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평화를 염원한다. 하지만 평화는 저절로 구현되지 않는 법. 넉넉한 '빵'과 자유를 먹고 산다. 평화 실현의 전제는 또 있다. 정의와 힘의 균형이다.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압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 지구촌에 항구적 평화는 요원한 일인가. 당장 중동의 현실을 보자.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폭격한 지 45일 만에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미‧이란 간 종전 회담을 11일 가졌지만 1차 결렬됐다. 미국과 이란이 '치킨게임'을 하며 충돌 직전 각자 차량 핸들을 꺾은 모양새지만 쉽지 않은 형국이다.
협상 관건은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와 이란 우라늄 농축 권한 등 핵 프로그램이다. 이란은 호르무즈를 지렛대 삼아, 완전한 종전 및 상호 불가침 약속, 평화적 핵 이용 권리 및 미사일 개발 권리 보장 등 핵심 요구 사항들을 관철하려 하고 있다.
다만 이들 요구를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최악의 경우 가시적 성과 없이 '2주 휴전'이 종료된다면 미국은 군사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이란도 대응 수위를 높이면서 충돌이 더욱 격화되고, 증폭된 국제 분쟁으로 비화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목되는 바는 종전 회담에 이스라엘이 빠졌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은 한발 더 나아가 이란의 ‘전위대’ 헤즈볼라 섬멸을 구실로 레바논 공격을 멈추지 않으며 휴전에 재를 뿌리고 있다. 무고한 민간인 희생과 도시 파괴 등 인적‧물적‧정신적 피해가 막대하다.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선제공격이 빌미를 주었지만 이스라엘군의 몇십, 몇백 배 응징으로 가자지구는 ‘생지옥’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빗대 “반인권적·반국제법적 행위를 되돌아보라”고 비판했다. 인류 보편적 인권 보호 측면에서 마땅한 우려다. 전시 민간인 피해를 유대인 학살에 비유한 사례도 적절하다고 본다. 이스라엘 외무부가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없다.
이스라엘 국민이 제2차 세계대전 중 겪은 참혹한 고통에 공감하고 이해하지만, 최근 네타냐후 총리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정도를 벗어난 반인륜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자신들이 약소민족으로서 당했던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또 다른 가해로 이어지는 ‘증오의 사슬’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렇다. 어떤 구실이든 전쟁은 깊은 상흔을 남긴다. 인명 살상, 재산 멸실, 정신적 공황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후유증이 크고 깊고 오래 간다. 그래서 전국시대 대표적 법가 한비자는 세유삼망(世有三亡)’, 곧 망하는 세 가지 길을 적시해 함부로 전쟁하지 말라고 경책했다. 어지러운 나라가 공격하면 망하고(以亂攻治者亡), 사악한 자가 정직한 자를 공격하면 망하며(以邪攻正者亡), 도리를 거역하고 있는 자가 도리를 따르고 있는 이를 공격하면 망한다(以逆攻順者亡)”고 제시했다.
전쟁은 인류의 공존과 번영을 위협한다. 이제 세계인들은 총칼을 녹여 쟁기와 보습을 만드는 일에 함께 나서야 한다. 지구별의 평화를 위해 미국‧이란은 물론 이스라엘도 참여해 이슬라마바드의 기적을 만들어내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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