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변. 강변북로를 따라 펼쳐진 아파트 단지 가운데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곳이 있다. 한강을 정면으로 내려다보는 대형 평형 위주 주거단지 LG한강자이다. 이곳에는 메리츠증권을 이끄는 장원재 대표이사가 거주한다.
최근 금융투자업계 화제는 장 대표의 연임이다. 메리츠증권은 3월26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장 대표를 사내이사로 재선임할 예정이며 임기는 2029년까지다. 리테일 사업 확대와 디지털 기반 신사업 추진을 이끈 성과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이번 연임은 장 대표가 공들여온 플랫폼 혁신과 자금 조달 전략이 본격적인 결실 단계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업계는 장 대표가 확보한 3년의 추가 임기 동안 메리츠증권의 체질 개선을 어떻게 완성할지 한국판 골드만삭스라는 목표에 얼마만큼 다가설지 주목하고 있다.
수학자 출신 메리츠증권 체질 바꿔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난 장원재 대표는 성북구 돈암동에 있던 서라벌고를 1986년 졸업하고 같은 해 서울대학교 수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동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도미하여 2001년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University of Minnesota)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2년 삼성증권에 입사해 파생상품과 금융공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ELS(주가연계증권) 상품 운용과 리스크 관리에서 뛰어난 성과를 냈다. ELS는 주가지수나 특정 종목의 가격이 미리 정해진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약속된 수익을 지급하는 파생상품으로 고도의 수학적 설계와 운용 능력이 필수적이다.
장 대표는 이러한 복잡한 상품을 취급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전사적인 위기 관리 컨트롤타워인 최고리스크책임자(CRO) 자리에 올랐다. CRO는 기업이 직면할 수 있는 시장 변화, 신용 위험 등 모든 잠재적 리스크를 파악하고 대응책을 세우는 직책이다. 그는 ‘숫자로 위험을 읽고 수익의 기회를 찾아내는 금융공학자’라는 평을 받았다.
2014년 메리츠금융그룹으로 자리를 옮겨 메리츠화재와 메리츠금융지주에서 리스크 관리 책임자를 맡으며 그룹의 안정적 성장 기반을 구축했다.
2023년 11월 메리츠증권 대표이사에 선임된 뒤에는 공격적인 사업 구조 개편을 추진했다. 과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의존했던 수익 구조를 기업금융, 트레이딩, 리테일로 다변화한 것이다.
경영 스타일은 ‘분석형 리더’에 가깝다. 감각보다 데이터와 확률을 중시하고 위험과 수익을 동시에 계산하는 방식이다. 금융공학자 출신 CEO라는 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수수료 없이 스마트하게
장 대표가 취임 이후 가장 큰 변화를 만든 분야는 리테일이다. 메리츠증권은 2024년 11월 말 비대면 투자계좌 ‘슈퍼365’에 대해 국내·미국 주식 거래 수수료와 환전 수수료를 모두 없애는 파격 정책을 내놓았다.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수수료 제로 발표 당시 약 9300억원 수준이던 예탁 자산은 2026년 3월 현재 22조원을 넘어섰다. 1년 4개월여 만에 약 24배 성장한 것이다. 장 대표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25년 기준 20억 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 전략이 미국 핀테크 증권사 ‘위불(Webull)’ 모델을 참고한 것으로 본다. 위불은 2018년 5월 미국 시장에서 모바일 앱을 출시한 혁신 증권사다. 주식 거래 수수료를 받지 않는 대신 고객이 계좌에 넣어둔 유휴 현금을 운용해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다시 고객에게 이자로 돌려주며 플랫폼 충성도를 높이는 전략으로 성장했다.
메리츠증권은 위불의 강점을 벤치마킹해 국내 실정에 맞게 ‘RP(환매조건부채권) 자동 투자 기능’을 결합했다. 고객이 거래하지 않고 계좌에 남겨둔 돈을 매일 밤 자동으로 RP에 투자해 복리 수익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고객 예수금을 자연스럽게 자산관리 영역으로 연결해 ‘돈이 머무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겠다는 복안이다.
