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기형도,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왔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기형도, ‘대학 시절’)
차마 말하기 힘든(hard) 껄끄러운 진실(truth)이 있기 마련이다. 끝내 좋아할 수 없는 모난 사람도 주변에 꼭 1명은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부드럽게 말해도 상대에게 아픔을 줄 수밖에 없는 순간이, 슬프게도 오고는 한다. 그때, 직설적으로 말할지, 돌려 말할지, 침묵할지, 이것이 문제다. 왜 문제일까? 타인의 마음에 상처내지 않으려는 도덕성이 내면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리라. 이는 타인에게 폭언으로 마구 상처를 내는 욕쟁이가 비도덕적이라고 여겨지는 현실과도 통한다. 욕쟁이는 정말 악할까.
욕쟁이가 주인공인 영화 ‘내 말 좀 들어줘(2025)’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가시처럼 날카로운 극언을 거침없이 내뱉는 이가 사회에서 미움받고 배척당하기 십상임을 떠올리면, 막말이 주특기인 빌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의 용기는 상당히 과감하다. 어쩌면 다소 극단적인 면까지도 있다. 그만큼 영화의 감정적 결이 울퉁불퉁 헝클어질 우려도 품을 만하다. 그러나 그 제목대로 영화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이 우려가 한낱 기우였음을 깨달을 수 있다.
‘내 말 좀 들어줘’는 내면의 진실과 외부로 향하는 발화가 서로 어떻게 연관되는지 부드럽게 연출한 영화로 감촉될 때, 그 진상과 서사가 매끄럽게 파악된다. 주인공 팬지가 까칠하기 그지없는 초과민성 캐릭터임에도 이토록 섬세한 결을 지닌 영화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연기·음악·연출이 부드러운 조화를 이룸에 있는 것 같다. 이 삼박자가 성공적으로 겹친 덕에 폭신폭신한 결이 형성될 수 있었다.
영화의 영어 원제가 ‘HARD TRUTHS(힘든 진실)’임은 의미심장하다. 퍽 저속한 언행 때문에 공공의 적으로 취급되는 팬지가 버거운 진실의 여린 알몸을 체화한 캐릭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거칠기 짝이 없는 욕설을 맹렬히 퍼붓는 팬지가 이기적이고 무례하다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음은 얼핏 당연하다. 그러나 그런 비난은 그녀의 표층적 행동만 피상적으로 인식한 처사일 수 있다. 공격성이 강할수록 그만큼 내면의 심층이 예민하고 불안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타인에게서 공격을 당해 상처 받지 않으려는 방어 심리가 타인에게 먼저 공격을 가하는 행동으로 발현되는 격이다.
마리안느 장-밥티스트는 참으로 폭발적인 연기를 선보여 팬지의 양면성을 적확히 구현했다. 그 폭발력은 밖으로 발사되는 공격과 안으로 집약되는 응축에 모두 능하다. 전자는 민폐 고객, 가게 직원, 의사, 행인, 가족 등 인물형을 가리지 않고 살벌한 욕을 팍팍 내지르는 그녀의 괴팍한 외면을, 후자는 자신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여동생 샨텔에게 지그시 호소하는 그녀의 연약한 내면을 적실히 표현한다. 모지스가 어머니날을 맞아 꽃 선물을 샀다는 말을 듣고서 팬지가 침묵과 웃음과 눈물을 모두 보이는 장면은 특히 압권이다.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자신을 위해 꽃을 준비했다는 사실에 놀라 입술만 부르르 떠는 침묵, 점차 몸까지 떨면서 비웃음과도 닮아 보이는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는 기쁨, 끝내 감동한 나머지 오열하고 마는 감정 흐름이 섬세한 표정 연기에 힘입어 자연스레 이어진다.
또한, 이 오열 씬에는 그 어떠한 음악도 더해지지 않아서 온전히 배우의 연기와 극의 분위기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영화 음악의 효과적 활용을 예증하는 사례로서 포착된다. 팬지의 발화가 이루어지는 장면에서는 배경 음악이 거의 깔리지 않음으로써 격렬한 막말이든 나긋한 고백이든 그 대사 내용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구성된다. 반면에 인물이 등장하지 않거나 대사가 없는 장면에서는 유려한 느낌의 배경 음악이 적절히 흐름으로써 영화 전체의 정서적 폭이 살포시 다듬어진다. 마이크 리가 감독했던 영화 ‘네이키드(1993)’가 세상의 어두운 모습을 발가벗기는 방식으로서 인체 해부도와 배우의 나체 같은 시각성을 활용한 것에 흥미롭게 대비되는 청각적 연출로 판단된다.
감독의 연출 역량이 음악 활용에만 갇히지 않음은 엔딩씬에서 잘 드러난다. 영화의 엔딩은 어슴푸레하게 처리된 느낌이 짙다. 결말을 확실히 매듭짓지 않고 한 가족인 모지스와 커틀리와 팬지의 모습을 따로따로 보여주면서 끝나기 때문이다. 이런 엔딩이 무슨 의미와 맥락을 지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가족들이 한 장소에 화목하게 공존하지 않고 각자 분리된 모습이 담긴 이 결말은 의외로 극명한 진실을 드러낸다.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임에도, 오히려 그렇기에 서로 더 둔하게 대하고 부담스럽게 여기게 돼 서먹해지기 쉬운 묘한 역설이 그 진실이다. 클로즈업으로 커틀리와 팬지의 얼굴을 점점 크게 보여주는 촬영은 관계를 지우는 대신, 인물의 단독성을 강조함으로써 그(녀)의 내면에 집중하도록 이끌어준다.
너무나 유약해서 극악해져 버렸다는 진실. 그 날카로운 진실이 한없이 부드러운 인격체로 형상화돼 말을 걸어온다. 가시 돋친 아픔을 기꺼이 끌어안을 수 있는가? 말하기 어려운 진실이 있고 진실 자체가 이렇게도 말해지기 힘들다.
영화 ‘내 말 좀 들어줘’ 줄거리
팬지는 거친 막말과 저속한 욕설을 타인들에게 거리낌 없이 내뱉는 캐릭터다. 그런 그녀를 남편 커틀리와 아들 모지스조차도 멀리한다. 팬지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불안과 고독을 이해해 주고 보듬어주는 사람은 그녀의 여동생 샨텔뿐이다. 샨텔은 어머니날 기념 가족 파티에 팬지를 초대하나, 샨텔의 딸들은 팬지의 모난 성정에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그 파티에서 팬지는 모지스가 자신을 위해 꽃을 선물로 샀다는 말을 듣고서 눈물을 흘린다.
마이크 리 감독 소개
마이크 리의 전작 ‘비밀과 거짓말(1996)’은 자기 생모에 관한 진실을 찾는 호텐스(마리안느 장-밥티스트 배우)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가족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할 비밀과 그 비밀을 숨기려고 가족에게도 거짓말하고는 하는 가족 관계의 역설을 부드러운 흐름으로 전개한다. 그가 감독한 ‘세상의 모든 계절(2010)’은 연민과 공감이 얼마나 흔하고도 고단한지 차분히 보여주는 또 다른 명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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