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안보 정세가 매우 어수선하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불길이 꺼지지 않은 상태에서 예멘의 후티 반군과 이스라엘이 부딪치고 있고, 카슈미르에서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충돌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수단에서는 반군이 최대 항구 포트수단에 드론 공습을 가하여 내전 발발이 우려되고 있다.
페르시아만에도 새롭게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미국은 후티 반군을 때리면서 이란을 겁주는 ‘살계경후(殺鷄儆猴)’를 계속하면서 대규모 군사력을 디에고 가르시아섬을 비롯한 미군 기지에 집결시키고 있다. 이스라엘 공군과의 연합훈련도 반복하고 있다. 이란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면 이스라엘과 합동으로 때리겠다는 기세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대만 침공이 현실화하여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한반도도 위험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중에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오히려 주한미군 군사력과 역할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한국은 ‘북핵 억제’와 ‘북핵과의 공존’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면서 나라를 지켜내야 한다.
어떤 정부하에서든 한국의 대북 정책은 ‘힘을 통한 평화’와 ‘화해 협력을 통한 항구적 평화 정착’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지만, 어쨌든 그것이 숙명이고 원칙이자 정론이다.
하지만, 북핵 정책에서 이런 정론이 제대로 실행된 적이 없다. 핵 문제에 있어 ‘힘을 통한 평화’란 나라를 지키는 데 부족함이 없는 ‘억제력’을 말한다. 이를 위해 한국은 ‘확장억제’라고 불리는 미국의 핵 보호 장치에 의존해 왔지만, 멈출 줄 모르는 북한의 핵 무력 고도화와 미국 세계 전략의 가변성으로 현재 확장억제의 신뢰성은 간단없이 흔들리고 있다.
핵 문제에 있어 ‘항구적인 평화’란 ‘외교와 설득을 통한 북한 비핵화’이지만, 북한이 정반대 행보를 고수함에 따라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었다. 북한은 핵무기와 각종 투발 수단 및 플랫폼의 양적·질적 고도화와 더불어 ‘핵무력정책법’ 제정을 통해 대남 선제 핵 사용을 정당화하고 전술핵을 실전 배치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2024년 북·러동맹 복원으로 러시아의 핵 기술 및 첨단 군사기술의 북한 유입이 우려되는 가운데 최근에는 핵추진 잠수함, 대형 구축함 등의 건조 장면을 공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이 택해야 할 북핵 대응 기조는 애초부터 정해져 있었다.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열심히 잡는 것이다. ‘힘을 통한 핵 평화’를 위해서는 당장 확장억제를 강화해야 한다. 핵·재래무기 통합 연합훈련 내실화, 핵 보호 조항을 추가하는 한미동맹 조약 개정 등 시도해야 할 방안이 많다.
확장억제 체제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핵사태가 도래하면 미 전술핵의 재반입이나 한·미 핵 공유 체제의 도입을 통해 남북 간 핵 균형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물론 그런 사태가 도래했을 때 전술핵 재반입 협의를 시작한다면 안보 공백이 불가피하므로 미래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한·미 협의는 지금부터 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성과의 유무를 넘어 북한과의 교류 협력과 핵 대화 노력을 지속해야 하며, 북한이 한국을 핵 대화 당사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미·북 핵 대화를 지원한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한·미 양국은 어떤 ‘당근과 채찍’으로도 단번에 북핵을 완전히 포기시키기 어렵다는 점, ‘항구적인 핵 평화’ 이전에 당분간의 ‘북핵과의 공존’이 불가피하다는 점 등을 인정하고, 가능할 때 가능한 만큼씩 성과를 낸다는 자세로 핵 위기 리스크를 관리·통제해 나가야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핵문제에 있어서 ‘강력한 억제’가 ‘북핵과의 공존’이나 ‘항구적 핵 평화’로 가는 길과 방향이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세계 핵군비 통제의 역사를 보더라도 한쪽이 일방적 우위를 선점한 상태에서는 합의가 성사되지 않으며 ‘통나무 타기(log-rolling)’ 상태, 즉 한쪽이 물에 떨어지면 상대도 함께 떨어질 수 있는 구도에서만 성사된다. 즉, 쌍방이 핵 경쟁으로 인한 공멸 우려와 부담을 공유할 때 비로소 진정한 핵 협상이 가능하다.
대기권 핵실험금지조약(1963·PTBT), 핵무기비확산조약(1970·NPT), 미·소 전략핵감축협정(1991·START) 등 무수한 핵 합의들이 그렇게 성사되었고, 1991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상호 핵개발을 포기한 것도 공멸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한국이 발가벗은 상태에서 북한에게 “당신들도 벗어라”며 애걸하는 방식으로는 ‘충분한 북핵 억제’가 불가능하며, 핵 위기 리스크 관리를 통한 ‘북핵과의 공존’이나 대화를 통한 ‘항구적인 핵 평화’도 어렵다.
요컨대, 한국은 확장억제 강화든 동맹의 핵 역량을 이용하는 핵 균형이든 필요할 때 필요한 핵 억제 조처를 강구해 나가야 하며, 동시에 당장의 ‘북핵과의 공존’이나 궁극적인 ‘핵 평화’를 위해 필요한 대화 노력을 시도해야 한다. 이것이 정론이다. 6월 대선을 통해 출범할 새 정부는 이 정론을 확신하고 실행해 나가는 정부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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