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찬종 소장(이삭애견훈련소 / 이웅종 동물매개치료센터)
중국 황실의 수호견인 페키니즈(Pekingese)는 사자와 닮은 외모, 그 외모다운 용기와 대담성, 고집이 세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독립심, 우아한 자태에서 풍겨 나오는 귀족스런 분위기와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눈빛을 갖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이제까지 알고 있는 퍼스트 도그(The First Dog) 중 가장 귀족적인 강아지라고 불리는 이유다.
페키니즈(Pekingese)는 그 이름에서 유래를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 중국의 베이징을 서구에서는 페킹(Peking)이라고 표기했다. 따라서 페키니즈는 ‘베이징의 개’라는 뜻이 된다. 그 뜻을 조금만 더 파고들어간다면 황제의 개를 빼앗았단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이며 황제의 도시였던 것이다.
페키니즈는 티베트의 수도승들이 기르던 털 많은 ‘티베탄 스파니엘’에서 유래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개가 중국으로 건너가 황실의 사랑을 독차지 한 것이다. 8세기 무렵 중국 당나라 황실에서 페키니즈의 인기는 가히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작은 체구에 사자와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황실, 귀족, 고관대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된다.
페키니즈는 사자를 닮은 외모에 앙칼진 성격이 더해지면서 악귀로부터 황실을 수호하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수호견의 이미지가 완성된 것이다. 덕분에 별명도 많이 붙게 됐다. 소매에 넣어 다닐 수 있는 개라 해서 ‘소매개(Sleeve Dog)’, 사자를 연상케 한다 해서 ‘사자개(Lion Dog)’, ‘귀신 쫓는 개’ 등이 페키니즈에게 붙은 별명이다.
페키니즈는 이런 이미지 덕분에 이후 중국의 왕조가 바뀌어도 ‘황실의 개’라는 지위를 계속 누리게 된다. 황실의 개란 이미지는 청(淸) 왕조에 이르면 절정에 오른다. 페키니즈는 청 황실만의 개이기 때문에 황실에서‘만’ 페키니즈를 키우도록 했다.
이전에는 고관대작, 귀족들이 키우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제는 아예 황실 식구만 키울 수 있는 공식적인 황실 개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페키니즈의 악행이 시작된다. 가뜩이나 독립심이 강하고 사람 잘 무시하던 개였는데 황실의 공식적인 비호가 더해지면서 안하무인(眼下無人)격의 행동들을 하게 된 것으로 사람들이 느끼게 된 것이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지방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조문객이 온다는 말이 있다. 황제의 개가 돌아다니는 상황에서 어떤 이가 고개를 숙이지 않겠는가. 인류 역사상 가장 고귀한 존재로 대우받던 ‘개’가 이 시대의 페키니즈였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황실 개 페키니즈는 사람도 일생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제비집 스프와 삭스핀을 일상으로 먹었고, 이를 돌보는 환관만 따로 4000명 정도 둘 정도로 온갖 호사를 다 누렸다. 그러나 이 고귀한 존재도 운명 앞에서는 초라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중국 근현대사를 공부할 때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애로호 전쟁(Arrow War)이다. 2차 아편전쟁이라고 불리는 애로호 전쟁은 1856년 10월 8일 청나라인 소유 마약 밀수선 애로호를 관병이 수색하고 해적 용의자 리밍타이(李明太)와 중국선원 11명을 체포하면서 터지게 된다.
▲ 2차 아편전쟁이라고 불리는 애로호 전쟁은 청나라 관원이 이 배에 걸려있는 영국 국기를 훼손한 것을 핑계로 영국군이 광저우로 쳐들어갔고, 여기에 프랑스까지 연합군으로 가세해 ‘텐진조약’이라는 불평등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사진은 애로호 전쟁(Arrow War) [사진=필자제공]
국제법상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당시 청나라 관원이 이 배에 걸려있는 영국 국기를 훼손하면서 문제가 터진다. 당시 중국 마약선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서양국가 국기를 달았기 때문이다.
