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는 쉽게, 한눈에 잡히지 않는 작가다. 최근에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2009)’을 읽는데 한 번에 읽어내려지지 않는다.
중편소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도 마찬가지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의 탈자 이야기에, 캠퍼스 학생 데모가 한창일 때 자살해 버린 여학생 얘기, 이 여학생 남자친구가 낭가파르바트 등정에 나섰다가 실종된다는 이야기를 작가는 ‘아주 난삽하게’ 엮어 놓았다.
대조적인 작품에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문학동네, 1998년 가을호)’가 있다. 오래된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2002)’에 수록됐다. 2000년대에 턱걸이를 한 셈이다.
좋은 작품이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널리 알려진 대로 문헌과 기록의 편집 요소를 지닌다. 그렇다면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는 구술적 생활세계의 편집이다. (박연옥, 조연정 씨 등이 이미 유사한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왜 실제 이야기들을 떠서 작품 속 이야기로 만드는가. 미학적 경험을 위해서일 것이다. 역사든 실제 이야기든 그것들은 아직 미적으로 정련되지 않았다. 오스카 와일드는, 자연의 미는 인공의 미에 못 미친다고 했다.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는 사람들이 살며 겪은 것을 들려주는 이야기다. 화자인 ‘나’는 군대에 가기 전, 삼촌을 따라 갔던 멧돼지 사냥을 회상한다. 음력 11월의 산골 마을이다. 멧돼지가 내려오고, 사람들은 사냥을 준비한다. 삼촌, 도라꾸 아저씨, 사냥개들과 함께 화자는 리기다소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개들이 멧돼지 냄새를 맡고, 사람들은 산속에서 긴장하며 기다린다. 총, 개, 숲, 멧돼지, 겨울 산이 작품에 육체적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 사냥 이야기 안에 삼촌의 사랑 이야기가 큰 몫을 차지한다. 치과 의사인 삼촌은 젊은 시절 한 여자를 사랑했다. 팜므파탈적인 여자는 삼촌을 파멸 가까이 몰고 간다. 삼촌은 여자를 쫓아 멀리 감포까지 찾아갔었다 한다.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며 죽고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사랑 때문에 죽고 싶어 하는 마음, 그러나 실제로 죽지는 못하는 마음, 이것이 삼촌의 과거다.
삼촌의 사랑 이야기가 멧돼지 사냥 이야기에 겹친다. 사냥의 절정에서 어미 멧돼지가 새끼들을 향해 다가온다. 멧돼지는 새끼를 향해 오는 어미였다. 죽을지도 모르는 사냥 현장에서 새끼들을 따라오는 본능적 생명이었다.
삼촌은 총을 들고 있다. 방아쇠를 당기면 원하는 멧돼지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삼촌은 쏘지 않는다. 총을 쏘는 것도 용기겠지만, 더 큰 용기는 총을 쏘지 않는 용기다. 사냥감 앞에서 방아쇠를 당기지 않을 용기, 여기서 소설은 남성적 사냥 이야기에서 생명 윤리의 이야기로 급전환된다.
소설은 용맹과는 다른 차원의 용기를 말한다. 산 것을 살게 두는 용기, 새끼를 향하는 어미의 생명력을 알아보는 용기다. 사실과 역사, 생활 속에서 미를 건져 올리려는 작가 김연수의 의도ㆍ의지가 빛을 발하는, 가히 아름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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