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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기의 시사&이슈]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신용 관리기관 절실
최재기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5-27 00:02:55
▲ 최재기 한반도연구소 연구위원
“이 후보 캠프 측 관계자는 기재부의 ‘예산실’을 개편해 대통령실 산하에 둘 계획이라며 필요한 곳에 재정이 투입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상 대통령실이 예산 편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 국회가 예산 심의와 삭감뿐 아니라 증액까지 가능하도록 개헌을 하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2025.4.21. TV조선).
 
봉건시대에 왕권 확대 위한 전쟁을 하느라 세금을 마음대로 매기던 것을 제한하기 위해 뭉친 집합체가 근대 의회의 기원이다. 그래서 입법부는 예산 증액을 할 수 없고 행정부의 예산 편성 삭감 기능만 갖는 근대 공화국의 헌법을 갖게 되었다. 일당이 지배하는 입법부가 예산의 편성과 승인을 마음대로 하도록 헌법을 바꾸면 더 이상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현대의 가장 비참한 가격 변동은 이윤과 상품 인플레이션 또는 디플레이션과 관련된 가격 변동이다. 그 변동은 금의 공급 변동에 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직접적으로는 세계의 전체 중앙은행이 자연 이자율과 비교하여 시장이자율에 대해 취하는 정책의 합성적인 결과에 의존하고 있었다. (…) 따라서 국제적 금본위제는 이 교란들을 처리하는 능력에 의해서 존속하거나 몰락하지 않으면 안 된다.” (J.M.케인스, ‘화폐론’ 제35장)
 
‘화폐적 조직의 한 균형 상태에서 다른 균형 상태로의 추이를 지배하는 동학적인 법칙’을 발견해 금본위제에 대해 비판한 케인스의 ‘화폐론’이 출간된 직후 1931년 영국은 국제 금본위제에서 탈퇴했다. 금본위제는 경직되어 수시로 발생하는 이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가격 변동에 대응한 정교한 신용 조절 정책이 어렵다. 그래서 대공황과 같은 불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 현대 시장경제는 금본위제가 아니라 신용 본위제가 되었다. 그런데 그 양이 제한돼 권력자라도 마음대로 신용을 확대하지 못하는 금본위제를 철폐하면 어떻게 화폐의 가치 안정을 보장할 수 있을까.
 
미국은 건국자의 공화주의 정신, 즉 “야심은 야심에 의해 견제되어야 한다”는 권력 분립에 따라 정치권력과 별개의 연방준비제도(연준)를 만들어 화폐 가치와 고용안정에 대처해 왔다. 미국 연준의 기원은 민간 은행 연합체다. 건국 당시부터 시민 스스로 다스리는 나라라는 공화주의 정신의 미국 시민은 국립 중앙은행을 두 차례나 폐기했다. 대신 1913년 법으로 연준을 사실상 중앙은행으로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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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은 화폐 가치를 안정시키는 기관으로 출범했지만 1958년 윌리엄 필립스가 단기적으로 물가상승률과 실업률 사이에는 반비례 관계가 있다는 경제 원리를 발견한 이후 미 재무부와의 계약에 따라 고용 안정도 주요 목표로 삼았다. 
 
경기 활황 시 실업이 줄면 물가는 올라가므로 화폐 가치 안정과 고용 안정을 동시에 이루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화폐 과학과 정치·경제적 변수를 잘 고려해 신용 정책을 펴야 한다.
 
“2007년에서 2009년까지의 금융위기 이후 연준(그리고 해외 중앙은행)이 전통적인 금리인하 방안을 소모한 뒤 꺼낸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 대규모 양적 완화(QE)를 통해 장기 이자율을 내렸고 둘째, 포워드 가이던스를 점차 명시적으로 제공해 시장의 기대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금융 상황에 영향을 미치고자 했다.” (벤 버냉키, ‘21세기 통화정책’ 제4부)
 
전체 통화량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신용 확대를 꾀하는 것이 양적 완화다. 정책 결정자의 말을 통해 금융 시장에 영향을 주는 것이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통화정책을 시장에 미리 알려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기법)다. 현대 시장경제의 신용 제도는 이처럼 예민하다.
 
예산실을 대통령실 산하에 두면 권력자의 필요에 따라 신용의 확대와 축소, 배분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 연준같은 독립적 신용관리 기관이 없으면 권력자의 신용 확대 요구를 제어하기 어렵다. 그 화폐는 ‘기축통화’가 될 수 없다. 자칫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폭망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권력에서 자유로운 화폐 가치 안정과 고용 안정을 책임지는 신용 관리기관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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