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의 ‘실험소설’은 인간을 일정한 환경과 조건 속에 놓고 그 반응을 관찰한다. 요즘 한국 단편소설들을 읽다 보면 조금 다른 의미의 실험소설을 생각하게 된다. 먼저 특이한 인물을 고안, 첨예한 상황 속에 넣어 어떤 효과가 산출되는지를 보는 것이다. 위수정의 ‘귀신이 없는 집’도 그런 작품으로 읽힌다.
주인공 재원은 자신을 ‘시스헤테로 취미 여장러’로 규정한다. 시스젠더이자 헤테로섹슈얼이면서 여성복을 즐겨 입는 크로스드레서다. 시스젠더,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젠더퀴어, 에이젠더,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팬섹슈얼, 에이섹슈얼, 크로스드레서, 젠더 논컨포밍 등 우리는 어느새 수많은 성적 정체성의 명칭 속에서 살아간다.
아내 상미와 딸 세라는 시드니에 있고 재원은 서울에 혼자 남아 있다. 여장 취향을 아는 사람은 상미뿐이다. 재원은 크로스드레서들의 온라인 공간에서 코요라는 젊은 남자를 만나 핼러윈 밤 홍대의 시디 바에서 ‘풀업’ 여장을 하고 거리로 나간다. 자신을 감추지 않는 코요와 달리 재원은 직장이나 이웃에게 취향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는 마트 장면에서 먼저 나타난다. 여성용 언더웨어 코너에서 살구색 슬립을 카트에 넣은 재원은 앞집 남자와 마주치자 묻지도 않았는데 “아내가 뭐 좀 사다달라고 해서요”라고 변명하고 결국은 반품한다. 재원의 눈에 이웃 남자는 “씻지 않은 몸에서 나는 수컷의 비린내”를 풍기는 존재다.
핼러윈 밤 젊은 남자 셋은 재원과 코요에게 혐오성 욕설을 던진다. 코요는 맞서고 재원은 피한다. 이어 재원은 트럼프 가면을 쓴 남자의 눈이 앞집 남자의 눈이 아닐까 불안해한다. 실제 같은 사람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재원의 의식 속에서 ‘수컷의 비린내’를 풍기는 이웃과 트럼프의 얼굴은 하나의 위협적인 시선으로 포개진다.
여기서 작품의 의미와 문제성이 함께 드러난다. 재원의 성적 정체성은 복합적인 내면으로 묘사된다. 그는 코요에게 성적인 끌림까지 느끼며 자신이 정말 헤테로섹슈얼인지 흔들린다. 반면 재원 바깥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앞집 남자는 ‘수컷의 비린내’, 젊은 남자들은 ‘혐오’, 트럼프는 하나의 ‘가면’이 된다. 재원에게는 복잡성을 허용하면서 그를 바라보는 세계는 쉽게 재단되는 셈이다.
핼러윈이라는 설정도 그냥 지나가기 어렵다. 이태원 참사 이후 서울의 핼러윈 밤은 더 이상 중성적인 풍경일 수 없다. 작품은 이날을 변신과 해방이 허용되는 시간으로 불러낸다. 소설에 필요한 설정이라 해도 다소 무심하게 느껴진다.
트럼프 가면은 더 미묘하다. 트럼프 현상에는 이민, 경제적 불균형, 미국의 쇠퇴에 대한 인식, 국제질서와 전쟁, 부정선거를 둘러싼 주장과 논쟁 등 복잡한 현실이 얽혀 있다. 그런 존재를 단순한 억압의 가면으로 고정하는 방식은 오히려 오늘의 세계가 지닌 전체주의적 본질, 곧 상대를 하나의 명칭과 이미지로 확정하고 더는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경향을 꿰뚫어 보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귀신이 없는 집’은 묘하게 불편하면서도 흥미롭다. 불안정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을 더 진정한 존재로 보려는 작가의 가치 지향은 충분히 추론된다. 그러나 복잡성을 옹호하는 그 소설이 재원의 바깥 세계를 너무 쉽게 단순화하는 것은 아닐까. 이 역설이 작품을 하나의 흥미로운 ‘실험소설’로 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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