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섭공이 자신의 고향에 양을 훔친 아버지를 고발한 정직한 사람이 있다고 자랑하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동네의 정직함은 그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숨겨주니, 정직함은 바로 그 안에 있습니다.” 매우 인상적인 구절이다. 이러한 정직함은 반대의 경우에도 적용될 것이다. 공자는 인간성의 근본인 효와 자애라는 천륜을 강조했다.
2026년 대한민국에서 이 고전적 딜레마는 ‘장윤기 여고생 살해 사건’을 통해 소환되었다. 피의자 장윤기의 아버지가 아들의 범죄 의혹이 담긴 리얼돌과 휴대전화 등 핵심 증거를 폐기하고 불태운 정황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극도로 분노하였지만, 형법 제155조 제4항, 즉 ‘친족간의 특례’ 조항으로 아버지에게 무죄의 방패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대한민국 형법이 범인은닉과 증거인멸죄에 친족 특례를 둔 배경은 공자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 자식이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이를 감싸려는 부모의 본능은 국가의 형벌권이 관여할 수 없는 보편적 정서이다. 만약 법이 부모에게 자식의 범죄 증거를 찾아 공권력에 바치라고 강요한다면, 이는 본성을 거스르라는 명령이 된다. 국가 권력은 가족 공동체의 유대를 존중하기 위해 형법의 친족 특례를 두었다.
그러나 장윤기 사건의 아버지는 고전이 말한 ‘양을 훔친 부모’의 경계를 완전히 넘어섰다. 사람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그가 단순히 아들의 증거를 인멸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다름아닌 현직 고위 ‘경찰 간부’였다는 점, 그리고 그 지위를 이용하여 사법 시스템을 교란했다는 점 때문이다.
경찰 수사팀은 압수수색 후 피의자 자취방의 비밀번호를 아버지에게 흘렸고, 아버지는 증거를 없앴다. 아들의 범행 차량을 보름 동안 아버지가 타고 다니게 한 정황도 드러났다. 따라서 이는 천륜에 이끌린 우발적 은폐가 아닌, 공적 수사 권력과 사적 혈연관계가 결탁하여 사법 정의를 조직적으로 유린한 일이다. 공자의 의도는 평범한 백성들이 천륜을 지키는 것이지, 고위 공직자가 수사 기밀을 빼돌려 자식의 중범죄를 세탁하라는 것이 아니다.
법적인 무죄가 도덕적 면죄부가 아님은 누구나 안다. 장윤기의 아버지는 자식을 망쳤다. 이 사건에 개입함으로써 자식이 죄를 뉘우치고 거듭날 기회를 영원히 박탈한 셈이다. 진짜 부모라면 뼈아픈 대가를 치르더라도 바른길로 인도해야 했다.
이 사건은 사회에 무거운 숙제를 던졌다. 천륜을 배려하는 법의 취지는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그것이 성범죄나 살인 같은 중대 범죄, 그리고 공직자의 직권남용과 결탁할 때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 사법 정의를 가로막는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 친족 특례 조항의 한계를 짚어주는 법 개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정(情)을 품지 못하는 법은 차갑지만, 공정을 잃은 법은 무기력하다.
사회 지도층은 ‘대인(大人)’이어야 한다. 언행은 의(義)라는 도덕적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소인(小人)’이다. 이 또한 공자의 잣대이다. 피의자 장윤기의 아버지가 비난받는, 그가 무죄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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