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의 법도는 무엇인가. 질서다. 우주 삼라만상이 억겁을 두고 궤도를 따라 운행하는 이치다. 한 치 오차도 없다. 그럼 인간 사회의 법도는 무엇일까. 이 또한 질서다. 전제가 있다. 법(法)이 요청된다.
그렇다고 법만으로는 질서 유지가 안 된다. 스스로 질서를 따르게 하는 덕성이 필요하다. 법과 도덕은 다 있어야 한다. 법이 없다면 힘센 자만 사는 약육강식 사회가 되고, 덕 없이 법치의 칼만 휘둘러선 원성만 더 커질 따름이다.
그럼 법 제정의 취지는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해야 한다. 모든 이에게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져야 능력에 따른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 그 한 예로 공평한 인사 기준을 꼽을 수 있다. 한비자는 “관직의 승진이 부당하면 관리들은 직무를 버려 두고 외부 세력과 내통해 재물 모으기에만 빠진다”고 우려했다.
17일은 제77주년 제헌절이다. 이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체계를 세운 날로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국민이 헌법의 의미를 되새기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일상에서 체감하게 하는 뜻깊은 날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감격은커녕 가슴 아프다. 지금 대한민국에 제헌 정부 수립의 정신이 존재하는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자주독립국가 완성, 선진복지국가 구현, 자유민주주의적 평화통일 달성에 기반한다.
제헌의 고귀한 뜻이 이러함에도 국회는 반(反)정치의 상징이 됐다. 이유는 무엇일까. 국회의원들이 부패와 내로남불의 상징으로 전락한 탓이다. 보수·진보를 떠나 정권을 잡았을 때와 야당일 때의 주장이 180도 다르다. 표변하는 것이다. 게다가 필부필녀는 생각하지도 못할 지능형 범죄를 저지르고 반성도 없다. 요즘 청문회 대상인 상당수 장관 후보자들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부동산 투기와 논문 표절, 비서관 갑질 의혹 등 ‘비리 백화점’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안타까운 건 여야 의원 간 저녁 시간 ‘선술집 대화’ 같은 낭만이 끊어졌다는 사실이다. 쟁투의 쇳소리만 난무한다. 정치는 ‘나와 너는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 수단은 말(言)이다.
말은 개인의 인격을 넘어 집단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다. 그러나 여든 야든 대화가 아닌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한다. 이쪽은 “까불어? 그럼 사정 권력으로 혼내겠다”고 하고, 저쪽은 “까불어? 그럼 무차별 폭로다. 아니면 말고” 등으로 맞불을 놓는 형국이다.
제헌 의원들이 본보기를 보였던 대화와 근검의 흔적도 사라졌다. 제헌 의원들은 영국 의원들의 세비가 중앙정부 사무관 수준임을 근거로 중앙청 사무관급 정도의 보수를 받았다. 주말에도 상임위원회를 열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서민들의 삶은 고달프기 이를 데 없는데 의원들은 세비 셀프 인상을 서슴지 않는다. 미국 의원들이 여야 가리지 않고 세비 삭감을 자청하는 법안을 내놓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당 대표까지 지낸 이는 지역구 왕복 비행기 탑승 기록을 셈해 보니 지구를 4 바퀴 반 돈 셈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국회의사당엔 일주일에 사흘 정도나 가서 지냈을까 의심스럽다. 나라 챙기는 ‘국회의원’이 사라지고 지역구 파견 ‘국회 출장소장’들의 집합소가 됐다. ‘재선을 의식하지 않는 정치인’ ‘주식시장 시세표 보지 않는 정치인’을 호소한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과는 천양지차이다.
추한 모습은 이뿐만이 아니다. 국회는 이제 토론·숙의의 장이 아니다. 의사당 안팎 계단과 공간은 의원들의 전용 시위 장소가 됐다. 본회의장이나 상임위에서 스마트폰으로 코인 거래를 하고, 국정감사 대상 기관에 지역구 유지 자녀 취업 청탁 문자를 보내는 의원도 있다. 낯 뜨겁다. 이들은 특권 내려놓기 등의 이슈는 짐짓 외면해 버리는 기득권 카르텔을 굳힌 지 오래고, 이런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국회는 반의회주의 집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제헌절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헌법 가치를 확인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헌법은 세상을 지탱하는 기둥이요, 고루 비추는 햇살처럼 희망의 상징으로 자리매김돼야 한다. 선량 국회의원들이 헌법의 존엄성을 되살리는 데 힘써야겠다. 그래야 국민도 준법 실천을 할 게 아닌가.
“법을 무서워하면 언제나 즐거울 것이요, 공적 업무를 속이면 날마다 근심이 되느니라(懼法朝朝樂 欺公日日憂).” 성현의 가르침이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