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소통문화아카데미 이사장(성균관대학교 전 유학·동양학부 교수) ⓒ스카이데일리
삶에서 나와 남이 같이 중요하다. 나도 너도 모두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남과 소통은 ‘함께’와 ‘나눔’의 문제라 했다. 남을 배려하되 내 문제를 말하고, 내 문제를 말하되 남을 배려함에서, 소통과 인성이 함께 말해진다.
인정과 배려 없이 소통하기도 어려우며, 소통과 이해 없이 인정하고 배려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무시와 배제, 일방과 폭력은 불통의 전형적인 원인이자 결과일 것이다.
소통을 통해 나를 알리고 남을 알 수 있으며, 남과 다름의 앎과 이해는 남과 다름의 인정과 존중으로 이어지면서 소통크기를 키우고 배제와 폭력의 크기를 줄인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소통의 모습과 방식에 대하여, 자유롭게 생각을 열고 나누는 소통의 기회를 열어가는 일이 중요하게 된다.
사람들은 나이나 성, 직업이나 지위, 계층이나 지역, 학벌이나 문화, 신념이나 가치 등에서 다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같은’ 사람들로서,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생각을 열고 나누면서, 밀어붙임과 큰소리치기, 누름과 눌림, 막음과 막힘이 없는, 열린 소통문화와 문화를 열어가는 일은 시대의 요청이다.
때문에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든, 국회에서든, 일터에서든, 군대에서든 혹은 방송에서든 인성과 소통의 중요성은 끊임없이 외쳐지고 있다.
다름에 열고, 다름과 소통할 수 있는 ‘소통적 세상크기’와 ‘소통적 사람크기’를 생각할 때, 우리는 그간 소통의 올바른 의미나 방법을 알고 익힐 기회가 거의 없었다.
입시 대한민국의 전달식 공교육과 사교육은, 우리들의 문제와 주제에 대하여 스스로 묻고 생각하고, 남들과 함께 생각을 열고 나누고 키우는 기회를 열어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정이나 기업, 정치나 종교도 이런 기회를 열어주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들의 소통의 모습과 크기를 반성해 보려는 장이 미디어에서 이따금씩 나타나는 정도라 할 것이다.
최근 이십여 년 사이의 디지털 환경과 더불어 소통수단과 매체의 급속한 발전은, 소통과 만남의 기술적 촉진 요소들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나날이 발전하는 TV의 존재와 함께 달라지는 자리배치질서와 만남방식 속에 가족 간 소통의 크기는 현저히 작아진다. TV와 소통 아닌 소통을 하면서, 가족 간의 ‘진짜 소통’의 기회가 박탈되기 때문이다.
또, SNS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없애주지만, 이는 동시에 멀어진 거리를 반영하기도 하고 거리를 멀어지게도 하는 거리 뛰어넘기의 수단이라 할 것이다.
여기에도 일종의 ‘무거리적 거리’의 논리가 들어 있는 셈이다. 맥루한(McLuhan, 1911~1980)이 매체가 메시지라고 하지만, 소프트 없는 하드, ‘정신’ 없는 ‘물질’의 미디어는 소통크기를 열어주는 면도, 닫아주는 면도 같이 있다 할 것이다.
따라서 매체를 어떻게 만나느냐에도, 사람들 사이의 만남크기가 많이 달려 있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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