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자락, 우리는 간절히 봄을 기다린다. 언 땅 밑에서 씨앗들이 움틀 준비를 하듯 우리들의 마음도 새로운 계절을 향해 열려간다. 친구들과의 단톡방에는 우리보다 더 봄을 기다리는 부지런한 꽃들이 올라온다. 이 기다림의 시간, 동양사상의 생태적 지혜는 우리에게 봄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동양사상의 세계관은 자연의 운행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음양오행론에서 중앙에 자리한 토(土), 즉 땅은 모든 생명의 근본이다. 땅은 식물이 터전한 곳이며 식물은 지구상 모든 생명을 먹이고 입힌다.
유학이 농경을 세상에서 가장 근원적인 일로 본 것도, 유교문화권에서 농부를 우대한 것도 이런 통찰에서 비롯됐다. 땅과 식물,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직관한 것이다. 한국의 동학사상은 이를 더욱 아름답게 표현했다. 땅을 ‘어머니의 살’이라 부르며, 만물에는 한울님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사람이 밥을 먹는 것을 ‘이천식천’, 즉 ‘한울님이 한울님을 드신다’고 한 말은 깊은 울림을 준다. 밥을 통해 우리는 천지의 기운을 받아들인다.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생존 행위가 아니라 우주와 하나되는 신성한 순환이다. 봄이 오면 새싹이 돋고 다시 그 생명이 거두어져 땅으로 돌아가는 이 순환 속에서 모든 존재는 평등하다.
서구의 인간중심주의는 종차별을 넘어 인종차별과 성차별까지 수반했다. 동물을 산 채로 가죽 벗기고 숲을 무차별 남획하며 유색인을 노예화하고 마녀사냥으로 여성을 억압했던 역사는 인간이 자연과 타자 위에 군림하려 했던 오만의 결과였다. 하지만 동양은 순환론적 우주관을 가지고 있다. 태극과 음양은 우열없이 모든 생명체에 적용된다. 모든 생명은 원리와 현상 면에서 동일한 과정을 거친다.
북송 시대 유학자 장재의 ‘서명(西銘)’은 이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하늘을 아버지라 부르고, 땅을 어머니라 부르니, 나는 이 미미한 존재로서 그 가운데에 뒤섞여 존재한다. 천지에 가득찬 기운은 나의 몸이고, 천지를 주재하는 이치는 나의 본성이며, 사람들은 나의 형제요, 만물은 나와 함께하는 존재이다.’ 여기에는 인간과 만물의 위계가 없다. 동물과 식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하늘과 어머니 땅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다. 인간은 그저 천지간의 ‘미미한’ 존재일 뿐이다.
봄날 씨앗을 만드는 민들레, 도시를 메운 비둘기, 초원을 어슬렁거리는 사자, 그리고 우리 인간은 다를 것이 없다. 모두 생존과 경쟁의 삶의 현장에서 몸부림치는 개체들이다. 환경을 면밀히 파악하여 전략을 잘 세운 지혜로운 개체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개체는 사라진다. 이는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과도 통한다. 인간도 자연에서 났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돌아감 역시 다른 생명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이제 곧 봄이다. 얼었던 땅이 녹고, 씨앗이 깨어나고, 새싹이 돋을 것이다. 봄을 기다리는 이 시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인간의 특권이 아니라 만물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다. 어머니 땅의 살 위에서, 한울님을 모신 존재로서, 우리는 다시 봄을 맞이한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