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시선을 끈다. 함윤이 작가의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이 소설은 소재나 주제가 꽤 숙성되는 과정을 거쳤다. 어느 추운 겨울날 강원도 독수리를 보러 갔다 문 닫힌 천문대를 만났고, 나중에 외국에 가서 이민자와 난민을 적으로 규정하는 정치인들의 존재를 알게 됐다.
대통령이 계엄령을 발동하자 이에 반발한 시위대에 참가하는 경험 속에서 자신이 ‘적’이라는 관념에 둘러싸여 있음을 깨닫는다. “언젠가부터 나는 거리에 나갈 때, 광장에 서 있을 때, 농성하고 행진을 따라 걸을 때 모종의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외치는 구호와 품속의 피켓 모두가 너무 엄숙하게 느껴졌다. 나는 사사로워지고 싶었다. 그리하여 누구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많은 장소를 통과하길 바랐다.” “곁을 지나는 행인들이 나와 주변인들을 흘끗거릴 때면 나는 휙 달아나고 싶었다. 그들이 나를 하나의 축으로, 누군가의 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실은 나는 하나의 축이 되기 위해 거리와 광장에 간 것이었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적이 되기는, 누군가를 적으로 삼기는 싫었다.”
비록 심정적 차원의 것이어서 하나의 사상으로 구축되었다고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진술’은 ‘12·3 계엄령’ 이후 작가들이 보인 상투적인 논리나 구호적 논조와는 다른 점이 있다. ‘축’이 되고 ‘적’으로 간주되는 거리와 광장의 ‘싸움’, 행진 같은 것에서 물러나 ‘사사로움’, 하나의 ‘개인됨’, 자기 자신의 사유와 판단의 영역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적’을 시로 쓴 시인이 둘 있다. 임화와 김수영이다. 김수영은 필시 임화를 의식하고 자신의 ‘적’ 시 두 편을 썼으리라. 임화는 김수영의 종로 6가 고향 선배다. 관철동에서 출생했지만 종로 6가 임화의 효제동에 어린 시절 기억이 있다. 김수영의 ‘적’ 시들도 분석하자면 또 아주 흥미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원리에 대한 사유는 임화 쪽에 있다.
임화의 시는 비록 기독교 성경과는 다른 논리를 펼치지만, 시 앞에 ‘복음서’ 구절을 내세우고 있다. “네 만일 너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이는 사랑이 아니니라. 너의 적을 사랑하고 너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라.” 이 구절은 마태복음 4장 44~46절에 이르는 ‘산상수훈’의 구절, 누가복음 6장 27~32절의 내용에 그대로 겹친다. 엄혹했던 일제 말기 임화는 이 성경을 부인하고 ‘적’이 자신의 투쟁 의지를, ‘우리들의 용기’를 북돋운다고 했다. “적이여, 너는 내 최대의 교사”라고 했다. “사랑스러운 것! 너의 이름은 나의 적이다”라 했을 때, 그것은 ‘적’을 비꼰 것이다.
함윤이 작가의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도 성경적이다. 면사무소 신입 ‘노아’가 천문대에 갔는데, 이곳을 점거한 이들은 어떤 ‘사이비 종교’ 사람들이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 구절 중에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라는 구절이 있다. “적들이 산을 오를 때”가 결정적인 구원의 순간이라는 것인가? ‘적’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아직 사상은 되지 않았다. 이제 사상이 막 출현하려 한다.
나는 성경의 원리로 돌아갈 것을 생각한다. 그것은 또 ‘법화경’의 ‘약초유품’의 가르침으로 돌아간다. 비는 ‘나’에게도 ‘적’에게도, 모든 풀꽃에 고루 내린다. 나는 ‘적’을 사랑하기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적’이라는 관념 자체를 해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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