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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탈출기를 꿈꾸는 2030세대 청년들
인문학 키워드 _ 청년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9-01-26 16:53:58
▲ 문화평론가 고태경
 
 
최근 화두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이 바로 청년실업 문제다. ‘헬조선’의 탈출기를 꿈꾸는 이들은 2030세대의 청년이다. 이들의 실업과 고용불안 문제는 그 자체로 깊은 논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주목해 봐야 할 것이 바로 ‘청년’이라는 개념이다. 이들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
 
청년이라는 단어는 시대별로 서로 다른 뉘앙스를 띠며 등장했다. 예컨대, 오늘날 청년은 길을 잃은 이들, 고용불안과 생존경쟁에 내던져진 이들로 묘사되곤 한다.
 
20세기 초중반까지도 ‘청년’이라는 개념에는 ‘진보적’이고, 희망적이며 ‘유토피아적’인 이미지가 수반되곤 했다. 20세기 말에 이르며 세계경제는 정체되었고,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구조조정은 세계 전역을 휩쓸었고, 장기침체 국면에 접어든 경제는 20세기를 사로잡은 ‘진보’ 혹은 ‘발전’의 열망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개척가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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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 대한 이미지는 시대적 화두와 맞물리며 변한다. 청년이 사회적으로 독자적인 중요성을 수반한 것은 주로 20세기 피식민국들, 혹은 개발도상국들에서였다. 이곳들에서 청년은 단순한 ‘젊음’ 이상을 의미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에게 ‘청년’은 유럽 근대문물의 수용과 깊은 관련을 갖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이후 유럽의 근대문물은 다른 체제들을 낡은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하도록 하며 전 세계적인 헤게모니를 갖게 된다. 이때의 근대문물은 18세기 말의 이중혁명, 즉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의 두 축을 통해 인지되었고, 20세기 피식민국들 혹은 개발도상국들의 청년들은 그 두 혁명으로부터 사회변화의 강렬한 모티프를 받아안게 된다.
 
이러한 이들의 정서를 떠받든 또 하나의 축은 기성세대에 대한 태도였다. 근대문물은 식민지배의 과정을 통해 청년들의 교육문화 속에 깊게 스며들었고, 이것이 서구에서 진행된 오랜 변화의 과정을 피식민국 혹은 개발도상국에서는 급격한 단절로 나타나게 만들었다.
 
이제 청년들의 눈에 볼 때 기성세대들은 시대의 역사적 소명(이중혁명)을 거부하는 반동세력에 다름 아니게 된다. 청년은 진보적 이상을 꿈꾸는 유토피아주의자이면서, 동시에 근대문명의 개척가를 자임하게 된다.
 
개척가에서 피해자로
 
19세기 말 이후 청년들의 활약상은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거대했다. 일제 식민지기에 저항했던 조선 문인들의 다수는 2030세대의 청년들이었다. 제3세계의 민족해방운동 역시 마찬가지였고, 한국에서는 1980년대 대학문화에까지 청년들의 저항과 사회변혁의 정신은 지배적 기류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나 흐름의 반전은 20세기 말엽에 와서 빠르게 이루어졌다. 1970년대 말 이후 세계경제의 장기침체가 확산된 것이 주효했지만, 위기는 이미 그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세계대전 후인 20세기 중반에 이미 대량소비문화가 정착되며 청년들의 감수성에 변화가 일어났다.
 
TV나 영화를 통해 전파된 대중문화는 문학이나 신문 등의 매체를 통해 전파된 인텔리문화와는 다른 흐름을 양산했다. 소비는 이제 개인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간주되었고, 청년들은 유토피아를 먼 미래의 것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직접 누려야 할 어떤 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동시에 현실에 대한 회의감과 허무감을 수반하는 것이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1968년의 혁명이, 한국에서는 1990년대의 대중문화가 이러한 흐름을 반영했다. 서태지의 노래 ‘교실이데아’의 반항아 이미지가 수반한 것이 사회에 대한 저항감과 더불어 어떤 회의감이었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는 1968년 혁명의 구호는 강렬한 저항정신만큼이나 그에 잠재된 허무감을 동반했다. 여러 요소들이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본으로 다가온 것은 미래에 대한 이상이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그 자리를 알 수 없는 허무감이 지배했다는 점이다.
 
소비와 직접적인 표현을 통해 자기욕망을 드러냈던 자존감 강한 청년들은 얼마 안 가 자산들이 헐거운 모래성 위에 위태롭게 서 있음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와 1990년 말 이후는 허무감이 공포감으로 급전환하는 시기다. 레이건과 대처는 미국과 영국에서 신자유주의적 긴축정책을 도입하며 수십년간 지속된 노동의 안정성을 무너뜨렸고, 한국에서는 IMF위기라는 이름하에 1987년 이후 짧게 도래했던 고용안정성이 산산조각나기 시작했다.
 
자존감이 높을 때 우리는 승리의 열망에 사로잡히곤 한다. 20세기의 어느 시점까지 그 열망은 사회변혁 혹은 식민지해방 등의 구호로 구체화되곤 했다. 이 구호들은 언제나 실현가능하리라는 희망 찬 기대감을 수반했고, 청년들이 자신의 자아를 확인하는 강력한 계기로 작용했다. 그러나 사회 전역으로 확산된 공포감은 이 ‘청년’이라는 말의 표현법을 급변화시켰다.
 
누가 더 이 사회에서 피해를 보고 있는가. 저들이야말로 나의 피해 위에 성공한 무임승차자가 아닌가. 이런 물음이 오늘날 우리의 공론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말들이다. 바야흐로 피해자의 시대가, 혹은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변화는 놀랍게도 채 반세기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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