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
구름은 예술 작품이다. 이 말은 한낱 비유가 아니다. 구름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다. 먹구름의 검은빛은 영화 속에 균등하게 섞인 빛과 어둠을 드러내고, 무지개구름의 총천연색은 그림 속에 알록달록 칠해진 빛깔들을 보여준다. 구름은 부단한 변형을 통해 경계를 유연히 넘나드는 자유로운 공기 이미지로서 시적 몽상을 가장 잘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렇게 천변만화하는 구름 자체가 예술 작품이요, 예술 작품의 소재로 줄곧 다루어져 온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구름은 수많은 입자로 이루어진 일종의 관계망이다. 그런 점에서 집단 협업의 산물인 영화도 구름만큼 변화무쌍한 역동적 가변체로 이해될 만하다. 이 끊임없는 변환으로서의 영화는 무한한 해석이 가해지는 텍스트로 주어짐과 동시에 스스로 해석을 산출하는 사유 행위자로 기능할 수 있다. 영화가 자신 속에 머금어진 빛과 그림자의 촘촘한 명멸로부터 제시하는 색다른 해석은 세계와 예술을 또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비평적 형안을 꽃피워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비커스태프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베르메르 : 위대한 전시회(이하 ‘베르메르’)’가 바로 그러한 미술비평을 실천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다소 시차를 두고 2025년에 개봉된 이 영화는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명화들을 큐레이션하는 회화 교양 다큐멘터리로서의 정체성이 짙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객관적 사실만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편집자의 주관적 스토리텔링과 의도적 연출에 따라 특정한 견해를 피력하는 장르임은 기억될 필요가 있다. 그러함에도 ‘베르메르’의 목표가 “EXHIBITION ON SCREEN(괄호 속 영문 표기 부분은 영화 ‘베르메르’ 속의 자막이나 대사가 직접 인용된 것임)” 시리즈의 한 편으로서 유명 화가의 미술 세계를 소개하는 비평 큐레이션에 주로 놓인 점이 이 영화의 근본적 한계임도 현실적으로 인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태생적 한계에만 시선이 갇혀서 ‘베르메르’를 단순한 교양 다큐멘터리로만 소비하는 일은 이 영화의 가치를 생산적으로 발굴하는 면을 놓치게 한다. 이러한 생산성을 적극적으로 도모하는 맥락에서 베르메르의 회화 작품들이 지닌 특성과 가치를 복합적으로 해석하는 후대의 비평 작업을 스스로 체화하는 영화로 ‘베르메르’를 관람하면, 한층 유의미한 실익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관점을 택함으로써, 이 영화를 더 풍성하게 해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베르메르의 회화 세계를 구름의 변형성으로 새롭게 통찰할 수 있는 길도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미술 관련 전문가들은 베르메르가 빛을 매우 잘 사용한 화가인 데다가, 그런 그가 그린 회화들이 뛰어난 작품성을 보유했다는 점에 대체로 동의한다. 그(녀)들은 각자의 해석과 추측을 통해 베르메르 회화의 물성을 복원하거나 의미를 구성한다. 이 복원 및 구성 작업에서 베르메르의 생애와 종교에 연관된 역사적 요소와 연극 장르에 대한 비교 논의가 다양하게 동원된다.
이 점은 미술비평이 미세한 분석력과 폭넓은 상상력(imaginary)을 모두 요청하는 복합적 작업임을 알려준다. 그림 텍스트 안팎의 맥락들을 활발히 넘나들면서 그 맥락들을 논리적으로 엮는 미술비평의 이 복잡한 중층적 양태는 마치 두껍고 불명료한 구름(cloud) 이미지를 띤 것처럼 느껴진다. 베르메르 그림의 흐릿하고 불명료한 형태적 특징(다니엘 아라스, ‘베르메르의 야망과 비밀’, 강성인 譯, 마로니에북스, 2008, 156~159쪽 참고)은 이 느낌이 자의적 감상은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윤곽선의 일부분을 흐릿하게 그린 베르메르의 의도적 화풍으로 인해 그의 회화 속 “배경과 대상은 부분적으로 경계 없이 서로 침투하게(같은 책, 166쪽)” 된다. 이 상호 침투는 회화의 이미지와 그에 대한 감상자의 시선이 무수한 경계선들을 넘나들게 만드는 효과로 이어진다. 경계선이 구획하는 한 영역과 그 반대 영역은 서로 단절된 관계에 있다. 단절을 뛰어넘어 다른 영역의 빛(light)을 감지하는 시선은 이동 이전의 영역을 상대적 의미에서 그늘(shadows)로 인식하기 마련이다.
논의의 단계가 이 지점에까지 도달하면, 베르메르의 그림 ‘델프트 전경(1661년경)’이 그의 미술 세계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재해석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이 그림은 마을의 정경을 섬세히 묘사한 풍경화로서도 물론 빼어나다. 이 우수성에 더하여, 하늘에 뜬 구름과 유려하게 조절된 광량과 물에 비친 건물 그림자가 모두 담긴 특수성에 주목하면, ‘델프트 전경’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구성할 수 있다. 그림에서는 희고 깨끗한 구름과 그늘진 구름이 모두 보이는데, 이는 작은 점들(little dots)로 형성된 구름이 그 활달한 변형을 통해 빛과 어둠의 스펙트럼을 방출하는 작용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포착된다. ‘델프트 전경’에 적용된 점묘법이 베르메르가 당대의 카메라 옵스큐라에 나타난 흐릿한 효과를 의도적으로 변형시킨 결과라고 보는 다니엘 아라스의 논리(같은 책, 158~159쪽 참고)가 상당히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것도 우연은 아닌 셈이다. 이 글에서 제시된 해석들이 종합되는 맥락에서 ‘델프트 전경’은 베르메르 회화 세계의 전반적 특성들을 압축한 상징화로 재해석된다.
이 재해석은 베르메르에 관한 기존 미술비평의 외연을 한층 확장하는 데에도 영감을 준다. 그동안 베르메르는 빛의 화가로 사유되어 온 전통이 강했다. 이 전통적 규정은 충분히 정당하다. 베르메르를 구름의 화가로 생각하는 관점은 그 전통적 규정을 인정하면서도 보다 넓은 새로운 해석적 지평 안으로 충돌 없이 흡수할 수 있다. ‘베르메르’는 이렇게 구름의 광채를 발견하는 데에 큰 도움을 보태는 예술 작품이다.
영화 ‘베르메르 : 위대한 전시회(2023)’ 줄거리 요약
각종 예술 관련 업종의 전문가들이 유명한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회화 작품들과 그 미술적 가치에 관해 다양한 해석과 추측을 들려준다.
데이비드 비커스태프 감독 소개
데이비드 비커스태프 감독은 ‘빈센트 반 고흐: 새로운 시선(2017)’과 ‘미켈란젤로: 사랑과 죽음(2018)’ 등과 같이 다른 예술가들의 예술 작품 세계를 큐레이팅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들도 일찍이 연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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