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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의 오늘의 문학] 야유와 조롱의 미학 … ‘소설가 소판돈의 낙서견문록’
방민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6-01-08 00:02:50
▲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시인
이런 책은 소설 쓰는 일이 '찐' 노동이 돼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쓸 수 없다. 반은 농담, 시인은 한량이고 소설가는 노동자다. 술자리에서 한국의 시인들은 제물 만난 물고기들처럼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는' 때가 많다. 우울한 시인도 그런 자리에선 유쾌해지곤 한다. 소설가는 대체로 그렇지 못하다. 술자리에선 잘 보이지 않는 노동의 무게 때문에 그런 데 나와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또 써야 할 부분을 궁리하거나 소재를 헌팅하며, 노동의 무게를 지그시 감내한다. 그들 중 어떤 '노동자'는 직업병으로 허리나 한쪽 어깨가 주저앉아 있는 경우도 많다.
 
‘소설가 소판돈의 낙서 견문록(스토리코스모스, 2025.8)’의 작가 김종광 씨가 그런 노동자라면 거의 틀림없다. '전업작가'의 노동에 짓눌린 나머지 유전도 아닌 듯한데 머리카락이 빠지고, 낯빛은 햇빛을 보지 못해 풀이 죽었다. 가슴 속에 산 같은 자존심을 품었어도 현실 문단 정글에서 살아남기 어려워 늘 예의를 차리기에 힘이 부친다. ‘문학의오늘’ 같은 문단의 가장자리 편집장 일을 하느라고 보낸 원고 청탁서 글귀를 보면 그가 스승으로 모시는 고향 사람 작가 이문구 선생의 과례도 저리 울고 갈 판이다.
 
농촌 소설을 주업처럼 내세우기도 했지만 그의 글쓰기 장르 폭은 넓다. 역사소설도 쓰고, 청소년 소설도 쓰고, 자신의 딴 이름을 '소판돈'으로 만들어 준 부친이나 모친 이야기도 쓴다. 그런가 하면 옛날 한글 소설들도 넓고 깊게 판 것이, 이 풍자소설 '소설가 소판돈의 낙서 견문록'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작중에서 소설가 소판돈은 지금 막 영해 다툼이 있어야 할 것도 같은 제주도 남쪽 류큐(오키나와) 동쪽 어딘가에 있는 율려국으로 취재 여행을 간다. 허균의 ‘홍길동전’의 율도국이요, 박지원 ‘허생전’의 무인도 같은 곳인데, 왜 하필 이름이 ‘율려국’인가? 율려는 쉽게 말해서 음양의 원리에 따른 음률일 것이니 아직은 웹소설 같은 초현대적 장르 문학은 상륙하지 않았다. 이 나라 국문학은 우리나라 시조 같은 ‘낙서’라 하는 것이니, 인구 오십만 그 나라에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 낙서라는 것을 짓고 또 즐긴다.
 
여기서 잠깐 옆길로 빠져보자. 이 소설에는 신재효라는 통칭 구한말의 고창 사람이 나오는데, 나는 이 김종광 씨만큼 신재효의 판소리 정리, 그중에서 ‘가루지기 타령’에 조예 깊은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더욱이 그는 고창도 정읍도 아닌 충청도 보령 사람인 것을 말이다.
 
이제 잠깐 정색을 하고 작가가 어째서 이런 율려국 낙서문학 이야기를 하는지 생각해 보도록 한다.
 
일생을 그 무거운 문학의 노동 장르 소설에 바쳐온 '소판돈' 씨는 부친이 소 판 돈으로 대학 공부를 마치고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이라는 엄청난 일에 뛰어든 지 어언 수십 년이다. 자기 능력이 있든 없든 일편단심 ‘찐’노동에 매달려온, 그의 눈에 한국문단이라는 놀이판은 율려국 ‘낙서판’보다 더하면 더 했지 하나도 덜 할 것 없는 부조리판이더란 것이다. 꼭 그 율려국도 이 나라 문단판처럼 최고 낙서가 몇이 상이란 상은 다 휩쓸고 ‘애국막장’과 ‘쭉쭉빵빵’이 나라를 뒤흔드는 훌륭한 낙서가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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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판돈 씨의 취재담과 그 이후 이야기를 읽어 넘기다 나는 그의 비애에 차마 가슴 아픈 눈물조차 떨굴 수 없었다. 그의 풍자가, 그 야유와 조롱 앞에 나 자신도 서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의 양심을 후벼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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