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적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 ‘오디세이’는 영웅의 내면에 자리잡은 '죄책감'을 중심으로 고전을 재해석했다. 영화 속 오디세우스의 고통은 제우스가 관장하는 신성한 '상호호혜성(reciprocity)'의 법을 어긴 자가 치르는 뼈아픈 사회적·도덕적 비용이다. 주인공의 길고 긴 귀환길은 단순히 신들의 농락이나 잔혹한 운명이 아니다. 10년 전쟁의 마침표를 찍은 천재적 지략가인 오디세우스의 영광에는 동료들의 죽음과 무자비한 약탈, 승리를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가 도사리고 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제우스는 나그네와 손님 접대의 관습을 수호하는 존재였다. 낯선 이를 대접하여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호혜의 원칙은 문명사회를 유지하는 도덕적 안전장치로 작용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승리를 위해 ‘트로이 목마’라는 속임수를 쓰고, 키클롭스의 굴에서는 오만을 부렸으며, 지난한 귀환길에서는 공동체의 규칙과 상호 존중을 깨뜨렸다. 제우스의 법을 교란한 결과는 혹독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10년의 방황은 상호호혜의 원칙을 무너뜨린 영리한 인간이 자신의 도덕적 자산의 파산을 뼈아프게 깨달아 가는 과정이었다.
흥미롭게도 감독이 들춘 이 고대의 서사시에는 현대 사회생물학이 밝혀낸 인간 진화의 비밀이 있다.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가 제시한 상호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 이론에 따르면, 혈연관계가 아닌 개체들이 서로 도운 것은, 주고받음의 균형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유지되려면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남의 호의를 이용만 하고 배신하는 무임승차자(cheater)를 적발하고 처벌하는 메커니즘이다.
‘죄책감’은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개발한 가장 정교한 감정적 장치다. 죄책감은 집단의 호혜적 규범을 위반했을 때 작동하는 내면의 경고 시스템이다. 내가 타인에게 해를 입히거나 약속을 어겼을 때 느끼는 이 불쾌한 감정은 자발적으로 자신을 바로잡게 한다. 집단으로부터 배척당해 생존을 위협받기 전에 신뢰할 수 있는 호혜적 파트너로 복귀하도록 유도하는 장치이다.
영화 ‘오디세이’의 오디세우스는 이 진화적·도덕적 메커니즘의 완벽한 본보기다. 그는 전쟁의 승리를 위해 상호호혜의 선을 짓밟았고 그 결과 동료를 모두 잃고 홀로 남겨지는 고립을 겪는다. 부하들의 죽음을 보며 그를 짓눌렀던 죄책감은 제우스의 법을 어긴 인간이 치러야 하는 사회적 형벌이자 자신의 진화적 적응도를 회복하려는 몸부림이다. 그가 10년 만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방랑의 10년 동안 자신의 죄책감을 똑바로 직시하고 무너졌던 호혜의 질서로 다시 들어갈 자격을 얻었음을 말한다. 하지만 원작과는 달리, 감독은 그의 왕권을 아들에게 넘긴다. 영화에서는 리더인 그에게 속죄를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수많은 상호호혜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간다. 사회적 신뢰가 약화되고 타인을 향한 배신이 넘쳐날 때, 오디세우스가 표류했던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고전이 말하는 ‘신의 법’은 곧 ‘진화의 법칙’임을 영화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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