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스틸 주한 미국대사가 부임했다. 한국어로 첫인사를 건넸고, 남대문시장에서 호떡을 먹는 모습도 화제다. 서울 출신의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은 그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왜 ‘주한 미국대사’보다 ‘한국계’라는 사실에 민감한 걸까.
한국 사회에는 유난히 ‘한국계’라는 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해외에서 한국계 정치인이 당선되거나 기업인·배우·골프선수가 성공하면 자부심을 느낀다. 같은 뿌리라는 사실만으로도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냉혹한 국제정치에서도 그 감정이 그대로 통할까.
미셸 스틸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시민으로서 미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이다. 그는 부임 첫날 “트럼프 대통령의 비전을 실현해서 한·미 동맹을 더욱 강하게 만들겠다”라고 밝혔다. 그의 임무는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국익을 실현하는 일이다. 성 김 전 대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울 출생의 한국계 미국인이었지만, 그가 외교 현장에서 지킨 것은 미국의 국익이었다.
왜 한국계 미국인을 주한대사로 기용할까.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 미국 정치권과의 네트워크, 동맹 현안을 조율할 역량 때문일 것이다. 서울 출생이라는 사실은 그 역량을 뒷받침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미국은 혈통이 아니라, 국익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할 사람을 보낸 것이다.
여기에서 ‘손자병법’의 통찰이 떠오른다. “치어인이불치어인(致人而不致於人)” 상대를 내 뜻대로 움직이되, 자신은 상대에게 끌려가지 말라는 뜻이다. 미국은 한국 사회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외교 자산으로 활용하면서, 한국의 정서에 휘둘리지 않고 국익을 일관되게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손자는 또 경계했다. “이병물식(餌兵勿食)”, 유인하는 미끼를 탐하지 말라는 뜻이다. 여기서 미끼는 유인부대를 뜻하지만, 전략의 본질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상징과 감정 역시 ‘미끼’가 될 수 있다.
‘한국계’라는 혈통, 서울 출생이라는 이력, 유창한 한국어, 남대문에서 호떡을 먹는 모습은 친밀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친밀감과 국익은 별개의 문제다. 혈통은 정체성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외교의 목적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생각을 거꾸로 해보자. 만약 한국이 독일 출신 귀화인을 주독일대사로 임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마도 많은 사람은 낯설게 느낄 것이다. 한국은 아직 귀화한 외국인을 그들의 모국 대사로 기용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고, 외교 인사도 직업 외교관 중심이다. 반면 미국은 다르다. 미국은 혈통보다 국익을 우선하며, 한국계라는 배경 역시 외교 역량을 높이는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국제정치는 감정의 무대가 아니다. ‘한국계 대사’라는 상징 너머의 국익을 읽는 안목이 필요하다.
손자는 전략가에게는 주도권을 쥐는 “치인이불치어인(致人而不致於人)”을, 그 상대에게는 현혹되지 않는 “이병물식”을 주문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이는 혈통보다 보이지 않는 국익을 읽는 눈이다. 국제정치에서 국익은 핏줄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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