영국군은 이를 핑계로 광저우로 쳐들어갔고, 여기에 프랑스까지 연합군으로 가세하게 된다. 영불연합군은 광저우 점령에 만족하지 않고 청 조정을 압박하고자 1858년 수도인 베이징(北京) 바로 밑 텐진(天津)까지 북상하게 된다.
다급해진 청은 ‘텐진조약’이라는 불평등조약을 체결하며 휴전을 도모했으나 영불 연합군은 내친김에 베이징까지 치고 올라가겠다며, 병력을 2만5000명으로 증강해 10월 수도 베이징까지 함락한다. 이때 청나라 황제였던 함풍제(咸豊帝)는 황실의 개인 페키니즈를 서양 오랑캐의 손에 넘겨주지 않기 위해 모두 죽이라는 칙령을 내린다.
황제의 명령 앞에 그 동안 온갖 사치와 향락을 즐기던 페키니즈는 광란의 ‘도살’ 행렬 앞에 서게 된다. 하지만 이 행렬에서 목숨을 건진 몇 마리의 페키니즈가 있었는데, 황제의 고모가 키우던 다섯 마리의 페키니즈였다.
당시 이 다섯 마리의 페키니즈는 청 황실의 여름별궁이었던 이화원(頤和園)에 숨어 있었는데 페키니즈의 주인이던 황제의 고모는 연합군들의 손에 욕을 당할까봐 자살을 하고 주인을 잃은 다섯 마리의 페키니즈는 연합군의 손에 나포되게 된다.
한 눈에 봐도 품격 있고 귀족적인 개를 본 연합군은 이 개를 영불연합군 사령부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이 신기한 전리품 앞에서 영불연합군 최고사령부는 ‘공평한 분배’를 하기로 결론을 내린다. 결국 존 헤이 남작(John Hay)과 조지 피츠로이 남작(George Fitzroy)이 암수 한 쌍 씩을 분양 받게 됐고 계급이 제일 낮은 던(Dunne) 중위가 수컷 한 마리를 받게 된다.
존 헤이 남작과 피츠로이 남작은 이 개들을 자신의 여동생과 조카에게 선물했지만, 던 중위는 출세 욕심이 있었던지 당시 애견가로 잘 알려진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에게 자신의 페키니즈를 들고 가게 된다.
▲ 청 왕조가 무너져도 꿋꿋하게 영국 왕실로 넘어가 그 신분을 유지했던 페키니즈는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일반인도 쉽게 키울 수 있는 개가 됐다. 사진은 페키니즈 [사진=필자제공]
이미 킹 찰스 스나니엘, 그레이하운드, 보더콜리, 포메라니안, 칭(Chin) 등등 수많은 개를 키우고 있던 빅토리아 여왕이었기에 어지간한 개에게는 흥미가 없었지만, 페키니즈는 여왕의 눈에 쏙 들어왔다.
빅토리아 여왕은 개의 이름을 전리품·노획물이란 뜻인 ‘loot’에서 따온 루티(looty )라고 지었다. 황실의 개였던 페키니즈가 전리품이 된 것이다. 하지만 중국 황실에서 영국 왕실로 옮겨졌을 뿐 왕족의 개라는 신분은 변하지 않게 됐다.
이렇게 영국으로 진출한 페키니즈는 이후 품종개량에 들어가게 된다. 베이징에서 넘어왔던 때에는 체구가 컸었지만, 영국에서는 이보다 작은 체구를 원했기에 크기는 더 작아지게 되었고, 오늘날의 페키니즈 사이즈로 정착되게 됐다. 그 사이 유럽에서 페키니즈는 인기 품목이 됐고, 중국의 페키니즈는 밀수꾼들 사이에서 최고의 상품이 돼 유럽으로 많이 넘어가게 된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