AI 투자 플랫폼… 프라이빗 뱅킹 파트너
장 대표가 그리고 있는 다음 그림은 AI 기반 투자 플랫폼이다. 메리츠증권은 올해 웹트레이딩서비스(WTS) 출시와 함께 차세대 투자 플랫폼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 플랫폼은 투자 커뮤니티와 AI 분석 기능을 결합한 형태가 될 전망이다.
AI가 글로벌 투자 정보를 요약·번역해 제공하고 투자자 간 의견 교환이 가능한 커뮤니티도 포함된다. 장 대표는 이를 AI 기반 프라이빗 뱅킹 파트너라고 말한다.
핵심은 고객을 플랫폼 안에 머무르게 만드는 것이다. 거래 수수료가 아닌 서비스와 데이터로 수익을 창출하는 미국식 증권 플랫폼 모델을 한국 시장에 이식하겠다는 구상이다.
장 대표의 또 다른 승부수는 발행어음 사업이다. 현재 메리츠증권은 2025년 7월 발행어음 인가를 신청해 금융당국 인가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발행어음은 자기자본의 최대 200%까지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도약하기 위한 핵심 열쇠로 꼽힌다.
2025년 말 기준 메리츠증권 자기자본은 8조원을 넘어섰다. 인가가 나오면 16조 원 규모의 막대한 자금을 기업금융과 투자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업계는 이를 두고 “메리츠가 IB 중심 글로벌 모델인 ‘한국판 골드만삭스’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한다.
한강을 마주한 집
장원재 대표가 선택한 주거지는 서울 용산구 이촌동 대표적 고급 단지인 ‘LG한강자이’다. 과거 한강외인아파트를 재건축해 2003년 4월 준공된 이 단지는 한강변 1선에 위치해 탁 트인 ‘한강 조망권’으로 유명하다.
장 대표가 소유한 호실은 공급면적 253.14㎡(약 77평), 전용면적 202.32㎡(약 61평)의 대형 평형이다. 방 4개와 욕실 3개를 갖춘 구조로 자산가들의 선호도가 높다. 특히 14.65%의 낮은 건폐율 덕분에 동간 거리가 넓고 단지 내 30% 이상이 녹지 공간으로 조성돼 쾌적한 환경이 강점이다.
리스크 관리를 중시하는 장 대표의 성향은 아파트 보안 시스템에서도 드러난다. 각 동마다 경비 인력이 상주하며 전문 보안 업체의 순찰 시스템이 가동된다.
단지 앞에는 이촌한강공원이 연결되어 있어 언제든 산책과 운동이 가능하다. 여기에 강변북로, 한강·동작대교 진입이 수월한 사통팔달 교통망은 효율성을 더한다.
부동산 투자에서도 그의 안목은 매서웠다. 장 대표는 2009년 3월 용산시티파크 한 호실(공급 176.77㎡·전용 146.56㎡)을 13억9000만 원에 매입했다. 이후 2017년 8월 해당 호실을 15억5000만 원에 매각하기 직전인 그해 6월 현재의 LG한강자이를 25억 원에 선점했다. 동일 권역 내에서도 한강 조망권과 쾌적성이 극대화된 자산으로 주거지를 최적화한 것이다. 당시 과감하게 확보한 이 집은 현재 시세가 60억 원을 상회하며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2029년 메리츠증권 결과값은
연임에 성공한 장원재 대표 앞에는 명확한 과제가 놓여 있다. 수수료 무료 전략으로 끌어모은 고객을 자산관리와 투자상품으로 연결하는 일, 발행어음 사업을 통해 확보할 자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하느냐는 것이다.
한강을 내려다보는 이촌동의 안식처에서 이 ‘수학자 CEO’는 한국 증권업의 게임 규칙을 바꿀 새로운 수식을 모색하고 있다. 그 결과는 임기가 끝나는 2029년 3월 메리츠증권이 어떤 모습의 금융회사가 되어 있을지로 증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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