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우순 의약전문 칼럼니스트
그럼에도 횡단보도 주변에서는 교통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1년 전 횡단보도 옆 3미터 떨어진 곳에서 길을 건너던 한 할머니가 좌회전 하던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자 차량 보험사는 무단횡단을 한 보행자에게 잘못이 있다며 사고 책임을 회피해 왔다. 이 다툼을 다뤄온 법원은 최근 ‘횡단보도 3m 이내 보행은 무단횡단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사고를 낸 운전자와 해당 보험사는 되묻고 싶었을 게다. “횡단보도 3m 이내 보행이 적법이라면 3m 밖은 무단횡단인가?”라고. 법원이 이를 답해 줄 리 만무하다. 3m가 무단횡단과 적법횡단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보행자는 흰색으로 표시된 횡단보도로부터 직선거리 3m에 이르는 여지(餘地)의 보행 길을 확보하게 됐다. 훌륭한 판결이다. 횡단보도를 검은색 차도 위의 흰색 페인트 선으로 국한하지 않고 보행자의 실질적 보행 동선과 심리적 횡단보도를 감안한 점은 더욱 그렇다.
보건의약행정의 실무 현장 역시 행정가와 민원인의 다툼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법-대통령령-장관령-고시와 훈령-세부지침으로 이어지는 촘촘한 규정과 매뉴얼이 있음에도 실랑이가 사라지지 않는다. 규제가 많은 분야다 보니 피규제자가 느끼는 불만은 만성적이다. 규제 당국자 역시 규제의 명분과 당위는 물론 피규제자 간 형평에 어긋나지 말아야 하니 법규와 지침에 나온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게 상책이다. 원리원칙 고수는 감사원의 지적을 피하는 최고의 방법이기도 하다.
최근 목격한 두 사례는 보건의약 행정 당국이 갖고 있는 업무 과중과 경직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두 사례 모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 개최 시기와 관계된다. 약평위는 건강보험 등재 신청을 낸 신약을 평가하는 기구로 매달 1회 위원회를 개최한다. 그런데 법규개정 등의 사정으로 지난 5월에는 약평위가 개최되지 못했다. 5월 개최해야 할 약평위는 6월에 열렸고, 결과적으로 6월 한 달 동안 두 번의 약평위가 개최됐다. 그렇다면 6월에 열린 5월분 약평위는 5월 약평위인가, 아니면 6월 약평위인가?.
신약의 시장 출시시기를 앞당기려는 제약회사는 5월 약평위로 해석해주길 요청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5월 약평위로 추정할 경우 다음 단계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상정하기 위해 행정실무자들이 준비할 물리적 시간이 절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하나의 사례는 국내개발신약의 평가를 7월 약평위에서 논의할 것인가, 아니면 8월 약평위에서 논의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해당 제약회사는 7월 약평위에 상정되길 원했다. 그러나 이 역시 무산됐다. 두 사례 모두에서 행정실무자는 제약회사의 민원 수용이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을지, 형평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를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 두 사례에서 행정당국이 낸 결론은 법규와 지침에서 어긋남이 없다. 그러므로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를 판단해 보자는 것이 아니다. 두 사례를 들어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렇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천사 역시 디테일에 숨어있다. 그런데 행정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감시와 불신이 행정실무자를 강박적으로 원리원칙을 고수하도록 만든 것은 아닌지, 이로 인한 경직된 행정이 자칫 악마의 출현을 막기 위해 천사까지 사라지게 하는 사회적 불이익을 초래하지는 않는지 다 같이 점검해 보자는 것이다. 제약산업은 지금 보건의약행정에 있어 3m 여지가 그야말로 절실한 때라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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