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
똑같은 듯하나 엄연히 변별되는 요소들이 있다. 사실과 진실이 그 예다. 전자가 객관적 단편에 그친다고 본다면, 후자는 사실들의 관계가 복합적 맥락에 기초해 정확히 헤아려진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즉, 맥락이 삭제된 사실이 진실은 아닐 수 있다.
조현병 환자가 살인을 범했다는 정보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었다. 이 정보들은 분명 사실이다.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는 위험하지 않고, 조현병 환자들의 폭력 행위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전체 폭력 행위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에드윈 풀러 토리, ‘조현병의 모든 것’, 정지인 譯, 심심, 2021, 424쪽).” 조현병 환자 전체에서 아주 소수만 해를 가한다는 사실도 헤아리면, 적지 않은 언론 매체가 조현병을 괴물로 묘사하는 것은 진실과 상당히 괴리된다고 판단된다.
교묘히 편집돼 사뭇 다른 맥락으로 재구성된 사실들은 많은 이를 어쩌면 망상에 가까울 편협한 생각으로 선동하기에 족하다. 그런 편견은 조현병 환자를 향한 비난을 낳고, 조현병에 대한 수치를 환자 본인과 그 가족에게 심기 마련이다. 조현병에 연관된 “비난과 수치는 모든 가족의 발목을 잡고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괴물(같은 책, 440쪽)”임이 사실이자 진실일 터이다.
후지노 토모아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이하 ‘어떻게’)’가 빛나는 이유는 언론 매체로는 구현되지 못할 진실이 영화 매체에 담길 수 있음을 증명한 점에 있다. 2024년에 처음 상영돼 약 2년 후에 한국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감독의 누이 마사코의 조현병 투병 과정과 그 과정에서 부모가 취한 조치를 선연하고 절실하게 기록했다. ‘어떻게’는 일상의 물성을 통해 조현병에 관한 사실들을 스펙트럼의 진실로 엮는 해석과 그 진실을 질문으로 바꾸는 역량이 뛰어난 영화다.
다큐멘터리 영화에 관한 오해가 있다. 사실만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주관적 해석은 배제한다는 오해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에서도 감독의 가치관과 판별에 따라 영상 기록들이 취사선택된다. 상이한 울림이 깃든 영상들을 조율하는 스토리텔링 기법이 다큐멘터리 장르에도 활용되는 셈이다.
이 영화의 조현(調絃)은 어떤 스펙트럼을 빚었는가. 감독의 부모와 마사코가 사는 집에 있는 형광현미경이 가장 눈에 띈다. 빛과 어둠은 분리 불가하게 내밀히 접촉하고 있거니와, 그 경계가 딱 나뉘지 않고 연속적 흐름을 이룬다. 형광현미경은 자외선을 활용해 가시광선과 맨눈으로 못 보는 미세 물질을 볼 수 있게 돕는 사물이라는 점에서 진실의 미미한 결들을 섬세히 관찰하고 엮은 감독의 해석력을 대변하는 상징물로 아로새겨진다.
빛과 어둠의 예처럼, 극명히 상충하는 듯한 짝들에 관한 오해가 많다. 밝은 낮에 약간 침침한 방에서 멍하게 혼자 있는 마사코의 모습은 스펙트럼의 미묘한 명도를 다시 보여줄 뿐만 아니라, 조현병에 걸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드러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조립한 물건들이 차례대로 제시되는 장면은 조현병 환자도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음은 보여준다. 그녀가 약물을 복용함에 따라 호전되면서, 발화와 손글씨를 산출하게 됐고, 사진 포즈도 잡았었다.
빛과 어둠의 경계가 흐릿하듯, 의과학조차 세계관의 선택과 패러다임의 교체를 통해 수립되는 주관성을 띠고, 미신과 종교도 자기 나름의 과학을 통해 세계의 창조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신념 체계다. 감독의 부모도 의학을 전공했으나 새해 1월마다 집안의 안녕을 조상들에게 기원하는 모습을 보인다. 죽은 마사코의 관에 논문과 타로카드가 넣어지는 장면도 간과되기 어렵다. 부조리한 신념이 없거나 미신을 안 믿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점성술과 타로점 같은 미신을 재미로라도 경험해보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감독의 부모는 연속체의 형태와 다르게 너무 경직된 판단을 내렸다. 명석했던 딸이 정신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을 수용하지 못했던 슬픔과 주변의 부정적 시선을 염려했던 수치가 작용한 바람에 마사코를 수십 년간 병원에 안 데려가고, 사슬과 자물쇠로 사실상 가두는 조치까지 취했었기 때문이다. 부모 나름으로는 이성적이라 여겼을 이런 조치가 맹신의 비이성적 광기를 반영하는 것이리라.
감독은 부모의 이 조치가 옳았는지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영화는 이 점에서도 우수하다. 감독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출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사실들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차원을 넘어 자신이 그 과정을 통해 어떤 영향으로 동요했는지 진실하게 고백하는 차원까지 도달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인터뷰는 감독이 자신(의 부친)과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만약 다시 기회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조현병은 생물학적 질병이며, 약물 치료가 필수이기 때문에(같은 책, 237쪽)” 이 글의 답변은 이렇다. “숙련된 전문가로부터 가장 좋은 치료를 받고 최상의 잠재 능력을 가지고 여생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린 델리시스, ‘100문 100답 정신분열병’, 최영민·이지연 譯, 하나의학사, 2010, 163쪽)” 하지 않(았)을까.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2024)’ 줄거리
후지노 토모아키 감독에게는 1958년에 태어난 누이 마사코가 있다. 그녀는 주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의대에 합격한 선한 우등생이었다. 1983년의 어느 저녁, 그녀는 식사 후에 갑자기 가족들에게 고함을 치면서 조용히 하라고 말하는 이상행동을 보였다. 바로 조현병 징후였다. 정신과 의사는 마사코가 문제없다고 진단했으나, 그녀의 조현병 증세는 계속 발현됐다. 그녀의 부모 모두 의학을 전공했지만, 수십 년간 그녀를 병원에 안 보내고, 현관문을 쇠사슬과 자물쇠로 잠그기도 했다. 이렇게 감독이 2001년부터 약 20년간 마사코와 부모의 투병·생일·사망에 관한 여러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편집한 영화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다.
후지노 토모아키 감독
1960년에 출생한 후지노 토모아키 감독은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한 후, 전문학교에 진학해 영화를 공부했다. 그는 2026년 7월 29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열린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GV에 참석했다. 가족의 사생활에 대한 보호와 영상의 재가공에 대한 방지를 원하는 그의 뜻에 따라,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극장에서만 상영되고, 디지털 플랫폼으로는 서비스되지 않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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