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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아야 한다’ 명령에 다수 만나면 폭력 변질
이하배의 소통과 열음…<5>불통이 자연스러운 세상-<1>다수론의 폭력성
이하배 필진페이지 + 입력 2015-01-24 18:04:58
 ▲ 한국소통문화아카데미 이사장(성균관대학교 전 유학·동양학부 교수) ⓒ스카이데일리
일제히 제일만
 
다름과 다양성이 부정되고 배척되는 곳에 획일주의가 있다. 이 ‘획’(劃)은 강제하는 힘이며, ‘일’(一)은 하나 혹은 같음이다. 획일주의는 하나에, 같음에 머물러야 하는 강제다.
 
우리사회에서 다른 가치, 다른 취미, 다른 멋, 다른 생각, 다른 말, 다른 행동 등 다름들이 설 자리가, 적어도 서구 선진국들에 비해, 많이 좁다. 식민지와 분단, 수직주의적 반(半) 봉건 전통, 특히 분단 후에 생긴 좌우 양극화의 영향이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다.
 
‘제일’(第一)로만 좋고 나쁨을 분명히 할수록, ‘제이’든 ‘제삼’이든 그 밖의 다름이 설 자리는 그만큼 줄어든다.
 
믿음과 안 믿음 사이, 보수와 진보 사이, 반공과 반(反)-반공 사이, 물질가치와 정신가치 사이 등에서 하나가 ‘제일’로 선택되면, 나머지 ‘제이’ 그리고 이런 나누기를 거부하고 초월하는 ‘제삼’의 입장은 명함도 내밀기 어려워진다.
 
제일이 아니면, 일제(一齊)히 즉, ‘하나로 똑같이’ 우르르 달려들어, 생각크기나 도덕크기가 작다고 반대하며 비난하거나 측은하게 생각한다. 혹자에게는 A가, 혹자에게는 B가 제일이 되기도 하지만, 그들은 각각의 제일에 사로잡혀, 그 밖의 다른 것들을 강하게 ‘아니다’하고 배제하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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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와 같아지기는 다수가 같아지기, 다수가 하나로, 같음으로 되기로 나아간다 할 것이다. 이는 달라지려 하면 ‘No!’를 말하는 노자2적인 태도로 이어진다.
 
일제(一齊)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한 중요한 문제에 다양한 의견들이 자유롭게 충분히 열리고 나누어진 후에, 결론이 나서 뜻이 일제히 하나, 제일로 모아질 수 있다면, 그리고 이것도 하나의 ‘열린 제일’일 수 있다면, 함께하는 삶에서 바람직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에서 다양한 민의들을 충분히 드러내고 조정하여, 객관적으로 가장 균형 잡히고 적절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회의원들이 하나의 당에 소속되었다 해도, 다양한 사안에서 그의 판단은 당과 동일한 판단일 수만은 없다. 당원이 한두 명도 아니고. 같은 당이니까 생각이 같아야 함도 아니고.
 
내 속의 판단이 당과 달라도, 겉으로의 표현과 행동은 당과 하나여야 된다. 아니면, 해당행위라고 비난하고 누르고 제명하고 출당까지 시키면서 당과 같으라고 한다.
 
가정의 아버지와 남편도 ‘다른 생각과 말’을 단속(斷續)하면서 집안을 단속(團束)하려 함을 말했다. 그들은 쉽게 ‘같아야 한다!’, ‘하나여야 한다!’를 말하거나 실천하기에 젖어든다. 이렇게 강조되는 ‘하나’와 ‘같음’의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대부분은 ‘위’나 ‘다수’ 내지 ‘기존’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다.
 
‘같아야 한다!’가 위와 만나고 다수와 만나면, 쉽게 폭력으로 변할 수 있다. 제일은 ‘정상’과 평균이 되어, 일제와 획일, 나아가, 폭력의 근거가 되기 쉽다. 물론, 같이 살아야 한다. ‘하나로 같음’과 ‘함께 같이’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위와 하나 되기’와 ‘아래와 하나 되기’ 사이에도 역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아무래도 ‘함께 같이’와 ‘아래와 하나 되기’는 가까운 것 같다. 대다수의 ‘작은 아랫사람들’의 관심을 잘 배려하기는, ‘아래와 하나 되기’에서 나오고, ‘함께 같이’에서 나온다 할 것이다.
 
제이, 제삼이 눌리고 밀리면 제일만이 남는다. 이 하나만을 남기려는 태도가 획일주의, 하나주의, 같음주의다. 하나만을 남기는 일은 하나에 붙들리고 갇히는 일이다.
 
사람은 기계도 아니고 사물도 아니다. 보다시피, 이름이나 생일, 나이에서뿐만 아니라, 취향, 관심, 사고방식, 호오(好惡), 가치, 신념 등에서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 다름들의 하모니가 잘리고 묶이고 눌리고 밀리면서, 억지로 하나의 방향으로 고정된다면, 삶의 의미나 재미의 크기는 크게 작아질 것이다.
 
‘임금은 반드시 아니오를 거듭 말하는 신하가 있어야 하고, 윗사람은 반드시 거스르고 다투는 아래가 있어야 함’을 묵자는 설파한다. 잘리고 묶이고 눌리고 밀리는 억지에서 소통이 원활할 리 없다.
 
소통이 안 되면, 신하나 아랫사람, 백성뿐만 아니라, 인군과 윗사람들에게도 큰 손실이라는 것이다. ‘관리 되는 세계’와 ‘문화산업’ 속의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맹목화 맥락’를 비판하는 맥락에서, 독일의 사회철학자 아도르노(Adorno, 1903~1969)는 사물과 개념의 ‘비동일성’을 말하는 동시에 이 비동일성을 절대화하는 것 역시 경고한다.
 
그는 ‘동일성’ 속에서, 말, 개념과 문화가 ‘기존’이나 ‘위’와 ‘같게 만드는’ 계기를 말한다. 유가와 묵가의 인위와 현실이나 제도를 비판하는 장자(莊子, BC 369~289년경)는 ‘능력을 획일화하지 않았고 일을 똑 같게 하지 않는’ 다름 사상을 중시하지만, 동시에 모든 상대적 시비와 진위, 호오의 다름들을 초월하는 절대적 ‘하나’의 경지를 강조하면서 다시 동일성으로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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