시 혼자 받은 격술 판정
 
그 후 격술 훈련 종합 판정을 하루 앞두고 낙법 연습하다가 목이 꺾어질 뻔한 사고가 발생해 결국 김명걸은 최종 테스트를 받지 못했다.
 
당시 나는 격술 교관의 지시에 따라 김명걸이 보는 앞에서 내 키 높이의 뜀틀을 향해 뛰어가다가 점프를 한 다음 뜀틀에 손을 대지 않은 채로 뜀틀을 넘는 낙법을 성공시킨 적이 있다. 그런데 그는 자존심이 상했던지 낙법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충분한 연습조차 없이 뜀틀을 뛰어넘으려고 하다가 공중에서 곤두박질해 목을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의 부상으로 인해 마지막 격술훈련 판정은 또다시 나 혼자서 받아야 했다.
 
이 외에도 초대소에서 적구화 교육 기간에 발표된 김일성·김정일의 노작과 당 정책, 주체 철학에 대한 공부는 물론이고 무전 송·수신 훈련과 암호 해독 훈련 등 통신 연락과 관련한 훈련도 지속적으로 실시했고 실탄 사격 훈련도 했다.
 
잠꼬대하는 공작조장
 
김명걸과 함께 하는 적구화 교육 과정 중 전에는 서로에 대해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된 적도 있다.
 
김명걸은 낮에 조금만 힘든 일을 하고 잠자리에 들면 어김없이 잠꼬대를 하곤 했는데, 일반적인 그런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당일 낮에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옆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물론 좀 변덕스럽고 결단력이 부족하며 겁이 많은 것 등은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대낮에 있었던 일들을 다른 사람과 대화하듯 털어놓는 그의 특별한 잠꼬대는 적지에서 공작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공작원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잠꼬대 사실을 알려 주며 주의를 당부했지만 믿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화를 냈다.
 
결국 그 후 나는 이러한 사실을 담당 지도원에게 알릴 수밖에 없었다.
 
낮에 있었던 일 늘어놓는 잠꼬대… 공작원의 최대 약점
 
“김명걸이 잠꼬대하면서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버릇을 고치지 않는다면 절대로 그와 함께 적구에 침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죽기 위해 공작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모든 것은 부서에서 판단할 일이지만 저로서는 그의 잠꼬대가 고쳐지지 않는 한 절대로 그와 함께 적구에 나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내 의견을 경청한 담당 부부장과 지도원은 김명걸에게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면 앞으로 공작원을 하기가 힘드니 무조건 고치라고 했지만, 그는 자신이 잠꼬대를 하지 않는다고 억지를 부렸다. 할 수 없이 담당 지도원이 초대소에서 직접 잠을 같이 자면서 확인하고 이야기해서야 겨우 믿는 눈치였다.
 
비단 잠꼬대만이 이유는 아니었지만 나는 결국 그 이듬해 초에 김명걸과 헤어져 다른 사람과 공작조를 이루게 되었다.
 
 
▲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다
 
2021년 11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 후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 중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마친 아들과 내가 직접 나눈 대화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는 형식으로 본 연재의 각 회차 마무리를 대신하려 한다.
 
아들 : 아버지는 자식인 저와 동생에게 “아버지를 뛰어넘어야 다음 세대가 더 나아진다”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제가 아버지를 뛰어넘는다는 게 과연 가능할지 또 어떻게 해야 가능할지 등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삶은 ‘국가’를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능하거든요.
 
아버지 : 사실 내 삶을 되돌아보면 인생의 대부분을 개인이 아닌 국가를 위해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북한에서의 15년은 김씨 독재 체제를 위해, 남한에서의 20년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해 바쳤으니까….
 
내가 자식인 너희들에게 나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한 것은 단순히 나처럼 국가를 위해 충성하라는 건 아니었어.
 
후대 세대가 선대 세대를 뛰어넘어야 가정이든 국가든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얘기한 거였어. 실제로도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렇게 해서 발전해 왔으니까….
 
그런데 내가 너희들에게 특별히 강조하려 했던 것은, 내가 제대로 된 대남 공작원이 되기까지 준비하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기 때문에 너희들도 어떤 일을 하든 10년은 죽기 살기로 노력해야 그 분야에서 프로가 된다는 의미에서 얘기한 거야.
 
한국은 북한에 비해 모든 면에서 조건과 환경이 좋으니까 그렇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너희들이 충분히 나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믿고 그렇게 얘기한 거야. 지금 너희들을 보면 충분히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면 얼마든지 아버지인 나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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