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질문에 답하던 AI가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실행하는 시대다. 이런 변화 속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AI 시대에는 스페셜리스트보다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기술이 인간의 역할을 바꾸고 전문가의 지식마저 대중화되고 있는 지금, 과연 무엇이 경쟁력이 될까.
흔히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는 대립되는 개념이다. 하나를 깊게 파는 사람과 여러 분야를 넓게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깊이냐 폭이냐의 선택보다, 어떤 깊이를 가지고 어떤 폭으로 확장하느냐가 관건이다. AI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깊이 없는 넓이는 금세 얕아지고, 넓이 없는 깊이는 고립되기 쉽다. 한 분야를 충분히 파고든 사람이 다른 분야와 연결될 때 훨씬 더 경쟁력이 생긴다.
이때 떠오르는 메타포가 바로 '담(wall)'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담을 쌓고 살아간다. 담이 있다는 것은 내 안에 축적된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다. 담은 나와 타인의 경계이자 연결의 시작점이다. 담이 높아질수록 바깥세상을 향한 시야도 넓어져야 한다. 자기 기반을 지키되 그 담을 넘나들어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 이때 흔히 말하는 ‘통섭’은 타인의 담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하는 일이다. 서로 다른 분야를 넘나드는 '통섭(通涉)'의 과정이 쌓일 때, 비로소 다양한 지식을 하나의 시각으로 아우르는 '통섭(統攝, consilience)'이 가능하다.
이날치의 음악이 좋은 예다. 판소리라는 전통 위에 현대적 리듬을 얹었고, 정통에서 벗어난 시도가 처음엔 낯설었지만 결국 더 넓은 무대로 이어졌다. 전통을 버린 것이 아니라, 전통을 충분히 이해했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통섭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 분야를 깊이 이해할수록 다른 영역과의 연결도 힘을 얻는다. 그 연결의 출발점은 결국 나와 다른 세계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하나의 정답만을 찾으려 한다. 한때는 인문학적 소양이 중요하다고 했고, 한때는 기술과 코딩이 미래의 전부인 양 이야기했다. 어떤 시대에는 스페셜리스트가 경쟁력이라고 했고, 또 어떤 시대에는 제너럴리스트가 답이라고 했다. 선뜻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다. 지금의 기술 발전 속도가 전문성과 연결능력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AI가 단 몇 초 만에 전문가 수준의 파편화된 지식을 쏟아내는 지금, 단순한 지식의 양은 더 이상 무기가 되지 못한다. 생각 없는 AI가 생산해 내는 무수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인간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그 지식을 연결하고 조율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지휘력'이다.
결국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는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의 극단도 아니고, 적당히 절충한 사람도 아니다. 자신만의 고유한 깊이를 갖고 다른 영역과 연결할 줄 아는 사람이다. 깊이 없는 제너럴리스트는 위험하고 폭 없는 스페셜리스트는 고립될 것이다. 자기 담을 단단히 갖되 담장 너머의 새로운 길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만이, AI시대의 다음 기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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