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아르헨티나 라플라타 강변의 레스토랑에서 젊은 여성이 벽돌만한 소고기 스테이크를 포도주와 함께 여유 있게 먹던 모습을 보고 놀랐었다. 1인당 연간 소고기 소비량이 100kg인 나라다운 모습이다. 팜파스 초원에서 소를 방목하며 항공사진을 찍어 소가 몇 마리인지를 헤아리는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경제난과 물가고로 값싼 닭고기밖에 먹지 못하는 주민들이 꽤 있다.
특히 연금 생활자들이 문제다. 이들은 젊었을 때 열심히 연금을 부었음에도 살인적인 물가 상승을 연금 인상이 따라가지 못해 “내 연금 내놔”를 외치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이때 전기톱을 들고 아르헨티나 좌파 정부의 선심성 공약과 방만한 재정 지출을 모두 날려 버리겠다며 등장한 사람이 밀레이 현 대통령이다. 그는 남미의 트럼프라고 불린다.
2025년 1월 트럼프가 취임한 이래 중남미 7개국에서 우파 지도자가 모두 승리했다. 지난달 콜롬비아도, 페루도 그랬다. 오는 10월 치러질 브라질에서도 4선에 도전하는 룰라 현 대통령을 누르고 우파가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 젊은 층이 우파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마두로가 축출된 베네수엘라 좌파 정부도, 쿠바 공산혁명 정권도 몰락 중이다. 최근 중남미에서는 우파가 연쇄 집권하는 ‘블루 타이드(Blue Tide)‘가 확연하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트럼프의 상징색을 인용해 '오렌지 웨이브(Orange Wave)'라고도 했다.
21세기 들어 중남미에서는 좌파가 득세하는 핑크 타이드(Pink Tide)가 강했다. 중국 경제의 급성장과 그에 따른 원자재 슈퍼사이클 덕에 중남미산 석유, 구리, 철광석, 대두가 잘 팔렸다. 좌파 정권들은 그 돈으로 복지를 확대하고 정부 보조금을 뿌렸다. 그러나 팬데믹 후 저성장 속에 늘어가는 국가 부채와 방만한 정부 지출은 인플레이션과 민심 이반을 불렀다. 갱단과 마약 카르텔까지 기승을 부렸다.
이에 엘살바도르 부켈레 우파 대통령은 갱단원들에게 최대 징역 1335년을 선고하고, 4만여 명을 수용하는 초대형 교도소(CECOT)를 지옥 스타일로 운영해 범죄율을 낮췄다. 트럼프가 남미 갱단 조직원 의혹을 받는 미국 내 불법 이민자 수백 명을 엘살바도르로 추방했을 정도다.
여타 중남미 국가들도 엘살바도르처럼 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콜롬비아 대선에서는 아마존 밀림에 교도소 10개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운 우파 델라 에스프리에야 후보가 당선되었다. 페루에서는 악질 범죄자에 대한 사형제 부활을 주장한 케이코 후지모리 후보가 이겼다.
이렇게 콜롬비아와 페루에서 유권자들이 좌파 정부의 무능을 표로써 심판할 수 있었다. 페루는 별도의 사전 투표 제도가 없으며, 투표소에서 수작업으로 직접 개표한다. 전자 개표기도 안 쓴다. 최근 디지털 투표(STVD) 도입 시도가 있었으나 신뢰성 문제로 보류되었다. 콜롬비아 역시 하루 투표하고, 오후 4시 마감과 함께 참관인들이 각 투표대에서 개표했다. 박빙 승부였기 때문에 재검표까지 실시했는데 2500만 표를 3시간 만에 수작업으로 개표해 당선자를 확정지었다.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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